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장편 - #6 (제1장 불미스러운 일)
<#5에 이어서...>
그녀의 장례식에 P는 오지를 않았다.
그가 너무 큰 충격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녀의 죽음에 연루된 당사자로서 부담이 매우 컸던 것 같다.
그녀의 유서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회사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녀였고 더군다나 회사관계자들의 조문을 거절한 것으로 보아 그녀의 유가족들이 대충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장례식과 함께 그녀가 겪은 모든 일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P가 드디어 이직을 사유로 퇴사하였다.
그의 이직 계획은 그가 회사 내에서 공공연하게 언급을 해왔던 사항이었던지라 회사도 더 이상 그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퇴사와 함께 N과 연관된 모든 연결고리가 회사에서 끊어졌다.
그렇게 그녀의 죽음 이후 사무실은 너무나도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그녀가 있던 사무실 책상을 볼 때마다 나는 그날 새벽 그녀가 세상과 이별하던 순간 그녀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이 세상의 마지막 사람으로 그 이후 오래도록 환청과 어떤 뜻 모를 죄책감에 한참을 시달려야만 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Y 실장과 J 부서장을 볼 때마다 N이 말했던 일들이 오버랩되어 더욱 괴로웠다.
N이 자살하기 전에 겪어야 했던 고통을 나 혼자 간직하고 속앓이하고 있기엔 견디기가 너무 어려워 어느 날 그날의 일을 후배 H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어려운 문제 같아. 이미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여자가 죽었고, 더군다나 유족들도 현재까지 모두 조용하잖아. 그 어떤 수사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냥 단순 자살로 결론 나버렸잖아. 우리가 여기서 뭘 더 들쑤시고 있을 수 있겠어? 이미 회사 내부적으로도 N이 아닌 P를 더욱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N이 먼저 결혼할 남자인 걸 알면서도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잖아. 모든 게 죽은 N의 잘못으로 이어져 있어.
N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입증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잖아. 더구나 A그룹 회장에게 당했던 일은 기억했으나 Y 실장의 차 안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는 N도 말을 못 했잖아. 그러니 우리가 지금 당장 부서장과 실장에게 사실대로 얘기하라 한다면 그들의 반응이 어떨 것 같아?
뭔 소리 하냐며 분명히 길길이 날뛰겠지? 이건 잘못 접근했다간 무고죄로 걸고넘어질 수 있는 문제야.
그것을 피하려면 무조건 증거가 있어야 해.”
H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나 또한 그러한 점 때문에 혼자 속으로 속앓이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N이 나에게 전해준 말을 전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아무 일 없듯이 그냥 덮어 버릴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N이 해준 말이 만약 전부 거짓말이었다면, 왜 그녀가 거짓말을 해야만 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그러한 가정 또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녀가 거짓말을 나에게 했다는 가정은 조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새벽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히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고 지금도 확고히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그런 나의 그런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이 드러나는 일이 생겼다.
지난해 엄청난 실적을 올렸던 우리 부서는 회사 내 돌던 소문대로 타 부서가 부러워할 만큼 엄청난 금액의 성과급을 연말에 받게 되었다. 그리고 새해가 시작되면서 우리 부서만의 첫 회식이 모든 실의 직원들과 연합으로 술판이 거하게 벌어졌다. 그날 모두 고주망태가 된 상태였고 Y 실장이 우리 실의 직원들만 따로 불러모아 자신이 잘 아는 분위기 좋은 바(bar)에 가서 한잔 더하자고 연신 부추기고 있었다.
그가 이끌고 간 그곳은 정말 그의 말대로 분위기가 여느 선술집하고는 사뭇 달랐다.
내부 실내장식 자재도 매우 고급스러웠으며 특히 창가 석에서 내려다보는 도심의 야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직원들 모두 이런 고급스러운 바에는 다들 처음인 양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긴 채 바의 분위기에 한껏 취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Y 실장이 으스대듯 거만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이런 서민들 하곤……. 나 아니면 누가 여길 데리고 오겠어. 그만 좀 두리번거려. 격 떨어진다. 처음 온 티를 너무 내네.”
“와우, 실장님은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술값, 안줏값이 장난 아닌데요.”
“여기 바텐더하고도 친하세요? 좀 전에 되게 잘 아시는 듯 인사 나누시던데?”
Y 실장은 직원들이 칭찬 일색으로 그를 특별하게 바라보기 시작하자 취기가 한껏 오른 상태에서 그의 어깨가 더욱 올라갔고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마치 자기만 알고 있는 귀한 정보라면서 소파 깊숙이 묻었던 몸을 반쯤 앞쪽으로 일으키더니 나지막이 말하였다.
“여기 아무나 못 오는 데야. 당신들도 내가 있어서 올 수 있었지 절대 개별적으로는 못 와.
여기 오는 최고의 VIP 손님을 내가 아는데 그분이 누군지 알아?”
다들 그가 말한 VIP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일제히 Y 실장의 그다음 말을 귀를 쫑긋하고 기울이고 있었다.
“놀라지들 마시게. 바로 A그룹 회장님이야. 지난번에 우리 부서가 극비리에 추진 중인 초극강 디지털 4D 홀로그램 프로젝트 관련해서 몇 차례 보고드리고 이곳에서 부서장님하고 대접받은 적 있었거든.”
“그분이라면 우리 최대 후원자이시잖아요?”
“맞아. A그룹 자본이 우리에게 엄청나게 투자됐지.”
모두가 Y 실장의 말에 홀리듯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후배 H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나에게 귀엣말을 하기 시작했다.
“형, 여기가 그때 형이 얘기했던 부서장하고 실장이 N을 만났다던 그곳 아닐까?
그리고 N이 기억하기로 회장님 어쩌고 하는 말도 들었다면서.”
나는 H에게 좀 더 목소리를 낮추라고 눈빛으로 주의를 시키었다.
A그룹 회장은 그야말로 젊은 나이에 갑자기 운이 좋게 부를 축적한 졸부의 대명사라 할 만큼 그런 중년의 경영인이었으나 경영철학은 쥐뿔도 없으면서 회장이랍시고 주식회사의 경영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직원들을 회사의 소모품 정도로 취급하여 맘에 안 드는 직원들을 수시로 잘랐으며 남녀직원을 가리지 않고 폭언과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는 괴짜로 소문이 나 있었다.
매사에 신경질적이었던 회장은 자기 맘에 안 드는 어느 직원에게 심하게 폭력까지 거침없이 행사하였고 맞은 그 직원이 고소하여 교도소 수감까지 경험했으며, 출소 이후엔 그 직원에게 보복을 가하기 위해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대신 청부폭력을 행사할 사람을 곁에 두고 그 직원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였으며, 이런 그의 보복이 두려워 해고를 당하거나 회장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한 직원들이 고발이나 고소는 감히 꿈에도 생각 못 하며 누군가에게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도 자자했다.
“내가 말이야 지난번에 부서장하고 같이 회장님 초대로 이곳에 왔을 때 회장님 전용 룸에 들어가 본 적 있어. 바로 저쪽 오른쪽으로 나 있는 복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엄청나게 화려한 룸이 하나가 나오거든.
거긴 회장이나 다른 특별한 VIP 회원 전용 방이야. VIP들은 1층에서 VIP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곳으로 들어가게 돼 있어. 두 군데의 대형 통유리를 통해 내려다보는 야경이 여기 공용 홀에서 보는 것과는 천지 차이야. A그룹 회장이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이곳 직원들은 그 방에다 항상 크리스털 물컵을 일반 샘물이 담긴 생수가 아닌 빙하수와 함께 기본적으로 세팅해 두고 있지.”
직원들이 더욱 흥미로워하자 Y 실장은 더욱 의기양양 해하며 자신만의 경험담을 과장된 몸짓을 섞어가며 자랑하려는 듯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잘 들어봐. 더 웃긴 건 언제부턴가 이곳 바의 직원들이 그 크리스털 컵을 깨지는 글라스가 아닌 글라스처럼 완전히 똑같이 보이는 깨지지 않는 가짜로 교체 놓았던 거야.
누구의 지시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그렇게 교체된 거야.
왜냐면 회장이 뭐든 맘에 안 들면 수시로 잔을 들고 던져 깨트리는 버릇이 어느 장소 가리는 곳 없이 항상 있었거든. 비싼 크리스털 컵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깨지면 치우는 것도 골치 아프고 또 행여 그걸 맞기라도 하는 날이면 더 골치 아픈 거야.
회장은 한동안 그 가짜 크리스털 컵에 조금도 의심이 없었고 다행히 여기에 와서 그걸 깨트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 그런데 하필 우리가 초대받아 온 그날 그걸 내가 목격한 거야.
그날은 회장이 자기의 회사 일로 임원들과 몇 차례 주고받더니 뭐가 맘에 안 들었는지 욕을 엄청나게 하면서 앞에 놓인 크리스털 컵을 집어 들어서 힘껏 던졌는데 안 깨져. 회장이 놀랐지.
어?, 야 이거 뭐야? 왜 안 깨져? 이러더니 또 한 번 잡아서 힘껏 벽을 향해 내던졌는데, 또 안 깨져.
이걸 보고 있던 임원 하나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크리스털 컵을 특수 소재로 만들어 안 깨지는 것으로 교체해놓았다고 말하면서 일반 크리스털 컵보다 몇 배는 더 비싼 최고급품이라면서 비싸게 주고 회장님을 위해 특수 제작했다는 것을 유독 강조하더군.
그런 식으로 나름 회장의 환심을 사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그 말을 들은 회장 왈,
야 이, 새끼야 컵이 깨져야 컵이지 안 깨지면 그게 컵이야 하고 앞에 놓여있던 양주병을 집어 들고는 냅다 그 임원에게 던져버리는데, 와, 나 그때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하네.
병에 맞은 그 임원 이마에서 피가 막, 그냥 막 솟구치는데 이건 완전 뭐 호러무비 찍는 줄 알았어.
그걸 회장이 씩씩거리며 지켜보면서 나지막이 한마디 딱 해.
아이 씨, 이건 왜 깨지고 지랄인데 새끼야!
근데 옆에 있던 우리 부서장이 더 가관이야. 얼마나 긴장하고 쫄았는지 바지에 찔끔찔끔 지리고 있더군.”
직원들은 하나같이 야유를 보내며 거짓말도 적당히 하라며 다들 헛웃음을 지었다.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한 그날 바에서의 직원 회식은 Y 실장의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아슬아슬 오가는 그만의 입담으로 그렇게 시작하고 끝이 났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모두가 다 취한 상태에서 귀가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각자 헤어지던 상황에 후배 H가 조용히 내 팔목을 잡아끌었다.
“형, 우리 다시 바에 들어가서 확인 한번 하고 가자.”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일을 다시 확인한다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잠시 머뭇거리는데 그가 나의 팔을 더욱 강하게 잡고 나를 다시 바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바에 들어온 H는 바텐더에게 N과 함께 찍은 부서 단체 사진을 보여주며 그날 회장과 만났던 우리 측 일행을 지목하며 이들이 맞는지 물어보았다. 그 바텐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는 체를 하였다.
“네, 기억합니다. 사진 속 이분들 맞습니다.”
H가 지목한 J 부서장, Y 실장, 그리고 N 모두를 바텐더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더구나 부서장과 실장이 N과 함께 오기 훨씬 전에도 A그룹 회장 일행과 함께 왔던 적도 있었음을 말해주었다.
“특히 이 여성분은 모델이신 것처럼 키도 엄청나게 크셨고 얼굴도 너무 예쁘셔서 저도 사실 그랬지만 그날 여기 오신 손님들 모두 그 여자분을 다 한 번씩은 흘낏거리셨어요. 그날 단연 돋보이셨거든요.
그런데 이 사진 보니 같은 직원분 같으신데 왜 오늘은 같이 안 오신 건가요?”
그가 아쉽다는 눈빛을 보이며 와인 잔을 닦고 있었다.
“그날 혹시 A그룹 회장님도 오셨었나요?
“네 맞아요. 아마 회장님과 약속이 돼 있으셨던 것 같았고, 회장님 오셨다는 연락을 받고 이분들도 VIP 방으로 들어가셨지요.”
“혹시, 이 여자는 그날 만취해서 그 방에 들어갔었나요? 아니면…….”
“아니에요. 세 분 다 멀쩡하셨어요. 제가 그날 VIP실까지 안내해 드려서 잘 기억합니다. 하지만 VIP실에서 술을 많이 하셨는지 특히 이 여자분께서 상당히 취하신 채 나오셨고 회사 일행분이 부축해서 나가셨어요.”
H가 바텐더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나에게 그날 N이 VIP룸에 들어간 뒤 회장의 강압에 못 이겨 그 이상한 술을 먹은 것이 아닌지 들릴락 말락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잡고 싶어 했다.
“혹시 그날 CCTV 녹화 영상을 볼 수 있을까요?”
“얼마 전이라 아직 영상이 남아 있을 거예요. 근데, 왜 무슨 일 때문에……. 혹시 이 여자분이 회장님께 무슨 실수라도 했었나요?”
우리는 뭐라고 둘러대기가 쉽지 않았다.
나도 그랬지만 H가 CCTV 녹화 영상을 보여달라고 말해 놓고는 바텐더가 약간 경계의 눈초리와 질문을 던지자 더 당황해하며 회사 일로 조사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임기응변하였다.
그는 우리를 CCTV를 녹화하고 있는 조그마한 방으로 안내했다.
그러면서 불안의 눈초리를 지으며 넌지시 말하였다.
“여기는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인데. 이거 지배인님 알면 곤란한데요.
근데 회장님하고 잘 아시는 분들이고 하니…….”
바텐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H가 약간의 돈을 그에게 주려고 하였다.
“괜찮습니다. 단, 십분 이상 이곳에 머물지는 말아 주세요.”
그렇게 그는 그날의 영상이 녹화된 화면을 열어놓고 황급히 방을 나갔다.
우리는 빨리 보기 화면으로 그녀의 생전 모습을 영상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고화질로 녹화된 영상 속의 그녀는 여전히 예쁘고 아름다웠다.
아쉬운 것은 VIP실 내부에는 CCTV가 없기에 그곳에서 벌어진 그 어떠한 일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A그룹 회장이 있던 그 방에서 부서장과 실장 그리고 그 외 임원 몇 명이 모두 그 방을 나와 공용 홀에서 함께 술판을 벌였는데 그녀만이 나오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회장의 호출이 있었는지 임원들이 황급히 달려갔고 그 뒤를 이어 부서장과 실장이 N을 양쪽에서 부축한 채 바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우리는 N의 행적을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었다.
N이 말했던 차 안에서의 일은 Y 실장이 건물 내부 지하주차장에 주차했는지 아니면 다른 장소에 주차했는지 불분명했고, 바를 벗어난 다른 공용공간의 CCTV 녹화 영상들은 건물관리자의 협조를 요청해야 하는 사안으로 우리 선에서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보였다.
우리는 CCTV 녹화 영상을 통해 그녀가 상류층들이 출입하는 바에 왔던 걸 확인했고 A그룹 회장과 단둘이 남아 있는 상황까지 추정할 수 있었으나 그 이상의 어떤 범죄행위를 잡을 단서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나는 후배 N과 함께 바를 나오면서 우리의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말해주었다. 심지어 CCTV 녹화 영상을 보기 위해 바텐더에게 팁까지 줘가며 매수하려 했던 것은 좀 지나친 처사가 아니었냐며 타박을 주었다.
“형, 내가 이 일을 형에게 못 들었다면 모르겠는데 알고 있는 이상은 그냥 못 넘어가겠어.
이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잖아!”
나의 말에 약간 흥분한 H는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더군다나 그 잘못된 것이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면 그것은 더욱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맞받아쳤다.
“유가족들도 나서지 않는 일을 우리가 지금 와서 뭘 어떡하겠다는 건데?
A그룹 회장이 연루됐어.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이란 건 너도 잘 알잖아!
그 사람 잘못 건드리는 날에 우리 목숨도 보장 못 해. 더군다나 그가 어떤 인물이건 간에 우리 회사 아니 우리 부서가 지금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거대 프로젝트의 돈줄이란 말이야.
그 중심에 우리 본부장도 갖고 노는 J 부서장이 있고 그 아래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는 Y 실장도 있잖아.
눈에 안 보이는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자기들 이익만 바라보고 뭔 짓이고 하는 인간들이야.
여자 하나 가볍게 죽였어.
난 N이 자살했다고 지금도 생각 안 해. 걔는 사실상 타살당한 거야.
우리가 모르는 그 거대한 카르텔 안에서 죽임을 당한 거라고!
그러니 우리 이제 N과 관련된 이야기는 앞으로 하지 말고 이 일을 완전히 잊어버리자.”
H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렇게 쉽게 떨쳐내지를 못하겠는데. 그게 내 성격이잖아. 잘못된 건 잘못 된 거야 형!
나도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하지만 우선 부서장하고 실장을 예의 주시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
그날,
겨울의 끝자락에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에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 굳은 듯이 한참을 서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