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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23. 2021

가장 조심해야 할 남자

- 스마트 소설 -

그녀가 큰 아빠 댁을 방문한 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였다.

남자친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녀 앞에서 싹싹 빌었지만, 그녀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기 힘들 정도로 깊었다.

울적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 도회지를 잠시 떠났다.


일찍 친아빠를 여의고 큰 아빠를 친 아빠처럼 따르던 그녀였다.

그리고 집안에 막내 손녀였던 그녀를 친할머니가 너무나도 애지중지하였다.

그녀의 할머니는 여든이 훨씬 넘은 나이였지만 여전히 밭일할 만큼 정정하였다.


“언제 신랑 될 사람하고 같이 내려올겨? 매번 올 때마다 다음번엔 데리고 온다 했으면서 오늘도 혼잔겨?”


큰 아빠의 농담처럼 건넨 말에 그녀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실연여행 온 거란 말이야.”


“실연? 니는 시방 뭔놈의 하자가 그리 많아 그로코롬 맨날 차이는겨?”


“차이긴 누가 차여. 내가 찬거란 말예욧! 근데 할머니는 어디 나가셨어요?”


“언제 집에 얌전히 계시는 거 봤능감. 애저녁에 교회 가부렀지, 곧 오실 거여.”


그날 늦은 저녁 그녀의 큰 아빠는 실연을 잊는 덴 괴기가 최고라며 삼겹살을 구워 그녀를 배불리 먹였다.

그리고 그녀가 그날 밤 할머니의 곁에 드러눕자 애완견 치와와가 원래 자기 자리인데 왜 뺐냐며 그녀와 그녀의 할머니 품을 파고들었다.

거실 한가운데 펴 놓은 모기향이 맞바람에 이리저리 출렁였다.

그녀의 시린 아픔도 저 모기향에 실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녀의 할머니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머시매 다섯을 할미가 야그해주랴?"

하자 그녀는 귀를 쫑긋하였다.

그러자 덩달아 치와와도 고개를 들더니 그 큰 귀를 쫑긋한다.

그걸 지켜보던 큰 아빠가 누가 암캐 아니랄까봐 저러냐며

"니는 개새끼여. 뭔 귀를 사람맨치 빨딱 세워" 했다.


“첫째는 말여 니를 항상 즐겁게 해주는 머시매를 조심혀. 말 많고, 잘 웃게 해주고, 이것저것 뻔질나게 잘 챙겨주고, 외국말로 뭣이다냐? 거시기. 깜짝놀래키는 잔치.”


“이벤트?”


“암튼 그런 거 잘 해주는 놈 있잖혀. 그런 놈들 특히 조심혀.”


그녀가 슬며시 미소지었다.


“평생 그라고 살 놈 없당께. 맨날 그로코롬 하면서 니 맴 뺏고 바로 돌아서부리면 그땐 이미 늦는겨. 그라고 둘째는 말여 니만 바라보는 머시매여.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좌우당간 니 밖에 모르는 머시매는 조심혀. 머시매는 자고로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두루두루 좋아야 한단말여. 가시나가 싫다는 데도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얼빠진 놈들 보면 죄다 혼자여. 사회성이 없어 그라제. 무조건 지 성깔에 차야만 하는 자그밖에는 모르는 한심한 놈들이제.”


그녀도 격하게 수긍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라고 말여 셋째는 술담배 좋아하는 머시매여. 술쳐먹고 비글비글허며 길바닥서 부랄 내밀고 오짐 깔기는 놈들, 죄다 술이 허벌나게 웬수제. 제정신으로 그라겠냐?”


그녀가 자기도 언젠가 그런 아저씨를 길에서 본 적 있다며 깔깔 웃었다.


“으사선상덜이 술담배 하지말라는게 다 이유가 있는겨. 자그 몸 간수 잘 하는 머스매가 솔찬히 중요허제. 자그가 건강해부러야 지 각시를 잘 챙기지 않겄냐?”


“엄니, 얘기 듣다보니 술은 쪼까 내가 거시기 하요.”


큰 아빠가 뭔가 찔리는 듯 할머니의 말을 끊었다.

얌전했던 치와와가 또 고개를 벌떡 들었다가 이내 눕는다.

그녀의 할머니는 개의치 않고 네 번째로 조심해야 할 남자를 말해주었다.


“그담엔 종교가 없는 머시매여. 정 믿을게 없다하믄 삼시랑 할매라도 믿어야 하제.”


“하이고메, 어매요, 교회 권사님이 뭔 말을 또 그리 하신다요.”


큰 아빠의 핀잔에 할머니는 웃으시며 말을 다시 바꾸었다.


“그랴. 교회 댕기는 머시매가 겁나게 좋제. 일주일 내내 헛짓거리 하다가도 교회가서 단 한번만이라도 자그 잘못 고백하는 머시매가 훨 낫제. 좌우당간 자그가 뭘 잘못했는지는 알아야 남 탓을 안하제. 그라고 믿는 구석이 있어야 자신감도 있는 법이제. 허풍사니하고 다른겨.”


옆에서 큰 엄마가 자기 어렸을 땐 교회다니는 교회 오빠라면 50점은 먹고 들어갔었다고 거드니 큰 아빠가

"그라믄 그때 난 50점도 못 먹고 들어간겨?" 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다는 다섯 번째를 그녀에게 말하자 얌전히 듣고만 있던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 요즘에 그런 남자가 어딨어?”


그러자 큰 엄마도 자신들의 사위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며 그녀의 편을 들었다.

그런데 큰 아빠는 그렇지 않다며 큰 엄마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다.


“나가 말여 항시 당신 어무이 아부지께 전화하덜 않았는감. 나가 그때 공중전화 땜시 허벌나게 고생 좀 했제. 요샌 참 편한 시상이여. 나 때는 말여…….”


“아유, 큰 아빠 또 ‘라때’나왔다.”


그녀가 말을 끊고 다시 할머니 곁에 누웠다.

그녀의 할머니가 알려준 다섯 번째는 어른을 피하는 남자였다.

누구나 다 휴대전화를 가진 시대인만큼 데이트하고 나서 늦은 밤 여자를 집에 바래다주지 못하면 그녀의 엄마나 큰 아빠에게 남자가 안부 전화라도 하게 하라는 할머니 말씀은 매번 자신들의 데이트를 어른들께 공개하라는 것 같아서 그녀는 조금 공감이 안 갔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말이 고루하다고 하지 않았다.


“어른의 위엄은 무시 못 하는 거여. 머시매들이 가시나 함부로 대하는 건 어른 몰래 다 자그를 숨기려 하기 때문이제. 나가 말한 거 죄다 반대로 하는 머시매가 귄있는거제. 자고로 똑똑헌 가시나가 연애도 잘해부러. 내야 갱생이는 똑똑허니 잘할 거여.”


할머니의 말끝에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려고 하는데 큰 아빠가 큰 엄마를 보며 한마디 했다.


“여봐, 긍께 어무이 말대로라면 내하고 사는 자네는 솔찬히 모지란가부네.”


“하이고메, 스스로 모지리 인정도 아니고, 겁나게 얼척읎네!”


큰 엄마가 큰 아빠의 등짝을 휘갈기는데 치와와가 벌떡 일어나더니 ‘멍’하고 짖었다.  



   

* 귄있다: 형용사 방언 ‘귀염성스럽다’의 방언 (전남)_역주: 다른 말로 성격 좋다

* 얼척 없다: 형용사 방언 ‘어처구니없다’의 방언 (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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