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 아니 아니 오빠!
엄마, 세상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너무 어려워. 하나님이 계시긴 하는 걸까?
글쎄다. 워낙 어려운 질문인 데다가 내 평생 던져온 질문을 똑같이 해서 가끔은 깜짝 놀라게 만드는 동생이 있다. 서른네 살 먹은 건장한 남자인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여전히 아이같이 예쁜 미소를 가진 동생이다. 그래서 나도 '딸'이라고 부른다. 비록 지금은 결혼해서 나보다 인생 선배가 되어있지만.
딸을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막 열아홉을 벗어나려던 때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십 년 전이다. 같은 교회에서 청년부 신입생으로 올라오는 것을 맞이해준 '임원'이 나였다. 나도 교회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서 신입생들에 대해 담당 교사로부터, 혹은 선배들로부터 소개받아 알게 됐다. 그녀를 둘러싼 말들은 대부분이 칭찬들이었다. 서글서글하다, 착하다, 예쁘다, 인기 많다 등.
신입생들과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을 가졌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이 친구들은 내가 듣던 것보다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딸'에 대하여는 신기한 점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던 칭찬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자, 나는 몇 년 더 산 내 인생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녀의 가치관은 훨씬 더 이타적이고 본질적인 것이어서 정의로웠다. 개인적인 일들만 생각하기도 힘든 나로서는 그녀가 말해주는 NGO에 대한 꿈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벅찼었다. 따라서 그녀는 불의에 대해 분노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특유의 서글서글한 외유내강으로 분노를 감추고 있었다. 스무 살이 어리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딸을 통하여 배우고, 다른 신입생 친구들도 '아이들'보다는 '친구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외유'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벽'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한편으로는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째서 이 나이에 벌써 '외유'를 득했을까. 그래서인지 그녀의 '내강'을 목격한 사람은 얼마 없었다.
서로의 인생이 바빠져서 몇 년간 왕래도 없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봤을 때, 우리에겐 어색한 장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몇 년간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면서 그녀는 종종 말실수를 했다.
"엄마, 아... 아니 아니 오빠! 그때 있잖아..."
처음 말실수에 둘 다 크게 웃었다. 보통 오빠라는 발음을 실수할 때는 아빠로 하지 않느냐면서. 그러나 엄마라는 말실수는 그저 발음상의 실수가 아니었다. 이후로도 계속된 엄마 발언에 우리는 자못 진지하게 따져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첫 만남부터 떠올렸다.
"그때도 이상했어. 처음 만난 날 말이야. 처음 만나는 어른인데 예전부터 알고 지낸 편한 느낌이었어. 엄마랑 조잘조잘 엄청 편하게 떠드는데 오빠랑 얘기하면 그런 느낌이 드나 봐. 엄마랑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
자못 진지한 고찰로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 같은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고, 종종 서로의 고민과 사유를 나누는 엄마와 딸이 되었다.
결국 나의 딸에 대한 이야기의 요지는 이것이다. 딸의 두 달간 떠난 필리핀 여행 중에 걸려온 전화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고생을 내가 감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딸의 여행은 잠시 힘든 것들을 벗어나고 쉬고파서 선택한 것이었다.
통화되냐는 딸의 물음에 나는 반가워서 그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아직까지 딸에게 밝히진 않았지만, 나는 반가움에 굳어 선 채로 보이스 톡을 했고 이어진 딸의 질문에 다시 앉지 못했다.
"엄마, 세상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너무 어려워. 하나님이 계시긴 하는 걸까?"
보통, 힘든 현실을 벗어난 여행에서 누가 또다시 현실을 바라보려고 할까. 번쩍번쩍 화려한 휴양지에서 빈민가를 보려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설사 봤다고 하더라도 외면하지 못한 마음씨는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딸은 내게 묻는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봐도 바로 주변에 있어.
어떻게 안 볼 수가 있어.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로 계시다면, 이들을 살려주셔야 하는 거 아닐까 엄마?"
나는 아무래도 헛소리를 지껄였을 것이다. 아마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이 불행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둥, 우리가 만들어놓은 사회적 통념을 부수는 것이 먼저라는 둥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딸은 다시 물었다. 통념이고 뭐고 간에, 그들의 삶의 행복과 불행을 따지기 이전에, 당장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배우 김혜자도 같은 질문을 했다고, 그래서 얻은 답변은... 고개를 돌릴 수 있는 하나님의 관점을 얻었으니, 그 관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아마 내 대답에 김혜자의 사례가 매우 가볍게 끼어있었을 것이다. 그런 대답을 해주려면, 나부터 그래야 했기에. 하지만 난 그런 관점을 마음 아프도록 무시하며 살고 있기에.
간혹, 사회를 생각하다가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삶이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의 삶에 대해 고민할 때가 많아진다. 그러나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튼튼한 기반에 발을 딛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이상적인 사회는 현실에 발을 딛고 현실을 봐야만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니체가 이 땅에 발을 딛고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세계를 고발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본주의가 감추고 싶어 하는, 아니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가 항상 그렇게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를 드러내야만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이다.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치부인 죄를 드러내고, 다시 제대로 살고 싶어 하는 족속.
딸, 너의 예쁜 미소 안에 담긴 그 시선이 너무 무겁다는 걸 알지만 결국 그것이 세상을 바꿔나갈 키워드가 될 것 같아. 그래도 너무 어렵구나 딸. 우린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