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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러시아 공기와 10루블 짜리 담배

담배값 아껴서 뭐할래?

by 크바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을

담배피기 좋은 러시아 날씨

한국에서 담배를 피울 때는 하루에 7~8개비 정도로 양을 정하고 나름 규칙적으로 피웠다. 처음 담배를 배우고 5년 가까이 이런 패턴을 유지했다. 담배를 아끼며 피웠고, 피우는 시간도 정해두었다. 충동적으로 피우지 않았다. 담배피는 시간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정했다. 정해진 한 개비씩만 태웠다. 특히 차가운 겨울 공기에 내뱉는 흰 연기는 마치 내 걱정을 바람에 날려 버리는 듯한 기분을 주곤 했다.


담배를 피우며 그리운건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던 추억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던 짧은 5분간의 시간은 담배보다 달콤했다. 담배 연기가 어우러지는 그 시간만큼은 웃음소리와 이야기로 가득 찼고, 러시아에서 혼자 담배 필때면 오래된 추억을 꺼내어 담배를 음미하곤 했다.


담배를 피우며 떠오른 건 친구들과 함께하던 추억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던 짧은 5분의 시간은 담배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만큼은 웃음소리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고, 담배 연기는 그저 그 시간의 배경일 뿐이었다. 러시아에서 혼자 담배를 태울 때면, 자연스레 그 기억이 떠올랐다. 혼자 내뱉는 연기 속에서 오래된 추억을 꺼내 음미하며, 그리움과 함께 담배를 태우곤 했다. 그 시간들은 내게 담배 이상의 따뜻함을 남겼다.


러시아에서 맞이한 9월의 공기는 이미 차가웠다. 낮 기온은 10~15도, 아침에는 10도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차가운 공기는 상쾌하게 느껴졌고, 담배 한 모금과도 잘 어울렸다. 습도는 50% 정도로 적당했으며, 담배 연기는 풍성하게 퍼져 흡연의 만족감이 더 컸다.


하지만 기숙사 근처에서 담배를 필때면 담배 맛을 잘 느낄 수가 없었다. 바다와 가까운 탓에 바람이 거세게 불었는데, 바람 속에서 피우는 담배는 연기가 쉽게 흩어졌다. 담배가 빨리 타들어가는 바람에 맛은 더 쓰게 느껴졌다. 담배와 바람은 생각보다 좋은 궁합이 아니었다.



400원 짜리 담배 벨라모르까날


10루블 짜리 담배 : 벨라모르까날

러시아에서는 어떤 담배를 계속 피워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한국에서 즐겨 피우던 보햄 담배는 이제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햄의 특유의 맛과 향은 내게 익숙하면서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것이었기에 그 공백이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러시아에도 분명 보햄과 비슷하거나 더 좋은 담배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새로운 담배를 찾아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담배를 하나씩 구매해 보기로 결심했다. 어떤 담배가 나의 새로운 취향을 대신할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러시아 담배 탐방이 시작되었다.


러시아에서 담배는 한국보다 훨씬 저렴했다. 가격은 대략 3분의 1 수준으로, 특히 큰 마트에서는 더욱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마트에 가보니 다양한 담배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종류가 백 가지는 넘는 듯했다.

눈에 띈 점은 대부분이 수입 담배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브랜드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그런데도 가격은 상당히 저렴했다. 수입 담배임에도 대부분 50~60루블, 즉 2천 원 정도였다. 이렇게 다양한 담배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니, 고르느라 꽤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건 단연 10루블짜리 담배였다. 가격표를 보고 잠시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10루블이라면 한국 돈으로 약 400원 정도다. 담배 한 갑에 400원이라니, 그야말로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잠깐 계산해보니 하루 한 갑을 피운다고 해도 일주일 동안 고작 2,800원. 한국에서는 담뱃값이 부담돼서 아껴 피우거나 정해진 시간에 맞춰 피웠는데, 400원짜리 담배라면 그런 고민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가격만 놓고 본다면, 마음 놓고 피워도 될 것 같은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담배였다.


수출용 벨라모르 까날. 고급스럽게 포장 됐다지만.. 맛은 변함 없을거 같다.

보통 담뱃갑 옆면에는 타르와 니코틴 함량이 명시되어 있어 소비자가 참고할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10루블짜리 담배에는 그런 정보가 전혀 없었다. 수치로 표기할 수 없을 정도로 함량이 높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측정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트에서 당당히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다는 건 무언가 기준을 통과하거나 허가를 받은 담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최소한 러시아의 담배 규제에는 어긋나지 않는 제품일 테니,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여전히 찜찜함은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이 정도 가격이라면 하루 한 갑을 피운다고 해도 용돈 지출에 전혀 부담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담뱃값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10루블짜리 담배의 이름은 벨라모르까날이었다. 벨라모르라는 지역의 강을 지칭한 이름인 것 같았지만, 정확한 의미나 유래는 알 수 없었다.


담뱃갑 디자인은 특이하게도 커다란 지도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담배와 지도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결국 벨라모르까날 한 갑을 구매하기로 했다. 테스트도 해볼 겸 해서 말이다.


이거 담배 맞아?

담배는 독해도 너무 독했다.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지독한 강도였다. 가장 특이한 점은 필터가 없다는 것이었다. 필터 없는 담배를 처음 접했기에 목 넘김이 상상 이상으로 거칠었다. 마치 첫 담배를 피우는 순간으로 돌아간 듯, 끊임없이 기침이 나왔다. 한 개비를 간신히 다 피우는 동안 내 얼굴엔 온갖 인상이 다 지나갔다. 더 큰 문제는 냄새였다.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가까이서 맡으면 속이 미칠 듯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이런 냄새는 처음이었다.


세상에 이런 담배가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이걸 피우느니 차라리 담배를 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돈을 아끼려다가는 건강을 크게 해칠 것 같았다. 심지어 흡연구역을 돌아다니며 주위를 살펴봐도 벨라모르까날을 피우는 러시아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 개비를 억지로 피우고 나머지는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이 경험으로 확실히 깨달았다. 아무리 싸도 내 몸과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을.



러시아에서 만난 미제 낙타 담배


내 운명의 담배는 어디있을까?

결국 다양한 담배를 시도하기로 했다. 한 갑씩 구매하며 차례대로 경험해보기로 마음먹고, 돈 낭비를 막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리스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러시아 국산 담배와 수입 담배. 우선 가격이 저렴한 제품부터 시작해 점차 가격을 올려가며 다양한 담배를 체험했다. 저렴한 담배 중에서도 괜찮은 담배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 담배는 내게 기대에 못 미쳤다. 대부분 무겁고 거친 느낌이었고, 피운 후에는 입안에 남는 구릿한 맛이 강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내가 원하는 맛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선택지는 가장 스탠다드한 담배 말보로뿐인가?


그래서 이번에는 수입 담배에 눈을 돌렸다. 마트에서 처음 보는 미국산 담배들이 진열된 모습을 보며 흥미를 느꼈다. 그중 특히 눈에 들어온 건 캠멜(Camel) 담배였다. 패키지에 그려진 낙타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내 별명이 '낙타'인 것도 어딘지 모르게 끌렸다.


영화에서도 캠멜 담배를 피우는 배우들의 멋진 모습을 봤던 기억도 떠올랐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러시아 담배보다 두 배는 비쌌다. 한 갑에 60루블(약 2,400원)로,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캠멜 담배 한 갑을 구매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담배의 맛과 냄새 모두 평범하게 느껴졌다. 수입 담배라고 해서 나와 잘 맞는 건 아니었다. 영화 속 배우들이 피우던 그 담배는 왠지 더 특별하고 맛있을 것만 같았는데, 역시 보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결국 선택은 말보로 라이트였다. 처음 담배를 배울 때 접했던 담배라 익숙한 느낌이 강했다. 오랜 기간 피웠던 담배였기에 냄새, 향, 맛 모두 낯설지 않고 편안했다. 게다가 말보로 라이트는 너무 강하지 않은 타르와 니코틴 함량 덕분에 목 넘김도 부드러워 부담이 없었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그야말로 대중적인 담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서 말보로 라이트는 한 갑에 55루블 정도, 한화로 약 2,200원이었다. 러시아 담배 중에서는 다소 비싼 편에 속했지만, 아끼면서 피운다면 부담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익숙함과 안정감을 찾기 위해 다시 이 담배를 선택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추신.. 러시아 대표 담배 <루스키 스틸> (직역하면 '러시아 스타일' 조금 촌스럽다)_드래그해야지만 보입니다.

친한 친구들이 러시아 담배 맛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 한국에 올때 두보루 정도 사왔다. Русские стиль(러시아 스타일) 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담배 였다. 담배갑 표지가 생각보다 화려 했는데 러시아를 대표하는 금색 독수리가 박혀 있었고 겉에는 파란 바탕으로 채워 있었다. 나름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어 비싼 담배처럼 보인다.


1년만에 만난 친구들은 담배를 보자마자 고맙다며 바로 담배의 가격 부터 물어봤다.

"이거 비싼거야 그냥 펴"라고 대답하며 가격은 말해주지 않았다.

사실 30루블 정도로 거의 천원밖에 안되는 저렴한 담배였다. 러시아 고급담배라고 소개하자 한 친구는 바로 그자리에서 피우기 시작 했다. 친구는 담배 느낌이 좋다며 러시아 담배 많이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담배 갑이 멋져서 그렇게 느끼는걸까? 그런데 한 친구는 맛없다며 맛있어하는 친구에게 담배를 넘겼다. 그냥 별로라고 했다. 러시아의 향기를 머금은 러시아 담배는 한국과 잘 어울리지 않는걸까? 물론 나도 러시아 담배는 맛이 없어서 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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