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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Dec 30. 2021

한 그루의 사과나무

- 스마트 소설 -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말했던 자는 네덜란드의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백년전이나 앞선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했던 말이나 혹은 그 당시 명언으로 알려졌지만, 그에게 있어서 누가 먼저 한 말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그가 당장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생각뿐이다. 

의사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는 삼 개월이었다. 

길어봐야 반년을 넘기지 않을 거라 했다. 

하지만 앞으로 육 개월의 삶은 기적에 가깝고 삼 개월을 염두에 두고 삶을 정리하라는 사실상 죽음의 선고를 받은 상태다. 


그가 아직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회가 그를 노인으로 낙인찍고 국가가 연금과 대중교통 무료이용을 허락하는 시기를 몇 해 남겨두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혜택을 좀 받고 노후를 즐기나 싶었지만, 자신의 삶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도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보고 곧 죽을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 역시도 자신이 죽음을 선고받기 전까지 곧 죽을 사람이라면 몸져누워야 하는 거로 인식했지만 그는 병실 침대가 아닌 자신의 침실에 누워 매일 같이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던 터였다. 

누구는 죽음 직전까지 여러 날 고통을 겪고 그것을 줄이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최대치로 투여하며 힘겹게 투병 생활을 하는 판에 그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또한, 누군가의 절대적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몸 상태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을 따름이었다.

 

지금 그는 아까부터 종이 한 장을 앞에 두고 유언장을 작성해 보려 하였지만 일기 한 장 쓰기도 버거웠던 그에게 막상 글로서 무언가를 쓰려 하니 머릿속이 하얘지고 도무지 아무 말도 쓸 수 없었다. 

자신이 뭘 남기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오래전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누군가 글을 잘 쓴다는 건 그 사람의 사고체계가 잘 정립이 되었다는 걸 말한다. 반대로 누군가 글을 잘못 쓴다는 건 사고체계가 제대로 정립이 안 됐다는 것을 뜻하기도 해. 

그래서 너희들 가운데 글 쓰는 게 어렵다고 스스로 느낀다면 글을 잘 쓰는 방식, 즉 어떤 스킬을 습득하기 이전에 너희가 가진 생각들을 먼저 잘 정리를 해야 한다.’ 


선생님의 말씀은 결국 아무 생각이 없거나 생각이 있어도 산재해 있으면 아무리 글을 쓰려 해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가 그런 상태였다. 

여태까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온 것인지 그가 생각하기에도 스스로가 답답했다. 

자신이 가진 생각 하나 조리 있게 정리를 해내지 못한다는 상황이 더욱 그를 짜증 나게 했다. 


그런데 그순간 가장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자 가장 못 했던 게 하나 생각났다. 

결혼이었다. 

자신이 혼기를 왜 놓쳤을까를 생각해 내기에도 이젠 가물가물하기까지 하다. 

주변에선 결혼정보업체를 이용해 보라는 말도 해주었으나 왠지 돈으로 여자를 얻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제삼자나 모르는 누군가가 해주는 중매이거나 지인이 연결해 주는 소개팅 정도라 생각하면 될 일이지만 사업자등록을 낸 업체라면 의미가 달라진다. 

순전히 돈이 거래되어야 만남이 성사되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돈을 중개인에게 준다는 게 맘에 안 들었다. 

부동산 중개인들이 건물을 소개해줄 때 흔히 물건이라고 칭하듯 결혼 정보업체 역시 왠지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것 같아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더구나 음성적이긴 하지만 여자들에게 돈만 주면 언제 어디서든지 그가 원하는 대로 만남을 쉽게 가질 수 있었다. 

평생을 그런 식으로 외로움을 해소해왔다. 

그래서 돈으로 거래가 되는 결혼이 더욱 싫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이란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그간의 삶을 마음껏 즐겼다. 

무자식이다 보니 그야말로 상팔자였다. 

그래서 친구들이 자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걸 볼 때마다 그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여러 번 띄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한 이른 은퇴와 그로 인해 소원해진 대인관계는 홀로 보내야만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제 조금씩 주변을 정리하라는 의사의 말에 그는 정리할 주변이 없다고 말했다. 

구순과 팔순이 넘은 부모님이 아직도 생존해 계신다. 

살던 곳을 정리하고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려 생각하니 부모님 곁에서 생을 마무리하는 게 불효 같았다. 

제대로 효도 한 번 해보지 못한 것 같은데 그래서 더욱 부모님 곁에 있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요양병원에서 마지막 삶을 정리하기도 내키지 않았다. 


결국, 남은 건 지금 유서를 앞에 두고 있는 자신의 집에서 홀로 죽음을 기다리는 거였다. 

수시로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자식이 아니라 거꾸로 노부부가 수시로 자식의 안부를 물어왔다. 

그가 먼저 전화해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멀쩡한 척하지만 그런 연기도 서툴다 못해 어색하여 아예 먼저 연락을 안 드린 지 오래다. 

그래서 죽으면서까지 불효하는 것 같아 죄스럽기까지 했다. 

부모님은 자신이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이제 자신과 연락이 닿지 않는 그 날 비로소 자신의 부모는 그가 고독사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어떤 말을 종이에 써야 할지 그는 아직도 생각이 정리가 안 된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 심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는지 몰랐다는 듯 벙벙한 표정으로 한참을 흰 종이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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