길에서 춤추던 꼬마 숙녀

어째서 일순간, 그녀의 총체적 삶의 모습이 보였던 것일까

by 김작은
나는 내 앞을 지나는 모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왼손에 들린 장바구니 위로 대파의 일부분이 보였다. 오른손엔 고사리 같은 딸의 손을 꼭 붙들고 재잘거리는 딸의 말에 한껏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일했던 직원 3명의 작은 회사에서는 3개월을 일하고 도망쳤지만 거의 3년을 일한 것처럼 지쳐버렸다. 경리, 구매, 주문 접수, 택배 발송, 물류, 박람회 진행 등 잡다한 일을 맡아 일했다. 오후 3시 반부터는 발송업무를 시작한다. 주문 정보로 송장을 뽑는다. 7분 거리 떨어진 지하창고로 걸어간다. 무거운 박스들에 택배 송장을 붙여 좁디좁은 계단으로 들고 나온다. 택배 차량에 물건을 싣고 재고 잔량을 다시 한번 체크한 뒤 사무실로 복귀한다. 마감을 하고 미비한 업무들을 하면 퇴근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피폐함으로 인해 도망간 것이지만, 박람회나 과다 주문량을 혼자 감당할 때는 육체적인 피폐함이 앞서기도 했다.


물론 주문량이 적어 여유롭게 나설 때는 편의점에서 음료수도 사 마시고, 택배차량이 늦어지면 중간 시간엔 잠시 쉴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그날도 택배차량이 늦어져 잠시 올라와 멍 때리며 쉬고 있었다. 창고가 있던 양재 시민의 숲역 뒤편 골목에는 예쁜 사무실 건물도 많고 조용해서 그저 멍하니 사색을 즐기기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건물 코너에서 나오는 모녀가 보였다. 나는 내 앞을 지나는 모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왼손에 들린 장바구니 위로 대파의 일부분이 보였다. 오른손엔 고사리 같은 딸의 손을 꼭 붙들고 재잘거리는 딸의 말에 한껏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언뜻언뜻 들리기에는 딸이 유치원에서 무언갈 배워온 모양이었다. 신나게 엄마한테 말하는 딸의 행복한 감정과, 그런 딸을 한없이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의 행복한 감정이 전달되었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다시 모녀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딸은 엄마의 손을 놓고는 골목길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마도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이었나 보다. 내 표정을 누가 본다면 분명 바보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멍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젊은 엄마와 눈을 마주쳤다. 아마 꼬마 숙녀의 엄마는 감지했던 것 같다. 본인들이 느끼고 있는 행복감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목례하며 서로에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지나간 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째서 그토록이나 서러웠을까.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한다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엄마와 무한도전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아름다운 섬 녹도에서 찬희와 채희 남매가 나왔다. 또래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남매의 사이는 무척이나 좋았고, 오빠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 하는 채희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감정을 전달했다. 그들의 삶이 안타까운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들의 주변 환경을 동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불행한 삶을 얘기하자면 굳이 멀리서 찾을 것이 없기 때문에.(심지어 위에 소개한 내 앞을 지났던 모녀의 주변 환경은 더더욱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남매를 보면서도 눈물이 났다. 엄마는 나보고 나이 들어서 그렇다며 약간 놀리는 어조에 복잡한 심경을 살짝 곁들였다.


유머러스한 웃음도 있었지만 분명 행복한 웃음이 만연했다. 거기에서 눈물이 났다. 내 앞을 지나던 모녀를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 감정이었다. 어째서일까. 왜 내게 아이들의 삶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다가왔을까. 아직 너무나 순진하여 상처가 상처인지도 모를, 그래서 회복하기도 좀 더 수월한, 그런 아이들이 겪을 앞으로의 상처까지 느꼈어야 할까. 그들의 행복한 감정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고통이 없는 인생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아버려서일까.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아픔이 없을 수 없다. 상처가 없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주변에서의 위로이다. 사랑하는 자들의 연대이다. 아픔에 대한 공감이다. 공동체의 잘못을 함께 떠안아 용서를 비는 책임이다.


길에서 춤추던 꼬마 숙녀님이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언제나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길, 그리고 숙녀님도 어머니께 혹은 타인에게 그런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감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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