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 계속 따르지 않아도 괜찮아
밤 11시 55분 출발이던 비행기가 조금 지연되어 결구 날짜를 넘겨 12시 15분쯤 출발했다. 게이트에서부터 떠들던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이 내 뒤에 타서 계속 떠들어 너무 시끄럽다. 피곤한데 건조해서 코는 막히고, 귀를 딱딱 때리는 소리로 떠들어대니 남미에 대한 정까지 떨어지려고 한다. 피곤한데도 몸이 불편하니 잠을 잘 못 잤다.
2시간 안 돼서 산티아고 도착했다. 원래는 에어사이드에서 나가서 짐을 찾고 다시 체크인을 해야 하는데 맡긴 짐도 없고, 모바일 티켓이 있어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곧바로 탑승 게이트로 향했다. 다시 한두 시간 대기 후 탑승했다. 탑승하고 나니 피곤에 절어 잠이 들었다. 좀 자다 깨서, 잠을 꽤 잔 것 같은데 아직도 출발 전이다. 결국 출발은 한 시간이나 지나서 했다. 다시 3시간을 날아 아침 8시 반에 도착한 푼타아레나스는 전날 본 칠레와 너무 다르다. 우버를 타고 숙소로 가는데 집이나 가게에 철창이 없고, 매연도 없다. 집들이 꽤나 이쁘게 꾸며졌다.
숙소에 짐 맡겨두고 마그달레나 섬 펭귄투어부터 알아보기로 하고 조금 멀지만 시내로 슬슬 걸어서 갔다. 날씨가 너무 좋아 푼타 아레나스에 대한 기대는 올라갔다. 금액은 반일투어 15만 원 정도 하는데 오늘 바람이 세서 배가 못 뜬단다. 정확한 건 한두 시간 후에 확인 가능하다고 해서 일단 브런치로 허기를 달랬다. 커피숍이 활기가 차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니 피곤이 좀 사그라들었다. 카페 이름도 웨이크업이다.
다시 찾아간 여행사는 내일도 못 뜬다는 통보를 받았다. 다음날 푸에르토 나탈레스를 좀 늦게 가거나 경유만 하고 내일까지 기다려볼까도 했지만 내일도 불확실한데 못 뜰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표지판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세긴 하다. 그동안 행운을 너무 썼나? 이번엔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 예전에는 여행지에서 하려던 걸 못하면 실망이 컸지만 요즘은 그래 여길 다시 오자는 맘으로 약간은 기대가 되기도 한다.
결국 포기하고 부두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배가 못 뜨니 부두도 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뿐 아니고 다른 나라 여행객들도 보였는데 같은 마음인 것 같다. 아쉬움에 밖에서 사진만 찍고 있다. 바닷가 쪽을 따라 조형물들을 구경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어를 못 가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겠구나 싶다. 그중 인상 깊었던 건 마젤란해협 500주년 기념 조각 시르쿤나베가시온(Circunnavegación)이다. 세계일주를 뜻하기도 하는데 중간의 배는 마젤란 함대 중 유일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나오 빅토리아호이다.
점심은 무한도전의 상징적 의미로 코코멘에서 신라면을 먹으려 했는데 악평이 너무 많다. 팬심에 좋게 보려고 해도 마음이 가질 않는다. 근처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강라면 가게에 가서 라면 두 개에 즉석밥까지 먹었는데 저쪽 하나 가격이다. 가게 주인이 한국드라마를 좋아하고, '폭삭속았수다'도 봤다고 해서 선물로 들고 간 돌하르방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니 너무 좋아하며 앤젤이랜다. 다 먹고 나니 우리 뒷모습을 그려서 선물로 주셨다. 빠르게 그린 건데 디테일이 살아있다.
근처에 100년이 넘은 지역맥주인 아우스트랄 양조장이 있다. 예정에 없던 양조장 투어를 신청하고 양조장 근처 카페를 갔다. 평이 좋아 갔는데 막상 가보니 고양이 카페네? 가게 이름도 coffee가 아니고 catfee더라. 고양이 보는 재미는 있는데 음료는 그냥 그렇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장소라서 평이 좋은가 보다. 커피 한잔하고 다시 양조장. 투어는 영어, 스페인어 같이 진행하는데 보통 스페인어가 메인이고, 영어는 짧게 요약정도로만 지나갔는데 여기는 스페인어와 영어 설명 길이가 비슷한걸 보니 제대로 하는 것 같다. 공장 한 바퀴 설명 들으니 마지막에 샘플러로 7잔을 준다. 방금 만든 맥주와 출시도 안 한 테스트 중인 맥주까지 마셔봤다. 만 8천 원에 이 정도면 꽤나 가성비도 좋고, 여러 가지 맥주를 맛볼 수 있어서 좋다.
숙소 돌아와 체크인. 이번 여행 첫 도미토리이다. 지급받은 침대시트를 끼우며 그래 맞아 도미토리 이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서비스도 열악하다. 수건도 없을 때를 대비해서 챙겨 왔는데 역시 여기는 주지 않는다. 챙겨 오길 잘했다. 짐 풀고 침대에서 좀 쉬는데 직원이 오더니 침대 밑에 층이 자리가 났다고 옮겨준다. 꽤 넓은 다인실이었는데 한 자리만 들어와 있다. 아마 오늘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누가 들어와서 어차피 사용하는 김에 옮겨주기로 한 모양이다. 자리가 여유로워서 남 신경을 안 써도 되고 좋다. 다만 프런트랑 멀어서 그런지 와이파이가 너무 약하다.
저녁은 리뷰로 찾은 평점 좋은 레스토랑에 갔더니 리조토, 파스타나 스테이크가 대부분 2만 7천 원 정도이다. 같은 가격이면 스테이크지 하고 별 기대 안 했는데 진짜 맛있다. 양도 꽤나 많다. 친구가 시킨 리조토도 엄청 맛있었다. 맛집 인정하고 디저트까지 먹고 싶었는데 너무 배부르다. 기분 좋게 팁도 주고 돌아오는데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좀 뛰는데 아 고도가 낮아 이렇게 뛸 수도 있구나 싶다. 숙소 도착하니 비가 또 쏟아진다. 오 아직 행운 살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