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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수도있지 Dec 09. 2020

텅 빈 김밥 바구니에서 느낀 허기

나를 몰라서 무작정 열심히 살았다. 

회사 밀집 지역은 점심시간에 붐비지 않는 곳이 없다. 

식당도 카페도 붐비지만 놀라운 것은 어학원도 붐빈다는 것이다.


아침에는 출근하기도 힘든데 수업까지 듣자니 너무 부담스럽고

저녁시간은 야근, 가정, 운동, 사교 등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점심에 모인다. 


점심 수업은 학원에서 김밥을 제공해주는데 조금이라도 늦으면 이미 동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의 회사는 어학원으로부터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했는데 수업 시작 전에 도착해도 바구니 바닥이 보이기 일쑤였다. 


다들 열심히 사시는구먼.  

김밥을 쟁취한 이들 사이에서 녹차를 홀짝대며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텅 빈 바구니에서 배움에 대한 허기가 느껴졌다.


문득 다들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지 궁금했다. 


정말 궁금했다.

왜냐하면 필자야말로 이유를 모른 채 허기를 채우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학원과 강연에 수많은 돈과 시간을 썼다. 지출의 대부분이 자기 계발 비용이었다. 

당시 재직하던 회사는 경쟁이나 성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잘하면 좋고 잘해야 하는 곳이 회사이긴 하나 성과가 승진이나 연봉 상승으로 이어지는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꽤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점심 저녁으로, 때론 아침까지 각종 강연과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캐릭터는 흔치 않았다. 혹시 무의식 속에 자격지심이 있는 걸까? 외로움을 잘못된 방식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자존감이 너무 낮으면 이런 것에 집착하기도 한다던데? 걱정한 적도 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해야만 했다. 지적 허기가 컸다.


그렇다고 한 가지를 깊게 파 전문가가 되었느냐고, 무엇이 남았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머쓱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세상에 흥미로운 것이 너무도 많아 이것도 배워보고 저것도 배워보고 직무교육도 다 듣고 싶네…. 

그 결과 방향성 없는 민간 자격증 몇 가지와 어중간한 어학 성적만 남았다. 


몇 년 동안이나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가

오프라인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멈췄다.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고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다 하면서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고 
의도적으로 시간에 쫓기며 스스로를 들여다볼 시간을 회피하고 있었다.


나를 찾는 과정이라는 명분으로 무작정 열심히 살아왔지만 이제는 방향을 되짚어 볼 시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금 한 일이 인생에 어떤 점을 찍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래에 그것들을 어떻게 이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니 그 점들은 이미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다 다른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로 연결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어떤 경험이라도 쓸모가 있을 것이다.


다만 열심히 사는 이유, 즉 삶의 방향이 있어야 노력도 지속되는 법이다.

인생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즐거워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열심히 사는 이유를 답할 차례다. 

새로운 점이 찍히면 선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지금 내린 답도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점들을 이어 보고 싶다. 

인생이 마지막 숨 제출해야만 채점할 수 있는 시험지는 아니잖나. 

끊임없이 수정하고 나아지며 성장해 나가기 위해 자주 잇자. 


마침 외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와 자극이 차단되어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정리하기 좋은 시간이다. 

필자 역시 지금까지 한 일들을 정리하며 연결고리를 찾는 중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 이유를 찾으셨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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