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취직한 친구 이야기

거기에서 내 손해를 메꾸는 거야. 수량을 바꾸고, 가격을 올리고.

by 김작은
초등학교 2학년일 때였을까? 이 친구를 처음 만난 때가 가물가물하다. 아마 3학년, 열 살이 됐을 때 같은 반에서 만난 것 같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깡마른, 전형적인 시골 아이 같은 친구였다.


초등학생 땐 그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나가고, 일 년 만에 다른 친구들 손에 이끌리어 교회에서 나왔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2학년 때 같은 반이 됐고, 그때는 내가 먼저 그에게 손을 내밀어 교회에 가도 되는지 물어봤다. 전도라는 큰 사명감보다는 그저 친구들이 함께인 것이 좋았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의 친한 멤버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수련회, 문학의 밤 등 크고 작은 행사에 함께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2,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우리는 전농동에서 계속 함께할 것만 같았다.


원하는 대학을 한 번에 붙지 못한 친구는 재수를 선택했다. 우리는 서로의 집안 사정을 대강 알았지만, 딱 대강 아는 그 정도가 각자 자신의 집안 형편에 대해 아는 정도였을 것이다. 친구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뒤, 나는 입대했다. 내가 전역한 후 얼마 뒤, 친구는 학사장교가 되었다. 시간은 훅훅 지나가서 나는 이 일 저 일을 경험하고, 친구는 대한민국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 검게 그을린 피부는 여전했지만, 깡말랐던 체구는 마치 전쟁 용병처럼 건장해진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별 의욕도 없이 이 일 저 일 하다가 어떨 땐 그저 백수로 있었다. 친구는 이온음료가 주 상품인 기업에 영업직으로 취직했다. 당구를 치든 밥을 먹든 지난날과는 달리, 여유가 있어 보였다. 밥을 얻어먹고 "뭐 이렇게 자꾸 사주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있을 때 잘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편의점에서 무려 항아리 바나나 우유까지 사줬다. 나는 그저 이별 후의 깨달음 같은 것인가 싶었다.


친구는 면허를 딴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경차를 몰고 다녔다. 영업이나 영업관리를 위해 다니다가 서울의 골목 주행을 배웠다. 그리고 반년도 안돼서 일을 그만뒀다.


많은 아픔들이 있어도 굳이 내색하려는 친구가 아녔다. 다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여서,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감각적으로 알고 그저 기다리거나 옆에 있을 뿐이었다. 골목 어귀에 한 밤 중에도 뜬금없이 불을 밝히고 있는 편의점에 앉아 캔맥주를 땄다. 퇴직한 그와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저 대단하다고 느꼈다.


"야, 운전은 무조건 회사차로 해라. 진짜 수없이 긁어먹었다."


그는 즐거운 듯, 웃음끼를 가득 머금은 얼굴로 얘기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그의 얼굴을 다시 보자 웃음 끼는 거품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대기업도 아니야 여긴. 대형마트가 정말 갑이야. 그곳에 납품할 땐 말이야, 그 많은 물건이 내게 떨어질 인센티브도 없이 거의 원가로 들어가. 안 그러면 안 받거든. 대체할 음료는 쌔고 쌨어. 심지어 내가 손해 보는 때도 많아. 다들 그래. 그럼 어떻게 돈을 버느냐고? 간단해. 대형마트 외에 다른 골목가게들한텐 우리가 갑이야. 물건을 사주는 입장인데도 우리 물건이 잘 나가기 때문에 그들은 구매할 수밖에 없어."


맥주가 담긴 캔을 바라보면서 그는 자신이 수없이 날랐던 음료를 떠올렸을까.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골목가게는 지금 거의다 노인분들이 운영하셔. 납품 수량이 적힌 종이도 제대로 못 읽으셔. 숫자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거기에서 내 손해를 메꾸는 거야. 수량을 바꾸고, 가격을 올리고. 그들한테서 내 이익을 갈취해야 해. 그렇게 몇 달을 일하는데 정말 못해먹겠더라."






현재를 기점으로 끝을 맺는다면, 이야기는 해피엔딩처럼 보인다. 내 친구는 일을 그만두고 어려운 집안 사정에서도 꿋꿋이 공부하여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천사 같은 여자와 결혼하였고, 행복주택을 얻어 신혼집을 장만했다. 아직 서른넷. 해피엔딩이라 부를 만큼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약자를 등쳐먹어 더 많은 부를 쌓는 것보다, 소박하더라도 구민들의 민원에 시달리고 악천후일 때 새벽에 출근하여 비상대기를 하는 그의 인생이 더 멋져 보이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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