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녀 앞에서 싹싹 빌었지만, 그녀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기 힘들 정도로 깊었다.
울적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 도회지를 잠시 떠났다.
일찍 친아빠를 여의고 큰 아빠를 친 아빠처럼 따르던 그녀였다.
그리고 집안에 막내 손녀였던 그녀를 친할머니가 너무나도 애지중지하였다.
그녀의 할머니는 여든이 훨씬 넘은 나이였지만 여전히 밭일할 만큼 정정하였다.
“언제 신랑 될 사람하고 같이 내려올겨? 매번 올 때마다 다음번엔 데리고 온다 했으면서 오늘도 혼잔겨?”
큰 아빠의 농담처럼 건넨 말에 그녀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실연여행 온 거란 말이야.”
“실연? 니는 시방 뭔놈의 하자가 그리 많아 그로코롬 맨날 차이는겨?”
“차이긴 누가 차여. 내가 찬거란 말예욧! 근데 할머니는 어디 나가셨어요?”
“언제 집에 얌전히 계시는 거 봤능감. 애저녁에 교회 가부렀지, 곧 오실 거여.”
그날 늦은 저녁 그녀의 큰 아빠는 실연을 잊는 덴 괴기가 최고라며 삼겹살을 구워 그녀를 배불리 먹였다.
그리고 그녀가 그날 밤 할머니의 곁에 드러눕자 애완견 치와와가 원래 자기 자리인데 왜 뺐냐며 그녀와 그녀의 할머니 품을 파고들었다.
거실 한가운데 펴 놓은 모기향이 맞바람에 이리저리 출렁였다.
그녀의 시린 아픔도 저 모기향에 실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녀의 할머니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상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머시매 다섯을 할미가 야그해주랴?"
하자 그녀는 귀를 쫑긋하였다.
그러자 덩달아 치와와도 고개를 들더니 그 큰 귀를 쫑긋한다.
그걸 지켜보던 큰 아빠가 누가 암캐 아니랄까봐 저러냐며
"니는 개새끼여. 뭔 귀를 사람맨치 빨딱 세워" 했다.
“첫째는 말여 니를 항상 즐겁게 해주는 머시매를 조심혀. 말 많고, 잘 웃게 해주고, 이것저것 뻔질나게 잘 챙겨주고, 외국말로 뭣이다냐? 거시기. 깜짝놀래키는 잔치.”
“이벤트?”
“암튼 그런 거 잘 해주는 놈 있잖혀. 그런 놈들 특히 조심혀.”
그녀가 슬며시 미소지었다.
“평생 그라고 살 놈 없당께. 맨날 그로코롬 하면서 니 맴 뺏고 바로 돌아서부리면 그땐 이미 늦는겨. 그라고 둘째는 말여 니만 바라보는 머시매여.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좌우당간 니 밖에 모르는 머시매는 조심혀. 머시매는 자고로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두루두루 좋아야 한단말여. 가시나가 싫다는 데도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얼빠진 놈들 보면 죄다 혼자여. 사회성이 없어 그라제. 무조건 지 성깔에 차야만 하는 자그밖에는 모르는 한심한 놈들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