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동생 안나가 생겼어요.
'19년 3월. 저녁 10시 서울아산병원 가족분만실.
침대와 몇 개의 의료기기가 전부였던 분만실에 수많은 의료장비가 채워지며 수술실로 바뀌었다.
조명이 바뀌고 의사 선생님들은 무대 위의 배우들처럼 자신감이 넘치고, 우리만 믿으라는 확신을 준다.
지금껏 이 순간만큼 긴장되고 설레었던 피날레가 있었던가?
결혼 5년 차 오랜 인내와 기다림 끝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속절없이 흘러버릴 것만 같은 겨울에도 아내와 나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쌓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우리 둘만의 추억을 쌓기 바라는 하늘의 뜻이었나 보다. 전염병이 전 세계를 고립시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던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ABC)' 트레킹을 마지막으로 다시 시작된 임신 준비.
이후 엽산을 매일 먹고 아내는 녹용이 들어간 한약을 지어먹었다. 기초체온, LH수치, hCH 등 생소한 용어들과 배테기 수치에 따라 숙제 후 임신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하루하루가 피폐해진다.
그러던 7월 하루라도 빨리 확인 가능한 얼리임테기로 흐릿한 두 줄였는지 아닌지 눈을 비비며 보고 또 보고
"어?!! 두줄이다 두줄!!!" 그 어느 때보다 설레고 가슴 벅찬 순간이다.
꽃다발과 함께 임신을 축하하며 아내가 먹고 싶다는 성게어란파스타를 먹으러 안국동에 다녀왔다.
이제부터 아내의 말에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인가?
임테기로 확인했으니 임신이 맞는지 산부인과로 향한다.
산부인과 혈액검사 결과 "hCG 990mIU/mil, 아기집은 안 보이네요."
"네? 선생님?" (임신이 아니라는 말인가?)
"임신 맞아요", "네? 네! 감사합니다.!"
아내에게 관심 없고 무심한 남편이 될뻔했던 나는 든든한 남편이 되기 위해 구입해 두었던 책을 보며 임신과 출산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마다 느끼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벌써부터 아빠 되기란 쉽지 않겠구나를 생각한다.
아내의 신경은 아이에게 집중되었고 그래서일까 여느 산모들처럼 작은 변화에도 예민해지나 보다.
핏기가 비쳐서 1주일 먼저 병원에 갔다.
"아기집은 잘 보이고요. 임신확인서 발급해 드릴 거예요. 보건소 가셔서 검사받으시고요."
입덧 초기일까? 아내는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식은땀 나고 기력이 하나도 없다. 살도 빠지고 있다.
새벽 4시 속 쓰려서 참다 참다 밥 먹고 다시 누워도 잠도 안 온다. 입속 염증까지 생겼다.
이제 임신 40주 가운데 5~6주 정도 지났다.
저녁 12시가 넘은 시간. 출장 중인 나에게 아내가 톡을 보내온다.
"태명 생각해봤는데 안나 어때?"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 이기도 했고~ 나나(푸들) 동생 안나 이쁜 거 같아~!"
"그리고 안나푸르나의 안나, 넓은 세상을 보고 세상 사람들을 품어주고 살으라는 ㅋㅋㅋ"
어둠이 있기에 빛을 보고 희망을 품는가 보다.
초음파를 찍어보았는데 안나가 보인다.
"안나야~! 잘 지내고 있었구나~?! 만나서 반가워~♡"
그 누구보다 따뜻한 심장을 가진 안나의 심장은 6mm. 저 작은 심장으로 아빠의 심장을 울리는구나.
아직은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심장소리. 다음에 만났을 때 힘찬 심장소리 들려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