Моя жизнь в искусстве.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며 연기에 대한 갈증은 더 깊어져 갔다. 연기를 하며 체계적이고 계산된 커리큘럼의 연기를 공부하고 싶었다. 시험 준비 위주의 연기가 아닌 자신만의 연기 철학과 확실한 지식에 기반한 이론도 알고 싶었다. 오직 입학시험에 맞춰진 여러 입시생들의 이야기와 연기 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회의감은 깊어져 갔다.
진짜 연기를 배우겠다는 다짐 하나로 러시아 유학을 결정했다. 무슨 용기로 러시아어 조차 몰랐던 내가 그런 결정을 했을까? 러시아 유학을 결정하기까지 나에게 가장 큰 2가지 요인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난 예고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만났던 연기 지도 선생님이 있었는데 러시아 개방 초창기 모스크바 기치스(ГИТИС)로 유학을 다녀오신 분이었다. 지금껏 여러 선생님께 연기를 배워봤지만 유독 이번 선생님만큼은 다르게 느껴졌다. 연극 이론에 기반한 특별한 커리큘럼과 진정성 있는 철학 바탕의 선생님 강의가 좋았다.
선생님의 연기는 가식적이지 않았고 담백했다. 과장되지 않은 리얼리티함이 항상 묻어 있었다. 직접 선생님이 연출한 작품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입시 연기까지 선생님께 특별 레슨을 받으며 오랜 기간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레슨 때마다 선생님은 "너는 연기보다 연출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셨다. 한마디로 나는 연기자가 되기보다 연출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생각하던 연기자의 꿈이 한순간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자 나에게 쓰게 느껴졌던 말이 '내가 모르던 확실한 나의 재능이 아닐까?'라는 달콤한 결심으로 바뀌었다. 선생님이 이야기하던 '연출가'라는 포인트가 가슴에 자리 잡혔다.
연극영화과 입학시험을 볼 때 매번 받았던 질문이 있다. "왜 연기를 배우고 싶어요?"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나는 그때마다 "저는 연출가가 되고 싶습니다. 연출을 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배우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나의 대답에 몇몇의 교수들은 나를 비웃기도 했다.
입시 준비를 하며 선생님은 러시아 유학을 제안했었지만 매번 흘려들었다. 하지만 입시가 끝나고 난 뒤 선생님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유학 제안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가 아닌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결정한 데는 선생님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모스크바에는 한인들이 많고 한국인으로 구성된 연극인 반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공부를 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지 러시아 친구들과 온전히 공부를 같이 하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또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작품 안톤 체홉의 <갈매기>가 처음 상연된 곳도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사실이 영향이 컸다.
2000년대 초반 국내 대학교 중심으로 매년 여름 열리는 <젊은 연극제>라는 큰 행사가 있다. 대학교 입학을 꿈꾸던 나에게 여러 대학교의 연극을 맛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여름만 되면 친구들과 모여 대학로와 여러 대학교의 극장을 방문하며 연극을 보러 다녔다.
당시 유독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의 4대 희곡이 연극으로 유행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 <갈매기>라는 내 인생 작품을 만났다. 배우의 꿈을 가진 여주인공 니나의 이야기는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결국 꿈에게도, 사랑에게도 버림받지만 그녀는 파괴되지 않았다. 꼭 내 이야기 같았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인생철학에 대한 색이 짙게 느껴졌다. 당시 나는 작품에 대하여 깊게 느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갈매기>라는 작품에 빠지게 된 이후로 다양한 국내 연출가들의 <갈매기>를 보며 친구들과 평론했다. 당시 나는 매우 부정적인 의견만 펼쳤다.
'과연 안톤 체홉이 생각하는 무대가 이런 걸까?'
'니나가 이야기하는 흑빵의 의미를 저 배우는 알고 이야기하는 걸까?'
'뜨레플레프가 뭔가 이상하네,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해?'
논리에도 맞지 않는 부정적인 평론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며 혼자 다짐했다. '어떤 연출가의 작품보다 최고의 <갈매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 누구보다 <갈매기> 작품 해석에 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그렇게 짧은 인생을 보내던 고등학교 시절 내 인생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러시아 작품에 빠지게 됐다. 더 신기했던 건 연극계 아버지라 불리던 러시아 스타니슬랍스키의 성공 작품이 <갈매기>라는 것이었다. 연극이론의 바이블로 불리던 스타니슬랍스키의 저서를 읽던 중 러시아 유학에 더욱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됐다.
나도 스타니슬랍스키처럼 자신만의 소신과 연기 이론, 철학을 가지고 싶었다. 당시 나에게 진짜 연극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러시아 유학은 확실한 선택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