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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Apr 09. 2022

有錢無病 無錢有病

- 스마트 소설 -

옛날부터 병(病)은 널리 알리라고 한 건 그렇게 알린 만큼 치유 방법을 손쉽게 찾을 가능성을 많이 열어두려는 지혜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병원도 많고 의료기술발달로 굳이 내 병을 자랑스럽게 알릴 필요는 없게 됐다. 괜스레 알려서 부작용 높은 민간요법을 소개받거나 효과 검증도 안 된 밀수된 의약품을 팔려는 약장수들이나 꼬이게 되면 오히려 골치만 아플 일이다. 


그런 옛 직장동료 K도 자신의 병을 오랜 기간 숨겨온 사람에 속한다. 그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할 만큼 어디 안 아픈 구석이 없었다. 사실 그가 그렇게 이야기했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그와 함께 일하고 있었을 때는 그가 그만큼 아픈 줄도 모르고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아픔을 참아가며 일을 해야 했지만, 너무 아파서 일을 못 했던 그를 생각하면 더욱 측은하다. 하지만 정작 느끼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그의 병보다 그의 재산 때문이었다. 


내가 그를 병문안 갔던 날은 그가 퇴사한 이후 약 반년이 지나서였다. 만 50세 노총각의 방은 나의 상상 그 이상이었다. 역세권과 전혀 관계없는 어느 도심 변두리 주택가에서 간신히 찾은 그의 반지하 월세방은 처참할 정도였다. 오랫동안 집 안 청소를 안 해 퀴퀴함은 둘째치고라도 방 한가득 여기저기 생활 쓰레기가 가득하여 당최 어디 앉을 자리도 없어 보였다. 


“정신없지? 박형, 내가 이렇게 사오.” 


멋쩍어하는 그에게 나는 청소부터 하자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없던 병도 생길 것만 같았다. 내가 오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쓰레기를 치우려는데 그가 말렸다.


“그냥 둬. 뭐하러 예까지 와서 수고를 해. 그리고 어차피 그거 버릴 쓰레기봉투도 없어.”


“봉투는 사면 될 일이고, 아무리 그래도 어찌 이렇게 해놓고 사나?


내가 타박하며 면박을 주자 그는 봉투 살 돈이 없다고 했다. 순간 내 눈에 띈 건 헤아릴 수 없이 쌓여 있는 소주병이었고, “그럼 저건 뭐고!” 했다. 그는 말술이다. 내가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집에서조차 저렇게 혼술을 하리라 상상조차 못 하였다. 방금 오다 편의점에서 음료수만 산 걸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50리터 쓰레기봉투 여러 장 구매했을 터다. 

내가 잠시 기다리라며 다시 집을 나와 편의점으로 가려 하자 그가 등 뒤에 대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기왕이면 소주 몇 병 사 오라고 부탁했다. 

‘지랄!’ 

속으로 한마디 하고는 냅다 편의점으로 뛰었다. 

쓰레기봉투를 사면서 소주 몇 병과 안줏거리 몇 개를 집었다. 


쓰레기가 얼마나 많던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K는 연신 그만하면 됐다며 나를 말렸다. 그는 빨리 술을 마시고 싶어 했다. 그래도 우겨가며 최대한 쓰레기를 치우려 했지만 내가 사 온 50리터 봉투 몇 개에 모두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치우고 나니 처음 그의 방을 보았을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둘이 앉을 공간이 확보되고 나서야 나는 그가 직장을 그만둔 뒤 겪은 그의 고통 스런 날들에 대해 한참 푸념 어린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해서 그는 자진 퇴사한 게 아니라 권고사직으로 사실상 반강제퇴직을 당한 거였다. 


우리가 함께 일하던 건설 현장에서 어느 휴일 근무하던 날 추락사고가 있었다. 10층 약 40여 미터 높이에서 작업 중이었던 인부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떨어진 그 자리에 바로 K가 작업 중이었다. 떨어진 그는 K와 부딪혀 떨어졌고 K가 완충 역할을 해주었다. 그 때문인지 추락하자마자 사망하지 아니하고 숨을 쉴 수 있었다. 추락한 그는 노조에 적극 가담 한 자였다. 구급차가 오기까지도 그는 숨이 붙어있었다. 부딪힌 충격으로 말미암아 나동그라진 K 역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 역시 구급차로 응급실로 이송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떨어진 자는 응급실 이송 도중 심장이 멎었고 K는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엇갈린 운명 속에 K의 삶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재활치료에도 불구하고 당시 부딪힌 충격이 얼마나 심했던지 지금도 허리통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K가 더 이상의 치료를 진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돈 때문이라 했다. 

당시 추락사는 현장 안전사고로 결론 나지 않고 자살로 결론이 나버렸다. 그것은 K가 경찰에 진술한 것이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추락사한 그가 아직 숨이 붙어있을 당시 눈을 감지 못한 채 ‘개새끼들’이라고 말했던걸 지근거리에서 K가 들었다고 진술을 한 거였다. 노조에선 현장 안전사고 책임을 사측에 물으려 했으나 K의 진술로 평소 노조 활동이 많았고 사측에 불만이 많았던 노동자가 투신자살하여 사측을 협박한 거로 몰고 갔다. 하지만 노조 측에선 그 욕이 사측을 향한 거로 특정할 수 없다고 항변했으나 정황상 그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난 그저 들은 그대로를 전했을 뿐인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누구한텐 좋은 놈이 되고 누구한텐 나쁜 놈이 돼 있더라고. 회사로부터 퇴직금 위로금 조금 챙겨 받고 나왔지만 일을 할 수 없었어. 재활이 후 병이 다시 도졌는지 통증이 너무 심해 몸 쓰는 일은 못 할 것 같더라고. 그때부터 매일 술이지. 내 인생 나도 몰라. 어찌 될는지. 실비보험 없다 보니 치료도 전부 내 돈으로 해야 해. 이젠 여기저기 이유 없이 마구 아파. 통증의학과 가서 체외충격파에 레이저에 도수치료까지 세트로 묶어서 한 번만 받아도 십만 원이 넘어버려. 그래. 한두 번 해서 나으면 그 돈 쓰겠지. 하지만 열 번? 스무 번? 결과 예측은 의사도 몰라. 난 사람 떨어지는 걸 직접 내 눈으로 봤어. 시퍼렇게 뜬 눈으로 고통 속에서 내뱉은 마지막 말이 쌍욕이야. 노사 양측 다 틀렸어. 너무 심하게 아프면 욕 나온다고 하잖아. 난 그 사람도 그랬을 거라 봐. 근데 그 유족들에겐 난 죄인이야. 외상후 스트레슨가 뭔가, 그래 공황장애라고도 하더라고. 누가 한의사를 추천해. 그가 지어주는 한약이 기가 막힌다는 거야. 그래서 가봤지. 근데 최소 석 달 먹어야 한 대. 실장 여자가 살살 꼬드기더라고, 석 달 치를 한 번에 계산하면 조금 깎아주겠다고. 한 달 치가 얼만지 알아? 이백만 원이야! 석 달 먹고 백 프로 나으면 나 정말로 그 돈 쓰겠어. 근데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모호한 말 만해. 썩을 것들! 석 달 이상 먹어야 효과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해서 그냥 침만 몇 대 맞고 나왔어. 요새는 치아도 안 좋아. 당장 임플란트 해야 하는데 치과마다 천차만별이야. 잘한다고 입소문 난 연예인 들락거리는 덴 근 이백만 원이고, 어디건 백만 원 이하는 없어. 희한한 건 말이야, 병원 내 실장이란 자가 존재하는 곳엔 치료비도 꽤 비싸. 어디 아파도 하소연 할 데도 없고, 이젠 그만 다 포기하려고. 희망이 안 보이네. 이놈의 몸만 편해지면 뭐든 할 수 있겠건만….“


난 오래전부터 만성 축농증이 있었다. 

군대 입대하기 전 어머니가 그놈의 킁킁거리는 것 좀 고치고 군대 가라 하면서 손에 거금 십만 원을 쥐여 주셨다. 그걸 가지고 당시 어느 유명하다는 한방병원을 찾아갔다. 이제 막 한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첫 근무를 하는듯해 보이는 젊은 여자 한의사가 대뜸 얼마 가지고 왔냐 물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질문에 난 순간 주눅이 들어 자그마하게 ‘십만 원이요’라고 모깃소리로 말하자마자 한의사는 그럼 십만 원어치만 한약 지어주겠다고 했다. 사람 병이 돈 가진 만큼만 치료되는 현실이 그냥 우스웠다. 

늦은 시간 그의 방을 나서는데 그가 등 뒤에서 나를 부르며 한마디 했다.


”박형! 갈 때 가더라도 소주 한 병만 더 사주고 가!“


내가 한 소리 하려 하자 그가 농담이었다면서 해맑게 웃자 군데군데 이 빠진 모습이 보였다. 흉하다기보단 귀여웠다. 

그 이후 어느 날 경찰에게 연락을 받았다. 

소식을 전해 듣고 잰걸음에 다시 그를 찾았으나 그는 거기 없었다. 


수개월이 지났건만 내가 열심히 쓰레기를 담아놓았던 주황색 50리터 쓰레기봉투만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홀로 생을 마감한 그의 자취를 말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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