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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바스 Oct 31. 2024

처음 먹어본 러시아 도시락

도시락이 있어서 6년을 버틸 수 있었다.

내 인생은 라면

라면을 유독 좋아했던 내가 즐겨 먹던 라면은 신라면과 삼양라면이었다. 둘 다 명확한 개성과 국물의 맛이 내 입맛에는 너무 잘 맞았다. 하루에 한 번 라면을 꼭 끓여 먹을 정도로 좋아했고, 개인적으로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터득하여 친구들에게도 라면을 잘 끓이는 친구로 소문나 있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면 1인 1 냄비로 라면을 각각 따로 끓여서 대접했고 우리 집에 놀러 오면 꼭 라면을 먹고 갔다.


학생 시절 스스로 라면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대단했다. 서울에 숨어 있는 맛있는 라면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였고 각 동네에서 유명한 라면집을 찾아다니며 사 먹기도 했다. 대부분 소문난 라면집들은 신라면을 베이스로 사용했고 꼭 계란을 풀어 조리했다. 물양은 적게 넣어 짭짤하고도 매운 것이 포인트였다. 가벼운 반찬으로 단무지와 대게 직접 담근 김치를 같이 주었다. (보통 김치는 쉬어 있었다) 가격도 대부분 비슷했다. 2천 원에서 비싼 곳은 3천 원 정도로 당시 라면 한 봉지에 450원 정도의 가격으로 보면 조금 비쌀 수 있다. 그럼에도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바뀌는 라면 맛에 라면 맛집을 찾아다녔다. 



라면과의 이별

러시아 유학을 결정하고 좋아하는 라면과는 이제 이별이었다. 유학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봤던 건 러시아 현지에서 한국 라면을 구할 수 있는가였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한국 라면을 수입하고 있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던 신라면과 삼양라면은 당분간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비행기로 챙겨 갈 수 있는 짐의 무게는 총 23kg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23kg 안에 6년간 필요한 유학 생활의 물품을 담기란 쉽지 않았다. 간단한 옷가지와 필요한 조미료, 생필품만 챙겨도 20kg은 거뜬했기에 라면을 챙겨가는 것은 포기했다. 커뮤니티를 통해 다행히 러시아에서'Доширак(도시락 컵라면)'을 팔고 있다는 희소식을 접했다. 러시아 어느 마트에서나 현지화 맛으로 바뀐 도시락 컵라면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쉽지만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까?


3루블 짜리 봉지 라면

기숙사 주변에 있는 러시아 마트에 방문 했다. 바로 라면 코너로 갔다. 생각보다 현지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라면이 존재 했다. 가격대도 최저 3루블(120원)부터 50루블까지 선택의 폭이 넓었다. 대부분 닭고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하얀국물의 라면이었다. 


도시락의 가격은 현지 라면 시장에서 중간정도의 가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았기에 구매하는데 부담 없는 가격이었다. 저렴한 가격 앞에 맛은 뒤로하고 제일 저렴한 3루블 짜리 봉지라면을 구매했다. 총 10개정도 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30루블.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비교해 보자면 도시락 컵라면 2개와 동일한 가격이다.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맛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바로 라면 봉투를 꺼냈다. 조리법이 조금 특이 했는데 끓는 물에 라면을 조리하는것이 아닌, 접시에 라면과 스프를 넣고 컵라면 처럼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냄비뚜껑을 덮고 기다렸다가 먹는 라면 이었다. 


러시아 현지 봉지라면. 가격이 대체로 저렴하다.


라면의 크기가 정말 작았다. 내손바닥 보다도 작은 크기의 라면이다. 뜨거운 물을 붓고 3분이 지나니 그럭 저럭 면이 적절히 익었다. 분말스프는 소금과 후추가 섞인듯한 형태였다. 면은 약간 흑색을 띄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느낌의 면발 형태 였다. 무엇보다 과연 '닭' 국물 맛을 어떻게 구현할지가 궁금했다. 

숫가락으로 국물을 한입 먹어봤다. 정말 다양한 라면을 먹어봤지만 이런 국물은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처음 맛본 맛이었다. 다양한 라면을 알고 맛보았다고 자부했지만 이런 이국적인 짠맛은 처음 경험해 봤다. 나쁘진 않았지만 맛있지도 않았다. 

국물 다음 면을 한젓 가락 먹어봤다. 충격적이었다. 면발은 윤기도 없었고 툭툭끊어지는 푸석거리는 면발 이었다. 처음 경험해본 3루블 짜리 라면은 돈주고 사먹기에는 아까웠다. 싼게 비지떡인가? 더이상 3루블 짜리 라면은 사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러시아에서만 존재하는 도시락 3가지 맛

러시아에서 현지화 입맞에 맞춘 도시락은 총 3가지로 출시됐다.(지금은 더 다양한 맛이 추가됐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맛으로 러시아 현지인들에 맞춘 국물 베이스를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현지화를 하면서 한국에서는 맛보지 못한 특이한 국물 베이스의 라면들이 신기했다. 그중에서도 이경규의 꼬꼬면이 나오기 전부터 러시아 현지에서는 도시락 닭고기 맛이 있었다. 하얀 국물 베이스로 만들어진 라면으로 러시아에서 출시되고 있는 다른 라면들과 같은 닭고기 베이스 이지만 더 맛있는 라면 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시락의 면발 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라면처럼 면발이 탱글하고 쫄깃 거리는 느낌이 그나마 살아있었다. 툭툭 끊어지고 푸석거리는 러시아 라면과 비교할 수 없었다. 컵라면이었지만 냄비에 끓여먹어도 맛있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었다. 


러시아 현지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맛의 도시락
러시아 도시락에는 포크가 들어있다


도시락에 젓가락 대신 포크가 들어있다

러시아 컵라면을 먹다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우리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컵라면을 먹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젓가락 사용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컵라면에 작은 일회용 포크가 들어있다. 작지만 튼튼하고 쓸만한 포크로 학교에 도시락(진짜 밥을 담은 도시락)을 싸갈때 종종 챙겨가곤 했다. 


도시락 봉지라면의 등장

때마침 봉지 형태의 도시락 라면이 출시했다. 컵라면보다 크기는 작았고 가격은 2배 이상 저렴했다. 면발의 두께와 라면수프의 양이 적었지만, 한국에서 끓여 먹던 봉지라면 같아 반가웠다. 다만 대형 마트에서만 판매하고 있어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격은 기존 대비 50% 정도로 저렴했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양이 작아서 한번 먹을 때 두 개는 넣고 끓여 먹어야 배가 찼다. 끓는 물에 조리할 수 있는 편리함과 내 입맛에 맞춰 다양한 재료를 추가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가격이 7~9루블로 (400원 정도 했다)


70g 봉지 도시락 라면. 실제로보면 엄청 작다.


이왕 먹는 라면 맛있게 먹자 : +대파 +구운김

라면을 끓일 때 내가 추가로 사용하는 재료는 3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첫 번째 - 대파. 대파는 라면수프를 넣고 국물에 면을 투하한 다음 넣어야 한다. 대파가 다 익는 것보다는 아주 살짝 덜 익히면 식감도 좋고 대파에 시원한 국물 맛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 계란. 라면과 계란의 조화는 금상첨화다. 개인적으로 라면에 계란 넣는 것을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라면 장인은 계란을 미리 접시에 섞어놓고 라면에 풀었다. 국물에 풀어진 계란은 매운맛도 잡아주고 담백함과 식감까지 챙기니 라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세 번째 - 양념 되지 않은 구운 김. 일반 김을 사용하면 안 된다. 무조건 라면에 들어갈 김은 뜨거운 불에 살짝 구워야 제맛을 낸다. 김을 구울 때 나오는 향이라면 국물과 조화가 잘되는데 김을 굽고 나서 김을 잘게 부숴서 넣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다만, 김을 너무 많이 넣으면 국물 맛이 변하기 때문에 김 반장 정도 넣는 것이 가장 맛있다.


현지에서 도시락을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른김은 챙겨 왔다. 그런데 대파는 챙겨오는 건 불가능했기에 이리저리 알아봤다. 다행히 대파는 대형 파트에서 구할 수 있었다. 한 달에 한번 대형 마트에 다녀왔기에 커다란 대파를 두 봉지씩 사 왔다. 사 온 대파는 라면에 넣게 좋게 잘라 소분했고 큰 반찬 통 안에 넣어 얼려두었다. 보통 대파 두 봉을 사 오면 한 달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처음 보내는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날씨는 무척 추웠다. 그렇지만 기숙사에서 끓여 먹는 라면 한 봉지로 몸과 마음 모두 녹일 수 있었다. 길고 긴 6년 간의 러시아 유학 생활에 도시락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도시락 덕분에 뜨겁고 맛있는 유학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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