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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액션가면 Apr 03. 2023

액션가면의 동유럽 2 - 바르샤바2

2023.2.26 쇼팽의 날

잊고 있었다. 나는 물먹는 하마라는 사실을

3박이니 충분하겠거니 샀던 1.5리터 물을 어제 다 마셔버려서 오늘은 아침부터 물을 사러 돌아다녔다. 아 여긴 유럽이다. 마트들이 다들 일요일엔 문을 닫는다. 편의점은 아직 시간이 일러 열지 않았다. 물을 찾아 돌아다니다 추워서 포기하고 짐 싸들고 외출을 했다.


Green Caffè Nero

어제처럼 아침 카페는 숙소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를 갔는데 여기가 좀 더 로컬 느낌이다.

처음 보는 코르타도와 바게트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팁박스에 거스름돈을 넣고 보니 포르쉐 로고가 그려져 있기에 글귀를 번역해 봤다.

우리는 포르쉐로 간다.

이렇게 모아서 언제 포르쉐를 사나 하며 재밌어했다. 바게트 샌드위치는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 맛있고, 코르타도도 맛있고, 추워서 덜 돌아다니고 싶어서 좀 더 오래 있었던 카페는 여유가 느껴져서 좋았다. 그러다가 이 여행 재밌는 거 맞나? 싶었는 데 맞아 나는 동유럽 한 달 살기 느낌으로 온 거지 하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쇼팽동상 보러 와엔자키 공원을 가려다 열려있는 편의점이 보여 그렇게 찾던 물을 샀다. 징쿠예(고맙습니다)를 육성으로 처음 들어봤다. 단어는 익혀갔지만 발음이 맞는 건지 조금 소심해져서 실제로 사용하진 않고 있었는데 이젠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소에 물을 가져다 놓으려고 가는데 여자분이 근처에 베이커리가 없냐 물어본다. 와 편견 없는 분이네. 누가 봐도 여기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나에게? 다른 이들에 비해 덩치가 작고 노는 중이라 여유가 넘치는 표정이라 좀 더 다가가기 쉬웠으려나? 아님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아시아인이란 스테레오타입? 쓸데없는 의문을 뒤로하고 아까 갔던 카페를 알려주고 숙소로 가며 주위 사람들을 봤는데 출근길이라 그런지 표정도 다들 굳어있어서 나 같아도 나한테 물어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가져다 놓으려 방에 가니 말 한마디 없던 싱글 침대 쓰던 사내가 체크아웃한다며 작별인사를 한다. 어제 말을 좀 걸어볼걸 그랬나? 방을 나갔다 다시 들어오더니 방키를 안 챙겼단다. '굿바이 어게인'으로 다시 인사를 했다.


Łazienki Park

이번엔 진짜 외출을 한다. 버스를 타고 와엔자키 공원으로 향했다. 쇼팽동상은 꽤 컸다. 동상 앞으로는 야외 공연장도 있었는데 성수기에는 야외 공연도 한단다. 바르샤바에 온 주목적이 이 동상이었던지라 시내와는 좀 거리가 있는 이 공원에서 이거만 보고 가기가 좀 아쉬워서 추움에도 벤치에 좀 앉아있었다. 쇼팽벤치 음악도 여러 번 들었다.

오늘은 쇼팽의 날이라 쇼팽박물관으로 간다. 버스를 내리고 박물관 쪽으로 걸어가던 중 지도를 다시 보니 어라? 임시휴업이라 나오고 있네? 거의 다 온지라 가끔 지도가 실시간정보가 틀릴 때가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봤지만 역시나 닫혀있다. 비수기라 내부공사중인가보더라. 아쉬운 마음에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퀴리 박물관을 가려고 지도를 보니 이번엔 또 일요일 휴관이다. 어제 퀴리 박물관을 가고 오늘 봉기 박물관을 갔어야 했다. 내일 바르샤바를 떠나는 게 좀 아쉬웠는데 미련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Museum of Warsaw

바르샤바 미술관과 바르샤바 박물관 중에 미술관은 내가 아는 유명한 작품이 없을 것 같아 바르샤바 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어제 잠깐 본 크리스마스마켓을 다시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마켓 입구에선 옛날카메라로 사진 찍어 옛날 신문 스타일로 출력해 주고 팁을 받고 있었다. 앞에 한 가족이 사진을 찍는 걸 보고 나도 찍었다. 기념품이 생겼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앞 가족이 바람잡이인가 싶을 정도였다. 사진을 찍고 나서 굳이 나에게 설명해 주면서 자랑을 했거든..

바르샤바 박물관은 오래된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살려서 만들어서 미로처럼 조금 복잡한 구조였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발전모습과 많은 소장품들을 전시한 게 인상적이었는데 내가 사는 제주나 서울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는데 이런데 온 게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박물관 건물이 높이가 좀 있어 꼭대기 층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위에서 볼 수 있다. 친구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니 밤에는 더 이쁠 거 같다는 의견에 밤에 예약한 연주회가 이 근처라서 다시 와보기로 했다.

GOŚCINIEC Polskie Pierogi

점저는 골롱카(독일은 학센, 체코는 꼴레뇨, 폴란드는 골롱카)를 먹으러 어제와는 다른 식당에 갔는데 대기가 있어 다른 식당으로 갔다. 점심때가 살짝 지났는데도 다른 식당들도 다들 대기줄이 있어 결국 다시 첫 번째 식당으로 갔다. 아 2층에도 좌석이 있네. 아마도 처음에 왔을 때도 혼자 온 나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앉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여기는 엄청 친절했다. 다른 곳도 친절했지만 여긴 더욱 친절했다. 친절한데 음식까지 맛있었다. 약간 족발 같은데 더 부드러웠다. 족발과 비슷하지만 좀 다른 장르의 음식 같다. 감자튀김용으로 머스터드 소스와 고기용 코가 찡한 진짜 겨자소스가 같이 나왔다. 주문할 때 500g이라고 나와있어서 혼자 먹기 괜찮냐고 물었더니 충분할 거라고 했다. 이들은 많이 먹잖아라고 생각했는데 뼈무게까지 같이 나왔나 보더라. 혼자 다 먹었

미술관도 가볼까 했지만 추워서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작별인사 빼고 말 한마디 없던 사내가 나간 자리에는 또 말이 없는(착각이었다) 사내가 들어왔다. 이 사내 역시 뭔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으로 인사를 나눴다. 잠시 후 아랫자리 어르신과 둘이 얘기를 하는데 스파시바가 들렸다. 우크라이나 사람인가(착각이었다) 했다. 한 시간 정도 쉬고 해가 진 후 다시 간 크리스마스 마켓은 조명이 들어와 확실히 더 이뻤지만 크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이제 바르샤바에서의 마지막 일정 연주회로 간다. 지도 안 보고 표지판을 따라갔더니 내가 예약한 곳이 아니다. 잘 못 가면 퀄리티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

Time for Chopin

예약한 곳에 입장하는데 이름을 얘기하니 기억한다고 한다. 잠시 후 그 이유를 알았다. 아시아인이 나 밖에 없더라. 조금 더 주고 프리미엄으로 예약했더니 제일 앞자리 가운데 자리다. 소규모 공연이라 연주자와 불과 2미터 이내거리. 숨 쉬는 소리도 들릴 듯했다. 사실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너무 좋았다. 바르샤바 일정 중 제일 좋았다. 이 도시에 다시 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오게 된다면 또 예약을 할 것 같았다.

숙소에 돌아가보니 아까 그 말 없던 사내가 한국인이냐고 물어봤다. 어떻게 한국인인지 구별하냐니 한국인과 수업을 같이 받았어서 구별할 수 있단다. 우크라이나 사람인 줄 알았던 그 사내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이었다. 우즈벡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운단다. 와 그럼 이 사내는 우즈베크어, 러시아어, 영어, 이제 폴란드어까지. 그 어르신은 우크라이나분이 맞았다. 자세히는 안 물어봤지만 난민이 아닐까 했다. 낮에도 나가지 않고 카페테리아에만 있는 것 같고 이 호스텔이 우크라이나 난민 할인이 적용되는 거 같았어서

우즈베키스탄사내와 영어로 얘기하다가 귀를 의심했다. '주몽'이란 단어가 들렸다. 주몽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는 거다. 주몽에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했던 얘기와 사진을 보여주며 얘기를 이어갔다. 얘기하다 보니 한국 드라마를 나보다 더 많이 본 것 같더라.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 같아 챙겨 온 라면수프와 비빔장, 달고나 아몬드를 몇 개 나눠주고 sns를 교환했다. 내 영어가 충분하지 않아 약간 부담스럽지만 재밌는 경험이었다.


바르샤바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내일은 크라쿠프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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