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
[작가의 말]
얼마전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조회수 5,000을 넘었다는 메시지에 조금 의아했다.
무엇이 이 글을 클릭하게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건 내 글에 독자분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작가로서 보답해야 하는것이 인지상정! ^^
<한 그루의 사과나무>는 기존에 썼던 단편을 최대한 더 짧게 재구성한 스마트 소설이었다.
소설집 <흐린날엔 바로크 그리고 사이폰커피>가 출간되어 스마트 소설 몇 편을 브런치에서 삭제했었다.
나의 단편들이 브런치에 올린 스마트 소설의 일부였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조치였다.
그런데 <한 그루의 사과나무는> 소설집에서 제외했었다. 그덕분에 아직 브런치에 살아있다.
관심을 기울여 준 고마운 독자들을 위해 <한 그루의 사과 나무> 원래 단편 그대로를 순차적으로 올려본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말했던 자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백 년 전이나 앞선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젊은 시절 그의 일기장에 썼던 글이었거나 혹은 그 당시 명언으로 알려졌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서 누가 먼저 한 말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당장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생각뿐이다.
얼마 전 의사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는 내 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삼, 사 개월 정도 남았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천천히 주변을 정리하라 했다.
사실상 죽음의 선고를 받은 상태다.
사회로부터 노인으로 낙인찍혀서 연금을 받고 대중교통 무료 이용도 받으려면 아직 까마득하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혜택을 받으며 여유롭게 노후를 즐기려던 계획을 나의 육신은 야속하게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병실 침대가 아닌 내 방의 침실에 누워 매일 같이 정해진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던 터였다.
누구는 죽음 직전까지 여러 날 고통을 겪으며 그것을 줄이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최대치로 투여하며 힘겹게 죽음과의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기도 하건만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더군다나 누군가의 절대적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몸 상태는 더욱 아니었다.
그랬기에 내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을 따름이다.
시한부 인생 선고를 내린 의사는 나에게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권장했다.
부지불식간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24시간 관리받으라는 차원에서다.
의사는 내 형편을 진작 알고 있었다. 내가 가족의 돌봄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의사의 제안은 꽤 현실적이었지만 나는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다.
내 삶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지금도 여전히 고민 중이다.
아까부터 하얀 종이 한 장을 앞에 두고 유언장을 작성해 보려 하였다.
평소에 일기 한 줄 쓰기도 버거웠던 나였다. 몇 시간째 펜만 돌리고 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오래전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달리 말해 글쓴이의 사고체계가 정립이 잘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너희들 가운데 글 쓰는 게 어렵다고 느낀다면 우선 너희가 가진 생각들을 먼저 조리 있게 잘 정리해보거라.”
선생님의 말씀은 결국 아무 생각이 없거나 생각이 있어도 산재해 있으면 아무리 글을 쓰려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인데 내가 지금 정확히 그런 상태였다.
여태까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온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답답했다.
뭐 하나 조리 있게 정리해내지 못한다는 상황이 그래서 더욱 나를 짜증 나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가장하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 보자 우습게도 가장 못 했던 것 하나가 떠올랐다.
그건 바로 결혼이었다.
내가 혼기를 왜 놓쳤을까를 생각해 내기에도 이젠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내 친구들은 더 나이 들기 전에 결혼 정보업체를 이용해 보라는 말을 종종 꺼냈었다.
“국제결혼도 나쁘지 않아. 그리고 돌싱과의 만남도 나쁘지 않고. 그런데 숫총각도 아닌 네 놈이 너무 재는 거 아니냐? 네가 초혼이라지만 많은 선택지에 비해 네 선택의 폭이 너무 좁은 거야.”
한 녀석의 마구잡이 충고에도 나는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속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나는 줄곧 ‘자만추’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든 아니면 자보고 난 뒤 만남을 추구하든 여하간에 이성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선호했었다.
그래서 그러한 업체의 도움은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더구나 돈으로 쉽게 여자를 얻는 것 같은 불편한 생각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