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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21. 2021

사랑을 깨지게 하는 건

- 스마트 소설 -

“사과해! 빨리 사과해! 아까 그 말 빨리 사과하라고!”


그녀가 마치 이성을 잃기라도 한 듯 그에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거리 한편에서 언쟁하던 중 그가 그녀에게 먼저 쌍욕을 했던 게 그녀를 더욱 화나게 했다.


“야! 조용히 좀 말해. 쪽팔리게.”


“쪽팔린 건 아니? 이 쌍놈 새끼야!”


“이 미친년이 진짜!”


그의 한 손이 번쩍 올라갔고 금방이라고 그녀의 머리통을 내려칠 기세였다.

그러자 그녀가 더욱 악에 받쳐 소리치면서 그에게 자신의 머리를 들이대었다.


“그래, 쳐봐! 어서 쳐봐! 쳐보라고! 너 아빠가 그렇게 쌍욕 하고 너 엄마한테 손찌검하고 그러니? 보고 배운 게 있으니깐 그렇겠지!”


이미 주변엔 많은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이들 커플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더구나 자신의 부모를 거론하면서 자신과 부모를 동시에 공격한 그녀에 대하여 화가 치밀어 오르기보단 너무도 정확히 맞춘 그녀가 무서울 정도였다.


어린 시절 항상 술에 취해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에게 욕지거리하고 손찌검을 일삼은 아버지의 모습을 아직도 그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 천하에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가정사가 드러난 것 같아 한시라도 빨리 그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그녀의 손을 낚아채다시피 해가며 한가한 곳으로 이동하려 하자 그녀가 거세게 저항하며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손 놓으라며 다시 한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그녀는 이미 이성이 마비된 것만 같아 보였다.

더 이상 그녀와의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그녀의 손을 놓고 뒤돌아서 가려고 몇 발자국 움직였다.

그가 등을 돌리고 말없이 가자 그녀가 잠시 바라보더니 어딜 도망가려 하냐며 이내 달음박질해서 그에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올라타다시피 해가며 그를 못 가게 붙잡았다.

그녀가 그렇게 그의 등 뒤에서 몸을 날려 그의 목에 팔을 걸려고 하는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업어치기 유도기술로 그녀를 바닥에 메다꽂았다.


정말 그도 깜짝 놀랄 정도로 순간적인 그의 반사신경이 만들어낸 일이었다.

전직 유도선수출산답게 업어치기 기술이 너무나도 자연스레 나왔다.

하지만 기술이 제대로 들어간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너무 가볍다 보니 한 팔로 대중 걸고 넘겼는데도 그녀가 공중제비 돌기 한 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등과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길바닥에 떨어진 그녀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일부 여자들은 비명을 내질렀고 일부 남자들은 ‘우’ 하는 야유를 그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그제야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를 정도로 이제 그가 이성을 잃은 듯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신음하며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가 급하게 구급차를 부르며 그녀의 이름을 계속 부르고 있었다.


그날의 다툼은 단순한 헤프닝이 아니었다.

분명히 우발적인 일은 맞긴 하지만 오래도록 그 둘 사이에 해묵은 감정들이 하필 한꺼번에 폭발했다.

그날 구급차에 그녀가 실려 갈 때 그가 동승했고 병원까지 가는 동안 그녀 곁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였다.

그녀는 의식이 있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끝내 그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의 자취방에는 아직도 그녀의 온기가, 그녀의 숨결이, 그리고 그녀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였다. 그는 단념했다.

두 번 다시 그녀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이제는 너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백번 천번 그가 잘못한 것이라고 그는 스스로 자책했다.

물론 그녀가 자신에게 한 행동도 결코 문제가 없지 않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깨지게 된 것에 자신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는 걸 그가 스스로 부정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녀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그녀의 사진을 없애기로 했다.

갖고 있다 보면 너무 괴로울 것만 같았다.

한때 다정했던 그녀와의 모습들을 쉽게 지울 것만 같았지만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너무 힘이 들었다.

그녀에게 선물 받은 것들도 하나씩 찾아냈다.

이것 역시 갖고 있으면 그녀를 잊기 힘들 것만 같았다.

그 중엔 지난겨울에 그녀가 선물한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브랜드 목도리가 있었다.

너무 귀한 선물이라 한 번도 착용한 적 없이 아껴두고 있었다.

그는 살짝 탐이 났다.

굳이 버릴 필요까지 없지 않냐는 생각이 들자 이내 자신이 속물 같아 보였다.


그는 이것을 그녀에게 다시 되돌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돌려주면서 더 좋은 남자에게 선물하라는 것도 좀 우습지만 더럽고, 치사해서 갖고 있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건 더욱 우스우리라 생각했다.

여러 이유를 떠올리다 결국 자신은 이런 귀한 선물 받을 자격 안 되는 남자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눈에 유리병 하나가 띄었다.


그것 역시 그녀의 오래전 선물이었다.

그 안에는 천 마리가 안 돼 보이지만 그래도 족히 수백 마리 돼 보이는 종이학이 들어있었다.

한 번도 그 유리병의 종이학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접을 수 있는 건 종이비행기 정도였고 종이학 접기는 그의 산도적 같은 두꺼운 손으로 접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이제야 보니 유리병 안의 종이학이 아주 작았다.

어떻게 저렇게 작게 접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병을 열고 종이학 한 마리를 꺼내었다.

너무나도 작았다.

볼수록 신기했다.

그는 버릴 때 버리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접는 건지 방식을 알고 싶었다.


접은 종이학을 조심히 펴보면 어떻게 접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가 큰 손으로 작은 종이학을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펴보았다.

하나씩 접은 종이를 다시 펴나가는데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펴진 종이 위에 아주 작은 그녀의 손글씨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정말 사랑해~’


그가 놀라서 다시 종이학 한 마리를 잡고 또 조심스럽게 펴보았다.


‘오빠랑 결혼하고 우리 둘이 하나씩 종이학을 펴보면 기분이 어떨까?’


그가 또 한 마리의 종이학을 펴보았다.


‘우리 평생 사랑하고 사는 거야~’


또 하나를 펴보았다.


‘오빠, 지금, 이 순간도 나 많이 사랑해?’


그가 유리병을 바닥에 뒤집어 종이학을 모두 쏟아부었다.

정신없이 펴나가는 종이학 수백 마리에 그녀의 음성이 모두 담겨있었다.


그는 심란했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종이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정말 천마리를 접었어야 하는 건가? 천마리를 마저 접기 전에 왜 나를 준거니?’


그러자 종이학들이 일제히 그를향해 외쳐댔다.


"너란놈, 끝까지 이기적이구나. 왜 너가 나머지 부족한  접어서  채울생각은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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