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는 인사권자의 고유권한 이라고

- 경장편 - #17 (제5장 불가항력)

by Johann

<#16에 이어서...>


5. 불가항력(不可抗力)


초극강 디지털 4D 홀로그램 영상기술은 우리 회사가 단연 독보적이었다.

우리가 제작한 기술은 홀로그래피를 통해 각종 사물을 평면상에 입체적으로 기록하던 초기의 단순한 허공 입체영상 기술을 진일보 발전시킨 것으로 최첨단 기술의 쾌거라고까지 극찬을 받았다.


특히 이 기술로 많은 수요가 예상된 분야는 돌아가신 고인을 소환하는 거였다.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술적인 기본 장비들을 고객이 원하는 공간에 설치하고, 이미 사망한 고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로 만들어진 입체영상을 고객에게 송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명절이나 특별한 가족의 기념일 등에 사망한 고인을 생존의 모습 그대로 가족과 만나게 해주는 것으로 곧 상용화할 단계에 거의 도달한 상태였다.


우리가 죽은 자를 현실 세계로 소환해 내기 위해서는 의뢰인이 소환해 내고 싶은 고인의 평상시 생활방식을 알 수 있는 기본 데이터와 그리고 생전의 모습과 음성이 담긴 사적인 녹화 영상들의 제공이 기본적으로 필요했다.

그와 함께 평상시 고인이 즐겨 입었던 의복과 즐겨 사용했던 향수나 혹은 아직 고인의 체취가 가시지 않은 의류품목을 우리에게 전달만 해주면 우리는 그것들을 기반으로 고인의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를 가상입체 영상으로 재현을 해내면서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뛰어넘어 고인의 체취까지 그대로 유가족들이 느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더군다나 가상입체 영상은 비록 가상의 인물이지만 스킨쉽이 가능한 교감을 통하여 단순히 보는 시각 차원을 뛰어넘게 되었으며 더욱이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능을 통해 가상으로 구현된 인물과 매우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인이 된 망자를 유가족들이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소환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많은 수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일부에선 우리 회사를 일루미나티(Illuminati)와 연계시키면서 황당무계한 음모론을 키우는 자들도 있으나 그로 인해 오히려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개발단계부터 대중의 관심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뜨거울 정도였다.

그리고 상용화되기 전 최종 테스트를 위해 현재 회사 로비 안내 데스크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던 실제 같은 두 명의 가상 여자 연예인 안내 직원들을 구경하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이 우리 회사를 방문했고 각종 언론의 관심 또한 집중되고 있었다.


K 박사 유가족에게 회사는 유가족들이 언제든지 원하면 K를 소환해 낼 수 있도록 상당한 금액의 사용료를 무시하고 평생 무료로 모든 것을 서비스해서 제공 해주겠다고 제안한 상태였지만 유가족의 관심은 오로지 K 박사의 죽음을 밝히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러한 가운데 이사분기가 끝나면서 부서별로 지난 상반기 실적보고 발표회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중간 인사고과평가 또한 실시되었다.

그 평가와 더불어 일부 조직개편이 이루어졌고 하반기 인사이동이 단행되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인사이동을 알리는 사내 전자게시판에 우리 부서의 H가 대기발령으로 인사이동 된 것이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나온 발표였다.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공지를 보고 모두 놀라고 의아해하였다.

기술 상용화를 앞두고 핵심부서였던 우리 부서의 모든 직원이 K 박사 자살 이후 대체인력 보강 없이 K의 업무까지 떠맡으면서 눈코 뜰 새 없이 전 부서원들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단 한 명의 직원이라도 아쉬운 판국이었다.

그런 상황에 H를 우리 부서에서 제외했지만, 결원에 따른 대체인력에 대한 인사이동 소식은 전혀 없었다.

본인의 대기발령에 H가 무엇보다도 충격을 받은 것은 하반기 조직개편과 더불어 자신의 인사이동 관련하여 실장과 부서장으로부터 그 어떠한 설명조차 전혀 받지 못하였다는 사실이었다.


사내전자게시판에서 자신이 대기발령으로 인사이동 된 것을 확인 한 H가 흥분한 채로 Y 실장의 자리로 가서 따져 물었다. H가 흥분을 주체 못 하였던 반면 Y 실장은 매우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아, 그거. 그렇지 않아도 어제 미리 말해주려고 했었는데, 알다시피 내가 어제 종일 외근이었잖아.

나도 엊그제 늦게 인사팀으로부터 통보받아서 미리 말해줄 시간이 없었어. 그 점은 좀 이해해줘.”


“그걸 어떻게 이해해줘요. 다른 부서로의 이동도 아니고 대기발령인데.

이거는 거의 징계적 인사이동이잖아요!”


“뭘 또, 그렇게까지 말을 해. 그냥 아직은 마땅한 곳으로 보낼 곳이 없어서 잠시 대기발령 해놓은 건데.”


“그러니까 왜 내가 대기발령 되어야 하냐고요!”


Y 실장이 태연한 모습을 유지하다가 H의 거칠어진 항의에 Y 실장 역시 이제 조금씩 짜증 내는 어투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번 상반기 고과가 문제야.

뭘 제대로 해놓은 게 없잖아,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맡아서 한 것이 한 건도 없어.”


“그게 말이라고 합니까?

프로젝트를 내가 자체적으로 갖고 와서 내가 알아서 합니까?

아니란 것 잘 알잖아요. 더군다나 내가 상반기에 단독으로 잘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회사 경영진들 판단하에 중간에 홀딩(holding)시켜놓아 중단된 건데 이것도 제 책임이라는 겁니까?”


Y 실장은 H의 거침없는 항변에 잠시 헛웃음을 지으며 황당해하는 듯하다가 이내 다시 H의 업무성과를 곡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럼 다른 직원들은 다 했던 업무성과발표는 왜 안 했어?

상반기 동안 뭘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니깐.”


“아, 정말 답답하네요. 업무성과발표는 완전히 종결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거잖아요.

왜 잘 아시는 분이 그런 말을 합니까?

내가 하던 프로젝트가 경영진 요청으로 중단됐다고 말했잖아요.

중단된 일을 가지고 왜 최종 보고회를 해야 하는데요?

회사에 어디 그런 규정이 있어요?”


그렇다.

H가 말한 것은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지금 Y 실장은 억지를 피우는 중이었다.

H의 상반기 고과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가 불충분하다 못해 매우 억지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이번 인사 이동발령에 절대로 동의 못 하겠습니다. 실장님이 말한 이유가 이유 같지 않아섭니다.”


Y 실장이 처음보다는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동의 못 할 권리가 당신한테는 전혀 없어. 회사는 절차대로 진행했을 뿐이라고. 인사고과가 안 좋은 직원을 더는 우리 부서에서 데리고 있지 못하겠다는 건 인사권자가 결정할 일이야. 고과는 더이상 운운하지마. 평가는 어디까지나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이라고.

더구나 나 혼자 결정해서 그렇게 되는 줄 알아?

부서장, 인사팀장 그리고 본부장님까지 모두 보고가 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최종 결정되는 사안이라고.”


Y 실장은 변명이 궁색해 짐을 느끼자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을 들먹이며 더는 따지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혼자 결정을 내린 일도 아니고 윗선에서 엄격하게 심사를 모두 한 후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해줌으로써 면피를 하려는 듯한 인상을 보였다.

Y 실장은 더이상 H와 얘기하지 않겠다는 듯 H의 시선을 회피했고 이내 자신의 PC 화면에 얼굴을 고정해 버렸다. H 역시 이대로는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곧바로 등을 돌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H의 부서 출근은 결국 그날이 마지막이 되어야 했다.

그는 그날 나에게 면담을 요구하였다.

H는 전 직장에서 그가 신입사원이었을 당시부터 내가 아끼던 후배였고 내가 지금의 회사로 스카우트되어 이직하면서 나 역시 그를 일 년 만에 스카우트 해왔다.

전 직장에서 아무 문제 없이 잘 생활하던 그를 내가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 화근이 된 것 같아 나는 그에게 심하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형, 나 지금 지나가다가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느닷없이 뺨 한 대 얻어맞은 그런 황당한 기분이야.

아무래도 지난번 J 부서장에게 직언해버린 게 화근이 된 것 같기도 해.”


그의 합리적 의심은 내가 충분히 느낄 만큼 적절하였다.


“이번 인사 이동건은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많고 더군다나 그 사유조차도 인정하기 어려워. 나 어떡해야 하지?

지금 당장 회사 경영진들 만나서 항의해야 하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한참을 아무 말 못 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러던 중 예전 대기업 직장에서의 오래전 일 하나가 떠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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