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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Oct 23. 2020

몸으로 겪어낸 지혜

[타인이 내 삶의 주도권을 쥐게 놔두지 마라 #13.]

퇴직금으로 식당을 창업하고 2~3년 만에 문을 닫은 경험을 해본 후에는
그 허름한 중국집 주인아저씨가 알고 봤더니
재야에서 은둔하고 있던 무림의 고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네 뒷골목 허름한 식당이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10년, 20년을 생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얼마나 대단한 능력의 결과라는 것을
자신이 경험해본 후에야 알게 된다. 
-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 中 -



나에게 첫 번째와 두 번째 창업은 사실 실전이 아니라는 것을 세 번째 창업을 하고나서 깨달았다. 세 번째 창업 또한 연습이었다는 것을 네 번째 창업을 하면서 깨닫는다. 고수는 하수를 알아 보지만, 하수가 고수를 알아보는 건 쉽지 않다. 논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궁궐의 담장에 비유한다면 나 사(賜)의 담장은
어깨높이에 이를 뿐이므로 그 가정의 좋은 것들을 몰래 엿볼 수 있지만,

스승님의 담장은 셀 수 없이 높아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모든 관리의 많음도 볼 수 없으나,
그 문에 들어간 자가 너무나 적으므로
부자(夫子)께서 말씀하신 바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리라


고수의 세계는 너무 높아 직접 들어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이다. 같은 맥락에서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을 읽으며 과거에 처절하게 느꼈던 바가 떠올랐다. 창업을 하기 전에는 동네를 지키고 있는 세탁소, 국밥집이 뭐 그리 대단한가 싶었다. 그런데 창업 이후 직접 발로 뛰고 고객을 만나면서 거절의 거절의 거절을 경험한 이후에는 1만원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관심을 보이다가 사지 않는 고객을 숱하게 보면서, 한 자리를 몇 십 년 간 지키고 있는 동네 구멍가게의 위엄을 느꼈다.


작년에는 오프라인 행사를 한 달에 한 번 꼴로 나갔었다. 내가 다루는 제품은 특수성이 있기에 행사의 성격에 따라 반응이 크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일단은 초반이기에 다양한 고객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오프라인 행사를 부딪히면서 PR하는 방법도 스스로 터득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루는 동대문DDP에서 하는 밤도깨비 야시장에 참여했다. 그냥 듣기만 해도 연인과 가족 단위가 많아서 음식점이나 기본 악세사리 같은 건 잘 될 것 같지만, 키트는 쉽지 않을 것 같지 않은가?


역시나 판매는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서서 판매를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동네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겸손해지고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이 분들도 초반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가게가 생겼다 사라지는 치열한 전투의 현장에서 한 자리를 묵묵히 몇 년 간 지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울까. 자신만의 노하우와경험치로 풍파를 견뎌낸 분들의 삶에 저절로 손을 모으게 된다.


나는 이제 몸으로 겪는 경험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책상에서 머리 굴려서 전략이 나올 순 있겠지만, 실전은 결국 현장에서 겪는 것이다. 그래서 창업할 때는 고객을 최대한 많이 만나며 살아있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네 번째 창업을 준비하며, 나의 고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동대문DDP 야시장에서는 판매로 승산이 없겠다 싶어 중간에 SNS 좋아요를 받는 걸 목표로 전략을 변경했다. 게임 형식처럼 판을 돌려서 당첨이 나오면 선물을 주는 간단한 거였는데, SNS 좋아요를 클릭하고 이를 인증하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허들을 하나 두었고, 선물이 별 거 아니었음에도 10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를 했다. 다행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서 마음을 좀 달랬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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