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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24. 2021

웃기고도 슬픈 현실

- 스마트 소설 -

말이 많다 보면 말실수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고 하여 원래 말 많은 사람이 의도적으로 말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일 터이다. 

실수를 줄일 요량으로 한순간 말을 안 하고 넘긴다 해도 천성이 그래 먹으면 다시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별로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실수를 하는 사람이 왕왕 있다. 

이것은 말 많은 사람보다 어찌 보면 더 답답한 노릇이 아닐수 없다. 


어쩌다 한번 한 말이 상대방에게 비수가 되어 큰 상처를 주거나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말이 많고 적건 간에 일단 말주변이라도 있으면 어떠한 말실수를 했더라도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또는 상처받지 않게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처럼 말주변이 좋으면 욕먹을 일이 반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 


그런데 말주변이란 게 어디까지나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가라앉을만한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띄워주는 만큼 그 반사신경이 무척 예민하고 특출나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말실수가 많은 자에게 말주변까지 겸비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애초부터 말실수하지 않는 것이 최상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말주변을 밑천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축복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말주변 강화 훈련 학원이라도 있다면 우리 가족 모두 지금 당장이라도 강제로 등록하게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주 오래전 우리 주변에 웅변학원이라고 성행했던 적이 한때 있었는데 요즘 스피치 학원과 비슷하여 대중 앞에서 말하는 훈련을 강화해준다고는 하지만 떨지 않고 말 잘한다고 말실수하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 가족에게 유독 심하게 나타나는 말실수는 어느 특정인이 아닌 가족 모두 골고루 말실수 전력이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가족 모두 자각은 하고 있으나 다들 어쩌겠냐며 체념단계에 있는 상황이다. 


어렸을 때 막내 이모의 신혼 집들이를 위해 외할머니와 함께 방문한 적 있다. 

사돈내외도 오신다는 말에 외할머니는 이모의 신혼집에 다 와서는 빈손에 가기 좀 그렇다며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돈에게 줄 사이다와 콜라 몇 병을 사 들고 가셨다. 

어머니와 이모는 음식준비에 여념 없으셨고 사돈내외가 먼저 와 있었다.

외할머니께서 음료수 봉지를 안사돈에게 건네셨고 안사돈은 예의상 ‘뭘 이런 걸 다 사 오셨어요.’ 하자 외할머니는 여기에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마셔야 했으나 그때 받아넘긴 말씀은 


“아유 뭘요, 맛도 없는 건데!”였다. 


여기서 말주변이 있었더라면 나나 엄마나 이모 누구라도 한사람이라도 “약소한 겁니다”를 잘못 말씀하신 거라고 즉각 둘러댔겠지만 모두 쓴웃음만 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외할머니는 사돈을 피해 두 딸에게 작은방으로 몰래 불리어가 수 분 동안 맛 없는 건 사돈 주는 거냐며 핀잔을 들으셔야 했음은 두말한 나위 없겠다. 

말이 헛나와 버렸다며 웃으시는 외할머니에게서 그 피를 이어받은 어머니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큰아이 돌잔칫날 어머니는 아내가 소개해 준 아내의 친한 친구를 맞이하면서 


“아유 왜 그리 뚱뚱해요” 


했다가 그 친구와 절교해야 했다는 아내의 잔소리를 나는 몇 날 며칠 들어야 했다. 

몸의 부피가 나가 보이는게 눈에 자꾸 걸려서, 그래서 뭐라도 말하고 싶었다면, 굳이 안 해도 될 말이지만 그래도 꼭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면, 


“아유, 우리 며느리도 친구처럼 살 좀 찌우면 좋겠는데. 너무 예뻐 보여요.”


라고 해주는 말주변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일부러 화나게 할 마음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라고 웃으시며 넘기는 어머니의 모습 앞에서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 어머니의 자식인 내 여동생도 만만치 않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첫 소개팅을 미대생 오빠랑 했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실력이라곤 개발새발낙지 실력인 애가 미대생 오빠 앞에서 뭐라도 아는 척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 고상한 척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주 앉은 그 서양화 전공 미대생 오빠에게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저는 샤갈이 그린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을 참 좋아해요."


라고 했다가 


“네? 마르크 샤갈 말씀인가요? 그가……. 언제 그런 걸 그렸을까요?” 


“어머! 오빠는 미대생이면서 그것도 모르세요?”라는 정신 나간 말은 안 했어야 지당했다. 

샤갈은 원래 그런 그림을 그린 적 없다는 말을 나중에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의 흑역사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나는 그걸 두고 "말주변이 문제가 아니라 넌 그냥 무식한 거야"라고 해주었다. 


지식이 없는 것도 말실수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다. 

여동생이 그때 소개팅 남자 앞에서 아는 체하지 말고 


“저의 무식함을 오빠의 유식함으로 앞으로 가득 채워주세요”


라고 아양을 떨었으면 그나마 체면 유지는 했을 거다. 

그런데 사실 우리 가족 중의 압권은 단연 아버지이시다. 

총선이 한창이던 때 진보 여당의 모 초선의원이 그를 잘 키워준 당을 배신하고 정권교체가 예상되는 보수 야당으로 철새가 되어 날아가서 공천을 받아먹고는 그 후보가 우리 동네에서 출마했다. 


그가 새벽부터 전철역 인근에서 명함을 오가는 시민에게 뿌리며 유세 활동을 하는데 하필 우리 아버지와 우연히 만났다. 

그가 명함을 주길래 아버지도 얼떨결에 자신의 명함을 반사적으로 건넸다. 

그런데 아버지가 배신의 아이콘인 그를 원체 싫어하셨다. 

그래도 아무리 싫어해도 그냥 속으로만 싫어해야 했지만, 집안 내력이 어디 가겠느냐는 듯 아버지는 그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씀을 버럭 내질렀다. 


“근데 난 말여, 당신 같은 사람이 정말 싫어! 아~주 싫어! 키워준 당과 밀어준 국민의 등에 칼 꽂고 배신때려 튀어버리면 잘 될 것 같아!”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당사자 앞에서 그런다는 건 말실수다. 

그나마 말주변으로 조금이라도 주워 담으려면 곧바로 


“아유, 조크(joke)여. 조크(joke). 마이 조크(my joke). 꼭두새벽부터 욕보시오!.”


라는 임기응변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그나저나 그날 온종일 아버지는 그 인간 선거운동대책본부에서 연락 오지나 않나 마음 졸였다 한다. 

신상정보 가득 담긴 당신의 명함을 반사신경 하나는 끝내준 덕분에 왜 하필 날름 주어서는 국회의원 후보 나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냐며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나 보다. 


말주변 없는 자들의 그저 웃기고도 슬픈 현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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