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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26. 2021

기약 없이 욕먹을 일

- 스마트 소설 -

‘자기야! 아직도 안 끝난 거야?’


‘많이 늦어?’


‘무서워 죽겠어.’


저녁부터 아내로부터 휴대전화 문자가 계속 날아왔다. 

말없이 무서움에 떠는 이모티콘도 연신 줄을 이었다. 


“내가 먼저 끝내도 눈치가 보여 먼저 퇴근 못 하겠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줘. 빨리 들어갈게.”


“애는 조금 전까지 칭얼대다가 잠들었어. 근데 이제 너무 조용하다 보니 나 혼자 있는 거 같아서 더 무서워 죽겠어.”


자정이 가까워져 오자 아내의 불안은 극에 달했고 직접 통화하면서 내 음성을 듣고 나서야 잠시나마 아내가 안정할 수 있었다. 

야근으로 인해 밤늦도록 회사에 붙잡혀 있던 터였다. 

밤 열 한시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야근이 끝이 났다.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간대도 집까지 족히 한 시간은 걸릴 것이었다. 

어떻게든 자정되기 전 아내 곁에 있어 주어야 했다. 

아내가 자정을 무서워하는 건 그 아파트 최상층 15층에 입주하고부터였다. 


어느 날부턴가 밤 열두 시만 되면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부엌칼로 나무 도마를 규칙적으로 내려치듯 들려왔다. 

‘딱, 딱, 딱, 딱’ 

이런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안 들렸다 반복되는 것이었다. 

매일 한 시간여 정도 지속하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바로 밑의 층 주민도 그 소리에 민감했고 새댁 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냐고 아내에게 조심히 물어오기도 했다. 


택시기사에게 교통법규 지켜주시는 선에서 최대한 빨리 달려달라 부탁하여 집으로 갔지만 결국 밤 열두 시를 넘겨야 했다. 

이미 아내는 자정이 되자 그 소리가 들린다며 연신 전화로 난리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드디어 15층에 내렸다. 

규칙적인 타격음이 들려오자 오싹하며 닭살이 돋았다. 

우리 집 맞은편 현관문에 포스트잇 여러 장이 마구 붙어있었다. 

좀 조용히 해달란 항의성 메시지였다. 

벌써 여러 날째 포스트잇이 그대로 붙어있다. 

언젠가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아래층 주민들이 자정 넘은 시간에 앞집 문을 연신 두드리며 빨리 나오라며 악에 받쳐있었다. 

경비실과 관리실에 민원을 넣어도 소용없으니 주민들이 떼를 지어 직접 나선 것이다. 


위에서부터 전달되는 소리가 우리 집이 아닌 걸 확인 했으니 범인은 바로 우리 앞집이라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하지만 그날 주민들은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그 괴이한 소리를 여전히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인근 동네에서 잔인한 토막살인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사이코패스 범인이 여성을 성폭행 후 집안에서 칼로 난도질하고 각을 떴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그 사건과 자정마다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를 일체화시켰는지 그 이후 아무도 그 집 문을 더 이상 두드리는 자가 없었다. 


직장까지 출퇴근 시간만 왕복 세 시간이 넘다 보니 우리 식구는 결국 내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다시 이사해야만 해서 자정마다 들어야 했던 괴이한 소리에서 해방됐다. 

그런데 이사 당일 저녁 아래층 주민에게서 조용히 해달라는 인터폰 연락을 받았다. 

온종일 이사한 것을 잘 알 것이고 저녁 늦게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남은 정리를 하던 차였다. 

그렇게 시끄럽게 한 것도 아닌데 너무 억울했다. 

왠지 그 항의가 낮에 움직이는 건 봐주겠는데 저녁에 움직이는 건 봐줄 수 없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움직이려면 살살 기어서 움직이라는 엄포와도 같이 들렸다. 

그래서 오기가 생겨 오히려 일부러 소음을 유발하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오늘 첫날부터 우리 군기 바짝 한번 잡아보겠다는 거야 뭐야?” 


아내가 화를 냈고 나 역시 이웃이 먼저 이사 첫날부터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니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그렇지만 공동주택에 사는 이상 남을 생각 안 할 수 없기에 그 이후 계속 조심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우리 우편함에 종이 한 장을 접어서 놓았는데 그것을 펼쳐보는 순간 붉은 글씨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미친 새끼야, 집안에서 담배 좀 작작 피워대라!’ 


나는 비흡연자고 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담배 냄새다. 

더구나 내가 흡연자라고 해도 이제 갓 돌 지난 아기가 있는 집에서 담배를 피워 젖힐 정도로 정신 나가진 않았다. 

이웃의 대응이 아쉽다 못해 분노를 일으켰다. 

무엇을 근거로 우리 집을 범인으로 지목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역시 이사 온 뒤로부터 베란다 창문을 열면 담배 냄새가 수시로 올라와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내가 현장을 잡으려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고 위험을 무릅쓰고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상반신을 반쯤 내밀면서 흡연자나 담배 연기 나오는 곳을 촬영하려 했으나 냄새는 나는데 도무지 연기 나는 데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그동안 가만있었던 건 실내흡연을 합리적 의심만으로 어느 집이라고 예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항의를 받고도 누군지 모르니 우리 집이 아니라고 어디에 항변할 수도 없었다. 

전에 살던 대규모 공동주택은 경비원도 있고 관리소 직원도 있어서 주민이 민원만 넣고 뒤에 숨거나 주민이 단합하여 단체로 항의할 수 있었으나 새로 이사한 곳은 그렇지 못했다. 

오직 주민 스스로 문제해결에 나서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안전한 방식이 편지함에 무기명으로 욕이나 싸질러 놓는 일인 것 같았다. 

그냥 욕을 주는 대로 받아먹을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을 것 같다. 


내 앞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이웃 주민에게 앞으로 얼마나 더 욕을 먹어야 할지 벌써 스트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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