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스러운 회식자리

- 경장편 - #10 (제3장 그림자)

by Johann

<#9에 이어서...>


3. 그림자


아침부터 사무실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Y 실장은 출근하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이제 막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업무 할 준비를 하고 있던 K를 자신의 자리로 신경질적으로 부르고 있었다.


“야! 이리 좀 와봐!”


Y 실장의 입이 오늘은 아침부터 유난히 거칠다.

어떤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보통 그가 거칠게 반말 조로 직원을 대하는 일은 다반사이긴 하였다.

그러나 그날 아침은 유독 신경질적이었다.

Y 실장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직원은 내가 유일하다. 나는 그의 전임 실장이기도 하였거니와 동갑이자 경력사원 입사 동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실장직에 오른 이후 각종 업무지시 면에서 종종 하대하는 듯한 언행을 나에게 보인 것이 다반사였는데, 말만 거칠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조직 내 상명하복 수직관계는 철저히 유지하려 했던 그였다.


조직의 장이 솔선수범해가며 스스로 조직문화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그 조직의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그가 때때로 내리는 명령조의 업무지시가 달갑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의 언행을 지적받았던 적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냥 묵과하고 넘겼다.

대부분의 부하 직원들 역시 Y 실장의 언행에 이미 오래전부터 불만 들을 갖고 있었다.


아침 출근하자마자 Y 실장의 막말을 들은 K는 우리 부서 내 유일한 박사학위 소지자였다.

우리는 그를 부를 때 항상 K 박사님으로 별칭 부르듯 부르곤 하였다. 대부분 기업체에 근무하였다가 대학으로 옮겨 학자의 길을 걷는 것과는 정반대로 잠깐 학문의 길을 걷다가 실무의 길로 옮겨온 그였다.

내가 실장으로 있었을 때 그가 우리 부서의 실로 배치되어왔다.

그의 꼼꼼한 일 처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 그리고 집요한 탐구 정신은 기업체의 조직문화보다는 내가 볼 때 학문연구 분야에 더욱더 특화돼 있어 보였다.


항상 말이 없는 늘 조용한 성격과 술자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성격 탓에 그는 부서 내에서도 직원들과의 교류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단체 회식 자리를 의도적으로 불참하는 그의 행동에 대해 그 당시 실장이었던 나는 그에게 종종 주의하라고 경고하였었다.

개인적 감정으로 일부러 그를 나무랐던 게 아니었다.

조직 생활하는 가운데 상사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독자적 행동에 익숙한 그의 성격을 스스로 변화시키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나름 그에게도 그동안 말 못 할 어려움이 있었다.


“K 박사, 어제 전체 회식 자리에서 또 안 보이던데? J 부서장이 묻는데 내가 대답을 못 했어.”


“그게, 저……, J 부서장님 계시는 회식 자리가 좀 많이 부담되어서요…….”


“그게 뭔 소리지?”


“너무 과음하게 돼서요…….”


그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잘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그가 술을 전혀 못 한다는 것을 내가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일부러 그에게 술을 강제로 권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엉뚱한데에 있었다.


그는 Y 실장의 술버릇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으며, 더구나 J 부서장이 참석하게 되는 회식 날에는 모든 직원이 과음을 넘어 폭음하게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그 폭음 뒤에 항상 폭언이 이어지고 자칫하면 폭행으로까지 번질 위험이 매번 있었기에 그런 자리를 미리 피하는 것이라 했다.

그제야 나는 그가 말한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Y 실장의 술버릇은 참으로 고약했다.

평상시 거친 입담이 알코올이 들어가면 더 심하게 발작하듯 튀어나왔다.

심지어 주변의 다른 술객들과 주먹다짐까지 하려 할 뻔했던 것을 간신히 막아낸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술버릇도 죽이 잘 맞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J 부서장이었다.

J 부서장 역시 매우 고약한 술버릇이 있었는데 술만 취했다 하면 옷을 다 벗는 일이었다.


내가 실장이었을 때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밀폐된 공간 안 수십 명의 직원이 회식 모임에서 잔뜩 취해 있었다.

우리 실의 유일한 여직원이 먼저 귀가한다는 이유로 자리를 뜨자마자 J 부서장이 노래 반주기의 마이크를 집어 들더니 이제부터 남자들끼리 화끈하게 놀아보자며 옷을 다 벗고 춤을 추자고 하였다.

이미 고주망태가 된 J 부서장이 먼저 걸치고 있던 옷을 훌렁 벗어 던진 채 팬티 바람이 되자 직원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도 웃통과 바지를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서로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나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다.


“야! 다들 벗어! 안 벗는 것들은 이번 인사평가 고가 점수 D 처맞을 것 각오해!”


인사권자의 불호령 같은 명령이 에코(echo)가 들어간 마이크에 하울링(howling) 되어 온 방 안에 메아리치며 득달같이 하달됐다.


“이게 바로 우리 회사 전통이야! 다 벗고 제대로 한번 놀아보자고! 그 옛날‘빤쓰 벗고 소리 질러!’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말이라고, 뭘 알긴 알기나 해?”


J 부서장의 말도 안 되는 일장 훈시가 끝나자마자 귀청을 찢을 듯한 시끄러운 음악이 스피커에서 쿵쾅거리며 흘러나왔고, 모두가 다 미친 듯이 팬티 한 장 달랑 걸친 채로 소리 질러가며 노래를 부르면서 몸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어때? 자유롭지! 해방감 느끼지! 그간의 업무 스트레스가 몽땅 다 날아가는 것 같지!”


J 부서장의 외침이 다시 한번 마이크를 타고 방안을 지배했고 모든 직원이 일제히 “예, 맞습니다!”하고 합창하듯 대답하였다.

그러던 중 뜻밖의 일이 터졌다.


술이 잔뜩 취해 있었고 과도한 분위기에 흥이 한껏 달아오른 Y가 토닉워터 희석 없이 알코올 도수 85% 양주를 담은 잔을 호기롭게 입에 가져가더니 목구멍에 털어내듯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내 뱉어내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모든 직원이 웃음을 터트리며 아예 병째 나발을 불라고 야단들이었다.

그렇게 관심을 받은 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화끈한 불 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정말 양주병을 집어 들더니 한 모금을 비틀거리며 입에 가져갔을 때 나는 그의 오른손에 그가 움켜쥐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언제 갖고 있었는지 그것은 라이터였다.

나는 앞뒤 젤 생각 없이 재빠르게 몸을 날려 그를 덮쳐버렸고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라이터를 강제로 뺏어 버렸다. 그가 놀랐는지 입에 머금고 있던 양주 한 모금을‘컥’하고 다시 뱉어냈고 곧이어 방안에 딸려 있던 작은 화장실로 달려가더니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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