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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Feb 14. 2016

우리들의 각개전투

오늘도 어디선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을 나의 전우들에게

전우야, 전우야 사랑하는 전우야. 얼굴을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



  군대에서 훈련할 때 군가를 부르곤 합니다. 전쟁을 치러 본 적도 없으면서 이 전우란 말에 코끝이 시큰해지고 옆에서 같이 훈련하는 동료와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눕니다. 훈련을 통해서 같이 고생한 것에 대한 유대감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육아 전쟁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제 또래의 초보 부모들이 각자의 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한 표현이 아닙니다. 저마다의 사정이 다르고 전술도 다르지만, 꽤나 애쓰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얼굴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좋은 아빠.


  우리 아버지 세대는 열심히 돈 벌어서 자녀들이 원하는 대로  뒷바라지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 생각하셨을 터입니다. 우리 세대는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 생각을 합니다.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탓도  한몫을 하겠지요. 가끔 만나 술 한 잔씩 할 수 있던 친구들도 결혼하고 나면, 아니 아이가 생기고 나면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얼굴 보기 어렵습니다. 다들 가족에게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하려고 애쓰는 것이겠지요. 


  토요일이나 일요일, 놀이터에 나가면 아빠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하는 아가의 아빠는 아이의 동작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즐겁기만 합니다. 혹시라도 다치지 않을까 조심조심하며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조금 더 큰 딸내미 아빠는, 자리가 이미 꽉 차 있는 그네를 타고 싶어서 우는 아이를 달래 주어야 합니다.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혼자서 미끄럼틀에 오르내릴 정도의 아이가 있다면 이제 한 발 물러 서서 흐뭇하게 지켜봅니다. 언제 저렇게 자랐지. 저희 또래끼리 시끄럽게 떠들며 놀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면 이제 아빠도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야구를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키즈카페와 같은 유료 놀이시설을 가면 아빠들의 전투력은 좀 더 느슨해집니다. 다양한 놀거리들이 설치되어 있고 비교적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가만히 있어도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긴장을 마냥 늦출 수는 없습니다. 어릴 적 생각하면 노는 데에도 비싼 돈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좀 아깝기는 합니다. 그것보다 더 속상한 것은 돈까지 내었는데 내 시간이 온전히 자유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입니다. 

  놀이터보다 조금 여유가 생긴 전우들의 응전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언제나 아빠들은 아이들이 노는 자리 세 발 짝 뒤에서 물러나 있습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아이가 자유롭게 놀게 해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정말이라니까요. 아내의 추궁에도 뻔뻔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얼추 아이가 혼자서도 잘 논다 싶으면 재빨리 빈자리를 찾아 진지를 구축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놀다가 언제든 아빠를 찾아 달려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빠를 잊고 잘 놀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이 놀이시설이 안전해서 좋군요. 이제 인터넷 서핑이나 야구를 좀 봐야겠습니다.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서 노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제한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이제 눈 좀 붙여보겠습니다. 그다지 긴 시간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금세 달려와 아빠 배로  뛰어오를 테니까요.


  엊그제도 테마시설을 다녀왔습니다. 이제 저도 조금 요령이 생겨서 딸아이들과 장난감도 만들고 장난도 치면서 밀고 당기기를 합니다. 더 어린 친구들의 아빠들도 많았습니다.   한두 발짝 물러서서 웃으며 그냥 바라보거나 아이 노는 모습을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아빠들을 보니, 예전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나의 전우들. 여러분들도 나중에  저만큼 할 수 있을 것이에요. 저도 아직 헤매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제 저도 선택을 해야 합니다. 불꽃같은 이 시간을 태우고 오늘 저녁에 아이들이 일찍 잠들기를 기대하느냐 아니면 적당히 제 체력을 안배하면서 저녁 전투에 대비해야 할 것인가. 역시 전쟁은 전략 전술도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체력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늘 관건이긴 합니다.


 

  오늘도 어디선가 각개전투를 해내는 아빠들을 응원합니다. 오늘로 끝나지 않을 그 전투에서 꼭 살아남으시길….





생각해보면 결국 나의 전우조는 우리 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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