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say -
어느 날 저녁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난데없이 그의 이웃이 찾아와 그에게 급하게 돈을 빌려달라 하였다. 한참을 현관문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나는 그의 이웃이 다급하긴 다급한 모양이라 생각했다. 이웃이 빌리려던 돈이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선뜻 못 빌려줄 금액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의 지인은 그 이웃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하여 돌려보냈다.
이웃이 돌아가고 난 뒤 나는 그에게 거절의 이유를 물었고 그는 그 이웃과 별로 안 친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도 그 이웃에게 이미 한차례 돈을 빌려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또 찾아와서 돈을 빌려달라니 거절한 거였고, 신용문제로 금융권 대출을 못 하는 그의 청을 쉽게 자주 들어주면 버릇된다는 거였다. 남의 버릇까지 신경을 써주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때 그의 대처는 매우 현명했다. 나에게 껄끄러운 청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유는 딱 두 가지다.
이 지구상에 나 말고 아는 이가 없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 가운데 그나마 내가 제일 만만해 보여서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겪은 사례로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자가 접근할 경우다.
그는 오가다 인사만 하는 사이로 나와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데 먼저 친한 척을 하는 자였다. 일반적으로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각종 모임을 좋아하거나 쾌활하면서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대인관계에서 항상 주도적 역할을 알게 모르게 하려는 성향이 많다. 그 이웃 역시 그러했다. 술을 사서 들어가는 그 이웃을 집 근처에서 우연히 만나 당일 즉석 초대를 받았다. 함께 자신의 집에 가서 술 먹으며 놀자고 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인사치레로 여길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거절하자 그는 막무가내로 나의 팔을 강하게 붙잡고 억지로 거의 연행하다시피 등을 떠밀며 한잔하고 가라며 부추겼다. 내가 다시 정중하게 거절하자 그가 한마디 한다.
“그럼, 다음 기회에 나를 초대해 주십시오!”
단 한 번도 개인적으로 만나 이야기 나눈 적도 없는 그가 덮어놓고 내 집에 초대해달라고 훅하고 요청이 들어왔다. 보통 헤어질 때 무의미하게 하는 인사말로 ‘다음 기회에 밥 한 끼 먹자’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라 "알겠습니다" 하면 될 것을 나는 단호하게 “싫은데요!”라고 말했다.
그의 표정이 순간 굳어진 건 두말할 나위 없겠다. 내가 그렇게 단호할 정도로 무례하게 답변을 준 건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초대하려거나 자신을 초대해 달라고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게 문제였고 동시에 그는 아주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술이고 더 싫어하는 건 술에 취한 사람이다. 그는 내가 싫어할 조건은 다 갖고 있었다. 좋게 좋게 얘기해서 안 될 사람이란 걸 간파했기 때문에 나의 대응은 적절했다고 본다.
내가 그 당시 그 초대에 건성으로 긍정적 답변을 주었으면 그는 계속해서 내 주변을 기웃거리며 나를 귀찮게 했을 것이다. 그런 나의 대응에 보통사람 같으면 자존심 상해서 나를 상대도 안 했을 텐데 그는 역시 달랐다. 그날 이후 집 근처에서 우연히 또 만났고 그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는 쓸데없는 주변 얘기 몇 마디하고 헤어졌다.
“지난번에 저 초대해 주신다는 건 잊지 않으셨죠?”라고 그가 말 못 했던 건 지난번 나의 단호한 거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멀리 이사 갔다. 애초부터 우리는 평생 같이 볼 사이는 아니었던 거다.
이처럼 우리는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을 멀리하려면 단순하지만 영악한 그들을 배려해선 안 되고 나의 싫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야만 한다. 그야말로 현명하게 이기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초기에 이 사람이 나에게(내 평생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점을 우선 따져봐야 한다. 피를 나눈 가족, 친족이라도 도움 안 되는 경우 많은데 주변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나에게 쓸모있는 사람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
그다음은 요구가 습관성인지 잘 관찰해야 한다.
한마디로 유사한 전력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점이다. 예전에 비슷한 일로 같은 요구를 나에게 한 적 있는지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하는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뭔가를 자꾸만 남에게 빌리거나 요구하는 습관이 있고 또 자기가 좋으면 당연히 남도 좋은 줄 아는 그런 자기중심에 빠진 사람이 아닌지 잘 봐두어야 한다.
그리고 끝으로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인지 살펴볼 일이다.
즉 나를 만만 한 자(호구)로 알거나 상대하기 쉬운 사람으로 여기는 자인지 이 점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성 관계라면 정말 주의해야 한다. 남자던 여자던 ‘저건 내가 쉽게 정복해버릴 수 있겠다’라고 하는 순간 십중팔구 그렇게 오만한 자에 사로잡혀 반노예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상대 이성을 최대한 자주 제3 자인 여러 주변인에게 노출 시켜 평가를 맡겨보고 이성의 대인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항상 둘만 만나려 하는 이성은 무조건 경계하고 볼 일이다.
우리에게 이렇게 거절이 필요한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다. 구걸이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한다면 요구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한다.
부려 먹기 딱 좋다고 여기게 되는 순간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어느 날부터 호구 잡혀서 가스라이팅 당하여 범죄의 희생양 되지 말란 법 없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앞뒤 안 가리고 마구 거절만 해버리면 사람이 참 인정머리 없어 보인다. 이것도 인간관계에서 마이너스적 요소다. 어차피 인간관계를 떠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라면 그래서 ‘현명하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성이 원래 절대 남에게 뭘 부탁하거나 신세를 지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들 대부분 마음이 여리다. 착한 거와는 별개다. 그냥 거절 잘 못 하는 성격이다. 이 자들이 쉽게 범죄 표적 대상이 된다. 그와 더불어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들도 범죄 표적 대상이다. 복잡한 세상에 이것저것 신경 쓰기 싫고 뭐 구차하게 거절기술이니 뭐니 해가며 따지기 귀찮다면 쉬운 방법 하나 있다. 그냥 성경 말씀대로 다 주는 거다.(마태복음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빌려준다고 하지 말고 그냥 준다고 여기면 된다. 그에게 내 것이 넘어가는 순간 받을 생각은 절대 꿈도 꾸지 않는 거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세 번이나 빚보증을, 그것도 동일 인물에게 서준 적도 있으시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34614&code=23111211&cp=nv)
간이고 쓸개고 사랑으로 전부 뽑아줄 것 같던 예수도 필요와 상황에 따라 거절하는 말과 행동을 적절히 보여주었다. (마태복음 4:3-10, 20:20-23, 마가복음 1:35-38, 7:26-27, 누가복음 12:13-15, 16:19-31 참조)
여하간 신앙심으로 그런 자들을 상대할 용기가 없고 자신이 없으면 그냥 멀리하고 경계하는 것이 최선이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그나마 줄이고자 한다면 편한 감정이 들지 않는 요구나 사람에겐 확고한 거절로 인간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나를 위해 상황에 맞추어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