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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Dec 03. 2021

그건 생각 못했군

- 스마트 소설 -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기 위해 허리를 숙이거나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기 위해 손을 머리 위로 올리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미리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고사성어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은 바로 그에게 있어서 철칙과도 같은 말이 됐다. 


예전에 겪었던 트라우마(trauma) 또는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불리 울 만한 안 좋은 기억의 흑역사는 이러한 철칙을 그 나름대로 각 상황에 맞게 만들어서 자기방어를 효과 있게 하려는 데에서 출발했다. 

어찌 보면 처절할 정도의 자기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건 그가 성추행범에 비유될 법한 못된 놈으로 내몰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 시간 만원 전철이었다. 

그는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서서 졸고 있는데 그 앞에 있던 한 여성이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졸고 있던 그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소리친다. 


“왜 자꾸 내 엉덩이를 찌르는데!” 


그가 뭔 소리인 줄 모르고 멍하니 있는데 주변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로 집중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더욱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더 큰 목소리로 


“왜 자꾸 뭐로 찌르는데!”


라며 여자가 자기 신체에 무언가로 일부러 접촉을 시도했다는 듯이 말했다. 

조용했던 만원 전철에서 거침없이 내지르는 그녀의 화난 목소리는 순간 그를 성추행범으로 어느덧 몰아가고 있었다. 


사람이 바보 되고 범죄자로 몰리는 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이고 그렇게 일어날 수 있다. 

순간적으로 그가 추측해 보니 잠시 졸고 있는 사이 아마도 그가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의 넓은 면이 아닌 가방 끝부분이 하필 그녀의 신체에 닿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가방을 들어 보이며 착각한 게 아니냐 대꾸했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과 함께 단지 자기를 건드렸다는 것에 여전히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억울함과 수치심이 교차하는 가운데 더는 그 여자와 말을 섞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자 그는 다음 정류장에서 무조건 내려야만 했다. 

그가 언론매체를 통해 접한 상식으로는 여성 대부분이 만원 대중교통 안에서 직접적인 성추행을 당했을 때 순간 너무 당황하여 몸이 굳고 떨려서 아무 소리도 안 나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날의 경험으로 봐선 그렇지 않은 여성도 분명히 있다는 거다. 

사람 많은 대중교통 안에서는 참지 말고 과감하게 어디서 미친 짓거리 하냐며 소리 지르는 게 그가 받아본 충격을 고려해 보면 효과적이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히 있다. 

범인에게 제대로 소리쳤다면 효과적이겠지만, 범인으로 오해했다면 바로 그처럼 엄청난 트라우마나 PTSD를 여자들이 안겨다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뒤로 모르는 여성 앞에선 무조건 조심하는 일이 몇 가지 생겼다. 

우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할 때 서류 가방은 필수가 됐다. 

서류 가방이 문제의 원인이 되긴 했지만, 그 당시 가방이 없었으면 영락없이 성추행범으로 몰릴 뻔했기 때문이다. 

만원 전철과 버스에서 무조건 가방은 그와 그 앞에 서 있는 여성과의 밀접 접촉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효과적인 방어수단이 된다. 

그리고 가방이 없으면 무조건 등을 돌리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린다. 

그와 함께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만지고 있던지 손잡이라도 잡는다. 


가장 골치 아픈 건 앞뒤로 여자가 있을 때이다. 

이때는 기를 쓰고 무조건 인파를 헤치고 자릴 뜨는 시도를 한다. 

그냥 모르는 여자가 무섭기 때문이다. 

또한, 직장 내에서는 여직원과 절대 농담을 안 한다. 

업무 외엔 애초에 먼저 말을 안 건다. 

그래서 여자 동료나 후배들이 무뚝뚝하고 말 없는 이런 그와 친해지기까지 다가가기 어려운 그를 엄청 무서워한다.


그 외 에스컬레이터 올라갈 때 손에 휴대전화 들고 있다가 짧은 치마 입은 여자가 앞에 있으면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가방이나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엘리베이터에선 무조건 여자보다 앞에 있거나 나란히 있어서 뒤에서 여자를 힐끗 훔쳐본다는 오해를 안 사게 만든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도 없는 밤길에 여자 만나는 게 제일 무섭고 고단하다. 

밤길에 여자를 만나면 거리를 계산한 뒤 그가 재빨리 앞서갈 거리가 돼 보이면 뒤에서 쫓아온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잰걸음으로 먼저 앞으로 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여자가 먼저 가도록 한다. 

정말 그가 생각해도 자신이 참 피곤하게 사는 인생 같다는 걸 느낀다. 


그런데 그처럼 행동하는 남자가 자신만이 아닌 게 조금은 반갑기도 하다. 

남자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여성 앞에서 범죄자로 오해받지 않게 조심하려는 남자가 의외로 많다. 

그렇지만 항상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듯 정신 나간 자로 인해 대다수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로 몰리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그 혼자만 잘해서 바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어차피 없어지지 않을 미꾸라지라면 최소한 그는 그런 자들과 구별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 


그러다 보니 여성에 대한 그의 조심스러운 행동은 좋게 말해서 남성의 배려이겠지만 어찌 보면 남성의 과도한 피해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겠다. 

그는 이것을 배려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이런 그에게 그의 아내가 밖에서 모르는 여자들에게만 배려하지 말고 집에 있는 여자들에게도 배려하라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의 아내가 던진 말은 자기 중심의 사고가 불러낸 편협된 사고에 돌팔매질한 것처럼 그렇게 가슴 한구석을 찌른 후 동심원을 그려내며 퍼져나갔다.


“그리도 배려하기 좋아하면 변기에 좀 앉아서 오줌 눠라! 제발 사방팔방 다 튀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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