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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바스 Jul 09. 2021

러시아어 할 줄 아세요?

Вы говорите по-русски?

2008년 9월 4일 점심 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곧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게 된다. 나는 공항으로 오는 내내 자동차에서 긴장이 되었는지 멀미가 심하게 났다. 지금껏 차멀미를 한 적이 없었는데 막상 떠날 생각을 하니 긴장이 많이 된 듯했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짐의 무게는 23kg으로 한정돼 있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확인해보니 종종 유학생들은 출국 수속 때 담당 직원 분의 아량으로 약간의 무게 초과는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도 짐은 23kg에 딱 맞춰 준비해 왔다. 유학생 신분이 되니 챙겨야 할 것이 끝도 없었다. 하지만 무게는 제한되어 있으니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빼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는 유학 생활의 필수품 밥솥을 챙기지 않았다. 냄비밥을 하면 된다는 일념 아래 달랑 냄비 하나 챙겼다. 유학 떠나기 전 어머니를 보채 냄비밥 하는 법도 배웠고 적절한 타이밍에 누룽지를 만드는 법도 마스터했다.  


앞으로 러시아에서 계획하고 있는 시간은 6년 정도였다. 한국에 올 수 있는 시간은 매년 여름 1~2년마다 한 번씩 오는 것으로 계획했다. 상트에 도착하면 먼저 1년의 어학 년수 후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5년의 연출과 학, 석사과정을 진행하는 것으로 목표를 세웠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비행시간은 대략 10시간 가까이 되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떠나본 적은 없었다. 좌석은 일부로 창가 쪽을 선택했다. 지루하더라도 틈틈이 하늘을 보며 멍 때리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았다. 


야경이 멋진 넵스키 대로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바 공항이었다. 도시 중심지에서는 어느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늦은 밤 도착했지만 현지 여행사 담당자님이 나와 있었다. 일주일 동안 대학 등록, 비자와 관련된 진행 일정을 간단한 브리핑받고 차를 타고 기숙사로 향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자연은 아름다웠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넓은 평지로 되어 있었고 주위에 산이 없어서 한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도시 중앙부인 넵스키 대로로 들어왔다. 거대한 크기의 중세 유럽시대 건축물들이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지금껏 살면서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고풍스럽고 예술 같은 건물들이 조명에 비추어 멋진 장관을 뽐내고 있었다. 지금껏 영화에서나 보던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이동하던 내내 계속해서 탄성을 내뱉었다. 정말 이런 곳에서 내가 공부를 하게 되는 걸까? 잠깐이지만 도시가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국립대학교 기숙사였다. 도시 외곽에 있는 바실리 섬에 위치해 있었고 소련 시대에 지어진 18층 높이에 기숙사였다. 핀란드 해협과 맞닿아 있어 옛날에는 배를 건조하는 곳으로 불리는 동네였다. 


당시 지냈던 상트 국립대 2인실 기숙사


내가 배정된 3층 302호실에는 '쳉'이라는 중국인 친구가 들어와 살고 있었다. 2인 1실 구조로 된 4평 남짓한 자그마한 방으로 화장실과 주방을 다른 방 친구들과 공용으로 쓰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룸메이트 쳉은 이미 1년의 어학연수를 끝내고 올해 9월 국립대 어학부에 입학한 학부생이었다. 러시아어도 어느 정도 잘하는 친구였다. 당시 나는 러시아어를 전혀 할 수 없었기에 짧은 영어로 쳉과 이야기를 나눴다.

  

러시아어를 하지 못하니 생활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현지인들도 영어를 잘하지 못하였고 외국어로는 대부분 불어를 사용하여 소통이 전혀 불가능했다.  번은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계산을 담당하던 직원분이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했다어쩔 줄을 몰라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내뱉고 계산을 마친 뒤 서둘러 마트를 빠져나왔다. 기숙사로 걸어가는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서럽기만 했다.  

 

러시아에서 소통이 어렵다는 것은 러시아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미친 듯이 러시아어 공부에 매달렸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정규 러시아어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 또 공부를 했다. 새벽 1~2시까지 복습과 예습을 계속해 나갔다.


당시 나의 인간관계는 극단적인 편에 속했다. 한국 사람들과의 관계도 최소한으로 하고 러시아 친구들과 외국인 친구들과의 관계에 매달렸다. 그래야만 러시아어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한국인이라도 나와 만날 때면 러시아어로 소통을 해야 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로지 러시아어만 사용했다.



어학연수를 다니던 상트 국립대 어학부


몇 개월이 지나니 말은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됐지만 러시아어가 잘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라디오 기능이 탑재된 mp3를 구매했다. 이해도 안 되는 러시아 뉴스 채널을 틀어 놓고 하루 종일 들었다. 뉴스의 언어 리듬은 빠르지만 발음은 정확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러시아 법, 정치, 경제와 같은 상식에 대한 정보도 없었기에 이해는 거의 불가능했다. 몇 개월을 들었지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타가 올 때면 현대 러시아 가요가 나오는 채널을 찾아들었다. 노래는 대부분 사랑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기에 어느 정도의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먼저 공부 중이던 선배들에게 항상 물어보던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러시아어 잘할 수 있어요?" 대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숙제도 열심히 하고 러시아 사람들과 자주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다. 이외 모두 공통적으로 대답했던 의견이 있었다. 


언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언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항상 다급한 마음에 스스로를 문제 삼았다. 타지의 언어를 공부할 때는 2가지가 필요했다. 시간과 문화였다. 짧은 시간 내 언어의 높은 탑을 쌓을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문법과 단어를 익혀야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로 바뀌게 된다. 서두른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한 단계 한 단계를 거쳐 탑이 쌓아지듯 한 단계씩 천천히 배워가며 언어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거진 6개월 정도가 걸렸다. 현지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과 교류를 차단하고 오로지 외국인들과 러시아 친구들과 관계하며 지냈던 것도 후회가 되었다. 가벼운 산책조차 부담으로 느꼈던 내가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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