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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Mar 13. 2022

돌아간 탕자

- 스마트 소설 -

“어? 오, 오빠!”


화장실에서 아이와 함께 나오던 그녀의 당황한 얼굴은 이제 막 음식점으로 들어오고 있던 한 초췌한 남자와 마주치자마자 놀람으로 굳어졌다. 

대번에 그녀는 그가 작은 오빠임을 알아보았다. 

집을 나간 지 십수 년 만에 느닷없이 나타난 그의 남루한 모습도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인지 그것 또한 당황스러웠다. 

그녀가 오빠를 대번에 알아보았지만 느닷없는 이 상황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오래간만이다 막내야. 너 중학교 때 보고 이게 얼마 만이냐?”


그가 그녀의 잘 다듬어진 올림머리를 거칠어 보이는 손으로 장난하듯 쓰다듬었다. 

어렸을 때 작은 오빠가 흔히 하던 장난이었다. 

외모에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정성스레 머리를 다듬고 나면 어느새 작은 오빠가 뒤에서 나타나 그녀의 머리를 다시 헝클어 버리는 장난을 치곤 하였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몇 살 터울 안 나는 작은 오빠와 참 많이 티격태격 싸우던 기억이 순간 떠올랐다. 

엄마를 일찍 여윈 그녀에게 엄마와 같았던 큰 언니와 작은 언니는 작은 오빠가 짓궂은 장난을 그녀에게 치기라도 하면 혼내주었고 그녀가 울 때마다 달래주곤 하였다. 


오늘 모임을 위해 한복까지 차려입고 아침 일찍부터 동네미장원에 가서 정성스럽게 한 머리가 흩어지는 게 싫었는지 그녀가 반사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한복 자락을 꼭 잡고 있던 조그만 여자아이를 그가 보고는 딸이냐고 물어왔다. 

그녀가 작은 외삼촌이라고 가르쳐주고 인사하라고 했지만, 그 아이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엄마 한복 자락만 더욱 꼭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본 건 그녀의 오빠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험상궂게 생긴 사내 세 명이 그녀의 작은 오빠 주변에 서 있었고 거들먹거리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것이 이상했다. 


“아, 아. 이분, 아니, 아니 얘네들……. 그냥 내 아는 동생들이야. 어서 들어가자. 같이 축하해 주고 싶다고, 뭐 하도 그래서.”


그가 말을 대충 얼버무리고 음식점 안으로 황급히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그녀가 그를 제지하였다. 


“오빠, 잠깐만! 이대로 아버지 만나면 지금 아버지 어떻게 되실지 몰라. 오빠가 그렇게 집을 나간 뒤론 아버지가 어떻게 보내셨는지 알기나 해? 아빠 지금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해서 그래. 그러니 잠깐만 기다려줘. 언니랑 우선 내가 얘기해볼게.”


그녀가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휴대전화를 꺼내어 큰 언니에게 전화했다. 

그사이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은 그를 에워싸더니 금방이라도 그를 칠 기세로 겁박하기 시작했다.


“하, 뭐 이런 씨방새가! 뭐라고라? 아는 동생? 이걸 확, 마!”


“죄, 죄송합니다. 말이 헛나와버려서요. 그리고 조금만 목소릴 좀 낮추어 주세요. 제가 다 약속했잖습니까! 안 도망가요. 그러니 제발…….”


그녀가 통화를 끝내기도 전에 음식점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또 한 명의 여자가 정신없이 달려 나왔는지 씩씩거리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야! 너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야!”


그가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장난기 있는 얼굴로 험상궂은 사내들을 번갈아 보면서 “괜찮아, 괜찮아. 얘도 내 동생이야. 성깔이 좀 있어. 넌 오랜만에 만난 오빠한테 아직도 야가 뭐니?” 라고 한 후 그녀를 밀치고 음식점으로 들어가려 했다.


“야, 이 자식아! 어딜 들어가냐고!” 


그녀가 더욱 소리를 지르며 그와 낯선 사내들을 제지하는 사이에 그의 누나와 형이 나타났다.


“창피하게 이게 무슨 소란이야!”


넷째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셋째인 그를 음식점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고 있자 둘째가 위엄있게 넷째를 꾸짖었다. 

그리고 자신이 셋째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말했다.


“오빠한테도 미리 말 안 해서 미안한데 우리 집안에서 셋째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어서 그래. 아버지 오늘 구순 잔치이고 이제 앞으로 사실 날 얼마 안 남은 거 병원에서 얘기 들어 다들 잘 알잖아. 잘 왔어. 어서 들어가자. 아버지 치매라 아무도 기억 못 해, 네가 그렇게 나가고 나간 뒤 더 심해지셨어. 그러니 널 몰라봐도 너는 그냥 계속 아는 척해주면 돼.”


“아빠 저렇게 된 거 다 너 때문이야! 엄마 없이 우리 오 남매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도 알잖아. 그런 새끼가 저 잘난 사업 한답시고 연대보증으로 아빠를 세운 것도 모자라 아빠 살살 구슬려서 남은 재산 미리 증여 받아먹고, 거기다 세금도 안 내고 어디서 다 탕진해와서는 또 우리 가족한테 뭘 더 빼 먹으려고! 우리 고생한 건 알기는 아냐! 무슨 낯짝으로 나타나! 왜 다시 나타나서 이 난리를 피우는데!”


넷째가 악다구니와 함께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저 새끼는 아빠가 어디서 주워오거나 낳아서 온 놈일 거라며 흐느껴 울었다. 

셋째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는 아무 말 없이 형제들을 지나쳐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르던 험상궂은 세 명의 사내들이 낮은 목소리로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렸다.


“아따, 참으로 마, 베리 뷰리풀한 가, 족같은 가족이네!”


“야, 그냥 신경 꺼! 우리랑 뭔 상관? 우린 그저 차려진 음식이나 잘 먹고 저 새끼 감시 잘하고 있다가 오늘 밤 짱깨놈들한테 넘겨버리면 그만인겨. 못 받은 돈 오늘 다 받는 거지.”


셋째가 나머지 가족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들어가 보니 구순을 맞이한 그의 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큰 며느리가 떠주는 음식을 힘겹게 씹고 있었다. 

그가 힘차게 아버지를 불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가족들을 잘 알아보지 못했던 그의 아버지가 셋째 아들을 대번에 알아본 것이다. 

더구나 말이 어눌했던 아버지의 입에서 “셋째야!”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큰 며느리가 자기와 손자 손녀들은 하나도 못 알아보면서 어떻게 셋째 아들만 알아보냐며 서운하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큰 언니가 엄마처럼 셋째 동생의 음식을 정성껏 챙겨주었다. 

넷째는 여전히 가족들이 모여있는 방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셋째가 아버지에게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귀에 대고 큰소리로 외친 후 사내들과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둘째가 셋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그의 전화는 끊겨있었다. 

오 남매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지 한참을 무표정으로 휠체어에 힘없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서로 헤어질 때 작별인사를 하며 눈을 마주쳐도 낯선 사람 대하듯 그렇게 한참을 무표정으로 바라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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