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도 당근이 있었네?
러시아에도 한국의 당근마켓처럼 거대한 중고 거래 플랫폼 AVITO(아비토)가 있다. 2007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가장 큰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한 달 평균 중고 거래 게시글만 8천만 개 이상 올라온다고 하니,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러시아 전역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으며, 가입자 수만 거의 5천만 명에 달한다. 숫자만 봐도 이 플랫폼이 얼마나 거대한지 실감이 난다.
아비토는 러시아 지역별로 다양한 중고 물품이 올라오는데, 물건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특히 오래된 물건들이 즐비해서,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희귀한 제품들이 아비토엔 넘쳐난다. 소련 시대 생활용품부터 러시아 군복, 책, 전자제품까지 상상 그 이상이다. 덕분에 연극에 필요한 소품이 있을 땐, 늘 아비토를 뒤졌다. 값싸게, 그리고 의외로 빠르게 득템하곤 했다.
의외로 물건 판매도 간단하다. 간단한 휴대폰 인증만 마치면, 바로 판매할 수 있다. 게시판에 들어가 가격을 입력하고, 거래 장소, 연락처, 제품 상태를 체크리스트로 작성한 뒤 등록하면 끝. 물품 등록 완료! 문제는 딱 하나 있다. 바로 러시아어로 상품을 등록해야 한다는 점이다. 러시아 중고 거래 시장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들이나 표현을 알아야 하고, 시세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도 미리 파악해야 한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 글자 차이로 제품이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도 네고가 할까? 당연히 러시아에서도 네고 요청은 가능하다. 다만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으니 정중하고 매너 있게 적절한 가격으로 제안해야 한다. 보통 나는 물건을 어떻게 해서든 네고하고 구매했던 성격이었기에 대부분 네고를 요청했다.
"존경하는 판매자 OOO님, 제품 OOO를 천 루블에 구매하고 싶습니다."
다짜고짜 네고부터 하면 대부분 거절당했다. 하지만 제품 스펙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판매자들이 흔쾌히 가격을 조정해줬다. 물론 이 모든 대화는 문자로 나눴다. 급할 때는 전화를 쓰기도 했지만, 역시 문자로 천천히 주고받는 게 가장 편했다.
아비토의 장점 중 하나는 판매나 구매 시 수수료가 없다는 점이다. 덕분에 어떤 물건이든 수량 제한 없이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었다. 그리고 아비토에서 상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오래된 물건을 판매할 땐, 하나같이 나름의 사연과 스토리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할머니가 쓰시던…”,
“이 핸드폰은 제가 핀란드 여행을 다녀오면서 구매한 것입니다”,
“제가 학교에 입학할 때 구매했던 디자인 그림 패드입니다…” 등, 판매 물건에 기나긴 사연을 적어둔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물건 하나하나에 정이 들었던 걸까?
첫 판매 성공! - 아이팟 터치 1세대
내가 처음으로 판매한 물건은 아이팟 터치 1세대였다. 당시엔 꽤 고가의 MP3였고, 2008년 출시 당시 내가 구매한 가격도 4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아이팟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물건이었다. 단순한 MP3 기능을 넘어, 터치 액정 기반의 인터넷, 동영상 재생 기능까지 담긴 기계였다. 이 작은 기계로 책도 읽고, 인터넷 서핑도 할 수 있었으니 말 다 했다.
그렇게 유학 와서 2년 가까이 정들었던 아이팟 터치 1세대를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 출시된 아이팟 터치 4세대를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모아왔던 용돈에, 아이팟 터치를 판매한 비용까지 더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확인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팟 터치 1세대의 중고 가격은 그리 높지 않았다. 아비토에 올라온 시세를 보니, 대략 1,000루블, 한화로 약 4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었다. 비싸게 팔아보려던 내 계획은 그 순간 물거품이 됐다. 솔직히 상태도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배터리가 금방 닳아버려서 높은 가격에 팔긴 어렵겠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웠지만, 시세에 맞춰 1,000루블에 판매하기로 했다.
아비토에 처음으로 물건 판매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종이 사전을 펼쳐 두고, 최대한 머리를 굴려가며 자연스럽게 문장을 만들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짧고 단순하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제품은 한국에서 구매했습니다."
"2008년, 이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년 정도 사용한 물건입니다."
"배터리는 3시간 정도 사용 가능합니다."
"서비스로 레고 모양 스피커도 드립니다."
나름 상세하게 작성하고, 연락받을 수 있는 핸드폰 번호도 등록해 두었다. 제품 사진도 앞면 액정, 뒷면, 옆면까지 다양하게, 무려 10장 넘게 찍었다. '진짜 연락이 올까?' 하는 기대 반, '괜히 이상한 사람이 연락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반.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등록’ 버튼을 눌렀다. 내 인생 첫 중고 판매 글. 아비토에 공식 입성하는 순간이었다.
신기하게도 등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구매 문의였다. 첫 거래의 긴장감 때문인지 심장이 괜히 두근거렸다. 상세한 제품 문의는 없이, 곧장 "언제, 어디서 거래할 수 있냐"고 물어왔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으며 일정을 조율했고, 판매 글을 올린 지 몇 시간 만에, 내 인생 첫 거래가 성사됐다.
구매자와 나는 ‘쁘리모르스까야’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거래 상대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는데, 키가 꽤 커서 얼핏 보면 대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로 어색했지만, 첫 만남부터 손을 맞잡고 정중하게 악수를 나눴다.
러시아에서는 남자끼리 악수로 인사하는 문화가 있어서, 그날도 자연스럽게 악수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바로 제품 확인에 들어갔다. 학생은 꽤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힐끗힐끗 웃으며 터치도 해보고, 제품 여기저기를 유심히 살폈다. 뒷면에 한글이 쓰여 있는 걸 보고는 “이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신기해하기도 했다. 결국 “쁘리꼴나(짱인데)”라는 말이 나왔다.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서비스로 준 레고 모양 스피커를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 현지에서는 보기 힘든 예쁜 디자인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주머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천 루블을 받았다. 너무 꼬깃해서 진짜 돈이 맞나 잠시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러시아 중학생 친구 덕분에, 나의 첫 거래는 무사히 잘 마무리됐다.
2. 니콘 D40 카메라
DSLR 카메라를 갖는 게 목표였던 나는, 2007년 피자헛 알바를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손에 넣은 DSLR 카메라가 바로 니콘 D40이었다. 비싼 모델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정말 꿈같은 카메라였다. 너무 갖고 싶던 걸 드디어 손에 넣으니,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서울 이곳저곳을 다니며 풍경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 법도 잘 몰랐지만, 하루에 최소 500장은 찍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렇게 카메라와 정이 들었다.
덕분에 러시아에 오면서 카메라도 함께 챙겨왔다. 사진기로 아름다운 풍경을 담겠다는 기대가 가득했지만, 바쁜 학교생활 속에 사진 찍는 취미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결국 거의 2년 가까이, 카메라는 장롱 구석에서 잠만 잤다. 사용하지도 않지만, 이상하게도 팔기에는 너무 아까운 물건이었다. 한 번 다시 써보자 다짐해도, 며칠 못 가 다시 장롱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생활비가 부족해질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카메라 판매였다. 나름 고가의 제품이다 보니, 팔면 생활 형편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출시된 지 꽤 시간이 지난 터라, 비싸게 팔릴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시세를 확인해 보니, 1~2천 루블 선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게다가 가장 고민이 됐던 건 러시아어 지원 여부였다. 영어 메뉴가 있어 사용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지 언어로 사용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카메라 메뉴에 러시아어가 지원되었다. 다만 이 제품은 한국에서 전파 인증을 받은, 이른바 ‘K 마크’를 달고 있는 카메라였다. 그래서 러시아 현지에서 A/S를 받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었다. 이 점은 단점이지만, 동시에 ‘희소성 있는 한국 정품’이라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장단점을 정리해 아비토에 판매 글을 올려보기로 했다.
“K 마크가 있는 니콘 DSLR 카메라를 판매합니다.” 그렇게 또 하나의 판매 글을 아비토에 게시했다.
이번에도 욕심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빠르게, 깔끔하게 판매하자는 생각에 단돈 천 루블(약 4만 원)에 올렸다. 카메라 본체부터 부속품 하나하나까지, 사진도 자세히 찍고 설명도 성실히 달았다. 그런데 등록하자마자 바로 문자 메시지가 왔다.
“구매하고 싶어요!” 순간, 너무 싸게 올린 건가 싶어 잠깐 멈칫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거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번에도 거래 장소는 익숙한 곳, ‘쁘리모르스까야’ 역으로 정했다.
이번 구매자는 긴 금발 머리의 러시아 아가씨였다.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워 괜히 떨렸다. 첫 인사도 어색하게 시작됐다.
“안녕… 하세요…?” 한국에서 사 온 제품이라는 걸 설명하고, 간단한 기능도 소개해주었다. 잠깐 테스트 촬영도 진행했는데, 작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카메라는 잘 작동했고, 테스트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거래는 특별한 문제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다만 돌아오는 길에 문득, ‘너무 싸게 올린 건 아니었을까?’ 하는 괜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첫 구매 - 사기당한 아이폰5
아이폰5가 출시되었을 때, 나는 말 그대로 흥분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간절히 무언가를 갖고 싶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전작 아이폰4에 비해 조금 길어진 게 전부 같았지만, 그 디자인은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무조건 사고 싶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러시아에서 아이폰은 수입품이라 가격이 꽤 높았다. 게다가 출시 초기라 신상품 프리미엄이 붙었고, 제품 가격은 구 달러 환율에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아이폰 기본형의 시작가는 무려 18,000루블, 지금 기준으로도 꽤 비싼 72만 원쯤 됐다.
혹시나 저렴한 아이폰5 매물이 올라오지 않을까 싶어, 나는 매일같이 아비토를 들락거렸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제품이 올라오기만을 바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 가격을 확인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중가보다 약 2,500루블, 그러니까 대략 10만 원 정도 저렴한 매물이 올라왔다.
무리되는 금액이긴 했지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거래라 생각되었다. 게다가 금방 팔려버릴까 봐 마음이 급해져 망설임 없이 바로 연락을 했다. 판매자는 젊은 러시아 청년이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직접 오겠다고 하며 말투도 친절하고 태도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영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터라 점심시간에 맞춰 판매자가 오기로 약속했다. 약속 시간이 되자 갑자기 어디선가 아우디 스포츠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이폰5?"
"Да, да да.(네, 네네네)"
갓길에 차를 주차하고 앞자리 조수석에 앉았다. 그러더니 포장된 아이폰5 하나를 내게 건넸다. 비닐도 뜯지 않은 아이폰을 보자 설렘이 가득했다. 그 자리에서 제품을 확인하고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 비닐 포장을 벗기고 핸드폰을 켜보려는데 핸드폰이 켜지지 않았다. 밧데리가 없어서 방전됐다는 표시가 나왔다. 약간 의아했지만 오랜 시간 보관하여 방전된 것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다.
판매자도 지금 바로 충전하면 문제없다고 하며 자신의 자동차 시가잭에 연결하여 충전을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정도 흘렀는데 핸드폰이 하나도 충전되어 있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판매자는 자동차 시동을 걸지 않아 충전이 안 된 것이라며 시동을 걸고 다시 기다리자고 했다. 그 순간 의심이 됐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내 손안에 있는 건 분명 아이폰5였다. 결코 짝퉁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5분 정도가 지나자, 핸드폰이 켜지기 시작했다. 검은 배경에 하얀색 사과가 등장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마음속 의심은 전부 사라졌다. 제대로 작동된다는 것을 믿고 그 자리에서 바로 돈을 건네고 거래를 마무리했다.
핸드폰은 초기화된 상태였고 모든 것이 잘 작동되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잘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사용하던 초저가 스웨덴 통신사 TELE2(쩰레드바)는 2G만 가능했기에 인터넷 사용이 거의 불가능했다. 3G는 써야 인터넷을 편하게 사용하는데…. 2G는 속도가 정말 기상천외하게 느렸다. 결국 원활한 인터넷 사용을 위해 3G가 가능한 통신사로 옮기기로 했다. 러시아의 대표 통신사 빌라인에게 방문하여 심 카드를 개통하고 아이폰으로 옮겨 사용을 시작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아이폰5에서 러시아 통신사 심 카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메가폰, MTC 등 다른 대표 통신사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했다.
통신사 직원이 확인해 보니 락이걸린 아이폰이라고 했다. 영국 특정 통신사에게 발급된 아이폰으로 영국 통신사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초저가 스웨덴 통신사는 사용할 수 있었던 걸까…? 결국 어쩔 수 없이 스웨덴 통신사로 돌아와 사용했다. 거기다 핸드폰에서 조금씩 이상한 낌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핸드폰 카메라에 먼지가 끼는 것이었다.
나에게 아이폰을 판매했던 판매자는 이미 종적을 감추었다. 번호도 사용정지 되어 연락도 불가능했다. 아이폰 매입 전문점에서도 내가 사용하는 아이폰5는 매입을 거부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싼값에 다시 정리하고 싶었지만 내 아이폰은 문제가 있는 아이폰이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영국 통신사에서 판매되던 아이폰으로 해당 통신사만 사용할 수 있도록 Lock이 걸린 아이폰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통신사 사용은 불가했다.
거기다 내가 쓰던 아이폰은 카메라에 먼지까지 들어가는 불량품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진도 뿌옇게 나오는 문제가 있었다.
내가 가장 저렴한 스웨덴 통신사 사용만 안 했더라도 문제 있는 걸 분명 알았을 텐데…. 어떻게 이런 우연으로 스웨덴 통신사 사용이 가능했던 걸까? 결국 나는 내가 구매한 가격보다 만루블을 낮추어 8,000루블에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40만원 가까이 손해본 것이다. 구매한 지 한 달 만에 다시 아비토에 아이폰5를 올렸다. 그렇게 저렴한 아이폰5에 대한 사연을 한 줄씩 적어 내려갔다.
'영국 통신사 락이 걸린 핸드폰이다.'
'렌즈에는 먼지가 껴있어 사진이 흐릿하게 나오고 있다.'
'사용할 수 있는 통신사는 TELE2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글을 올리자마자 구매자에게 연락이 왔다. 출시되고 얼마 안 된 아이폰5를 1달 만에 저렴하게 판매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문의 전화가 왔다. 그래도 첫 번째 구매자에게 우정으로 팔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구매자의 요청이 조금 난감했다. 자기 집 근처 지하철역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지하철역은 우리 집과 정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었고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가는 데만 거의 1시간 30분 가까이 걸린다. 그래도 당장 구매 가능하다는 의사도 밝혔기에 마음먹고 가기로 했다.
우리는 지하철 출구 앞에서 만났다. 아저씨는 러시아 국민차 Рада(라다)를 타고 오셨다. 40대 중반의 러시아 아저씨였다. 아저씨도 차에 들어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우리는 차에 앉아 함께 핸드폰을 살펴봤다. 다행인 건지 아저씨도 TELE2 통신사를 사용하고 있었다. 심 카드를 옮겨 사용하니 문제없이 잘 작동했다. 아저씨는 흡족해하며 나에게 돈을 건넸다. 32만 원에 아이폰5를 구매한 것이 무척 기분이 좋았겠지? 나도 빠르게 아이폰을 처분할 수 있어 좋았지만, 이번 손해를 통해 러시아 당근의 쓴맛을 맛봤다.
핀란드 출신 아이폰4 구매하기
결국 다시 아이폰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아이폰5를 처분한 8,000루블 정도뿐이다. 중고로 핸드폰을 사기에는 뭔가 찝찝했기에 새폰을 구매하고 싶었다. 구매할 수 있는 핸드폰은 아이폰4, 아이폰4S 정도로 추려졌다. 하지만 아이폰4는 출시한 지 4년 가까이 지난 터라 너무 오래되어 새 제품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나마 아직 판매되고 있는 4s 모델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이폰 4s를 판매하고 있는 글 하나를 보게 됐다. 판매자는 일주일 전 핀란드에서 구매하여 친구에게 선물하려 했지만 선물하지 못했다는 사연을 적어놨다. 일주일 전 핀란드를 다녀오며 구매한 영수증까지 함께 사진으로 올려놨기에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정품 제품이었다. 가격은 12,000루블이었다.
4천 루블 정도는 감사하게도 통역 알바로 벌어 놨던 400$가 있었다. 나는 당장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어 구매 의사를 밝혔다. 판매자는 시내 중심가에서 살고 있어 이동이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시내 중심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판매자는 20대 젊은 청년이었는데 매우 친절했다. 무엇보다 인상이 너무 좋았다. 바로 자리에서 비닐을 뜯어 핸드폰을 함께 오픈했다. 제품을 켜보자 바로 문제없이 흰색 사과가 등장했고 작동도 잘됐다. 판매자는 자신의 친구가 아이폰 전문 수리점을 한다고 하며 원한다면 함께 방문해서 제품이 이상 없는지 살펴봐 줄 수 있다고 했다.
때마침 액정 보호필름도 필요했던 터라 함께 판매자 친구가 운영하는 아이폰 전문 수리점에 방문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폰 전문 수리점은 거래장소에서 대략 2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의도치 않게 판매자와 통성명하고 우린 친구가 되었다. 나보다 3살 정도 많은 형이었고 이름은 니키타였다. 우리는 넵스키를 걸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러시아 이야기, 니키타의 직장, 가족 등 다양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나눴다. 그렇게 니키타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보호필름 장착도 받고 제품은 문제없는지 검수도 받고 만족스러운 거래를 진행했다. 러시아 사람에게 속기도 했지만, 따뜻한 정도 받을 수 있어 감사한 거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