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시간을 보낸 카라마
느긋하게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새삼 좋은 호텔임을 깨달았다. 조식이 포함된 줄도 몰랐는데 퀄리티가 괜찮다. 밥 먹고 어제 못한 환전 하러 갔다. 달러는 나쁘지 않게 쳐줬는데 볼리비아 돈은 역시 반으로 후려친다. 어쩔 수 없지 쓸데가 이제 없으니 말이다. 환전 후 근처 성당과 공원 산책을 가볍게 했다.
다시 숙소에 와서는 오늘은 야간 비행기라 못 씻을 거고, 잠도 자기 어려울 거니 최대한 늦게 체크아웃을 했다. 뭘 할까 찾는데 관광도시가 아니라서 작은 박물관 같은 것 밖에 없고, 그나마 찾은 계곡은 택시 타고 갈 수는 있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돌아오기 어려울 수 있다고 해서 근처 대형 쇼핑몰을 가보기로 했다. 뭐라도 있겠지.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아 일단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카라마시민들이여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건가요? 가게들마다 철창은 기본이고, 초등학교는 높은 담장과 철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귀여운 그림에 그렇지 않은 구조물. 가다가 시장도 있기에 한 바퀴 구경했는데 딱히 살 건 없다. 쇼핑몰 한쪽은 백화점이고 한쪽은 일반몰이다. 마트도 딸려있는데 규모가 꽤 크고, 이케아 같은 창고형 매장도 있다.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는데 메뉴도 메뉴지만 키오스크가 있는 치킨 매장으로 선택했다. 어제 버거가 너무 컸어서 이번엔 세트하나에 음료 하나 추가해서 나눠 먹었더니 딱 적당했다. 1층에 컵과일을 6천 원 정도에 팔고 있는데 두바이식 과일이 있다. 여기도 두바이가 유행이구나 싶어 아무 생각 없이 주문했는데 이건 만 2천 원이다. 점심을 둘이 만 원에 먹고 디저트를 2만 4천 원에 먹다니? 처음엔 맛있는데 뒤로 갈수록 너무 달고 시다. 너무 달아져서 커피가 당겨 스벅으로 갔다. 오 이번엔 스페인어로 주문 잘했다.
도스 콜드브루 뽀르빠보르 (콜드브루 2잔이요)
꼴브루? (Coldbrew의 스페인식 발음인 거 같음)
씨 꼴브루
어쩌고 저쩌고 (대충 사이즈 묻는 말)
알토 (여긴 톨사이즈가 알토이다)
알고 마스? (다른 건?)
노 마스? (없어)
놈브레? (이름은?)
하이메 (제이미의 스페인식 이름. 여기서 천사들의 합창이 생각난다면 옛날 사람)
어쩌고 저쩌고 (팁 얼마 줄 거냐 소리였는데 영수증 줄까로 잘못 이해함)
노노 (얼떨결에 맞는 대답)
공부한 보람이 있어
그렇게 커피까지 마시고 구경하다 보니 대충 오후 4시가 넘어갔다. 이 동네 참 뭐 없다. 마땅치 않아서 와이파이라도 잘 되는 호텔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7시쯤이 됐는데 입맛이 없어 저녁은 안 먹고 샌드위치 사서 공항으로 가기 위해 우버를 호출했다. 어제 도로도 안 시끄럽더니 여긴 러시아워도 없나 차도 안 밀려 20분 만에 왔다. 역시 공항은 황량한 곳에 있다.
엘칼라파테를 바로 가려고 했는데 항공권이 너무 비싸서 경유를 알아보는데 푼타아레나스를 가는 게 차라니 낫다. 여행 기간은 넉넉한 편이라 산티아고 경유해서 푼타아레나스로 가기로 했다. 푼타아레나스 경유라서 연계가 되지 않아 원래는 산티아고에서 에어사이드 밖으로 나갔다 들어와야 하는데 발권을 미리 해두면 산티아고에서 별도 체크인 없이 게이트만 이동해 바로 탑승이 가능하다. 온라인 체크인이 가능하니 체크인도 금방 되어 이제 다시 기다림의 시작이다.
우리가 탈 비행기가 오지도 않았는데 전광판은 탑승 중이 떴다. 결국 탑승구 변경이 뜨고, 게이트에서 편하게 타는 줄 알았는데 게이트를 1층으로 보내더니 건물 밖으로 나가서 걸어서 탑승한다. 늦은 밤이라 너무 춥다.
아 빨리 고도 낮고, 안 건조한 데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