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도망쳐도 되는 거야.
열대야로 푹푹찌는 뜨거운 밤에도 나는 걸었다. 걷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서. 길을 걷는 사람마다 붙잡고 묻고 싶었다. 이렇게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냐고. 시간이 지나면 진짜 괜찮아지냐고.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를 낳는다. 그것들은 한데뭉쳐 부풀어오르고, 곪고, 폭죽처럼 머릿속을 터트려놓는다. 도무지 '이 원인모를 스트레스 - 알지만 해결할 수 없는'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난다. 이것은 내 머리를 좀먹고, 폐를 좀먹고, 위를 좀먹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쎄-쎄 소리가 나고, 먹은 것은 곧바로 화장실 행이다. 게어내는 것이 습관이 되자, 이제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
나의 예민함에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씩 찔려 나가떨어진다. 끝까지 나를 품고 있던 몇 안되는 소중한 사람들의 심장에, 돌이킬 수 없는, 비수를 꽂았다. 소리없이 흐느끼다 얕은 잠을 자다, 또 다시 울다, 인생이 영원히 사라져버리길 기도했다.
심리치료사를 찾아가 울어도 보고, 이 괴로움이 끝나길 바라며 사주도 보고, 우울증 약도 입에 털어넣어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대로이고, 나는 그곳에 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톱니가 될 수 없고,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나는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회색인간이 되어버리겠지.
2010년, 7월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갈 수 없는 나에게
왜 나는 그때, 나에게 도망가도 괜찮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때,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나는 그때,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을까.....
나를 괴롭히는 그 곳에서, 그 사람에게서 도망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거울에 비친 하얗게 뜬 얼굴의 나를 바라보며 나는 말했어야 했다.
괜찮아.
그 정도로 괴로우면, 도망쳐도 되는거야.
괜찮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
괜찮아.
네 마음이 먼저야.
나는 아주 뒤늦게서야, 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건넸고.
5년의 시간을 선물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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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숲의 공기를 사랑하는 액션건축가입니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춤추듯 글을 쓰는 시간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