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꽝 아빠와 독서광 엄마 - 독서광 엄마 이야기 #1]
“00 도서관이요”
반납해야 하는 책이 많아 오늘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도서관은 방학도 안 하나 봐요?”
한창 학생들의 여름 방학기간이라 도서관도 방학이 있다고 생각을 하신 것 같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월요일에 휴관은 하는데 방학 같은 건 없지요. 오히려 요즘 방학이라 도서관에 아이들이랑 엄마들 엄청 많아요.” 도서관이 방학 때는 더 인기 있는 장소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니
“엄마들이 어릴 때부터 아이들 습관을 잡아주나 보네요. 좋네요. 나는 책 보면 잠부터 오는데, 먹고살기 바쁜데 책 들여다볼 여유가 없지요. 책 본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공부한다고 바로 써먹는 것도 아니고요”
택시에서 내려 도서관 계단을 올라가는 길.
두 팔 가득 내 품에 안겨 있는 책들을 보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독서에 흠뻑 빠져서 살게 되었을까?
어떻게 꾸준히 독서를 하면서 살게 되었을까?
그날 택시 기사님과의 짧은 대화가 새삼 나의 독서습관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름의 결론을 정리해보면 결국, 이 3가지 경험 덕분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어린이 위인전이라는 하얀색 책들이 빼곡히 책장에 꽂혀 있었다.
‘이 책들은 뭐지?’
이순신, 신사임당, 세종대왕…….
호기심에 한 권씩, 한 권씩 빼어본 책이 정말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글자, 그림, 책의 구성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 엄마가 사주신 하얀색 위인전집을 통해 나의 독서 사랑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정말 닳고 닳을 정도로 반복해서 봤었다.
위인전을 무한 반복하는 내가 신기하셨는지 엄마는 세계 창작동화라는 전집을 또 사주셨다. 작은 글씨로만 되어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이 보기에는 꽤 두꺼운 두께의 책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두 번째 전집은 몇 번이나 읽어보려 해도 재미가 없어 안 읽게 되었다. 그 어린 시절에도 ‘참 재미없는 책이네’하며 다시 책을 보지 않게 되었던 상황이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소영아~ 왜 이번 책은 아예 읽지도 않아?
“재미없어요. 엄마. 작은 글씨만 가득하고 그림도 없고 내용도 너무 많아요. 몇 번 궁금한 제목부터 꺼내봤는데 재미없어서 읽다가 말았어요.”
돌이켜보면 이제 어린이 그림책 재미있게 읽은 아이한테 바로 중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을 사주신 것과 비슷했으니 흥미가 생기기 힘들었던 것이다. 한 번은 독서의 재미에 푹 빠져서 읽었던 것과 한 번은 있던 흥미까지 사라지게 했던 그 상반된 독서의 기억은 훗날 우리 가족의 독서 길잡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세계 창작 전집의 실패 이후 엄마는 다시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 잘 읽어 나갈 수 있는 책들을 꾸준히 사주 셨다. 그리고 그때 만들어진 ‘책은 재미있다’라는 경험이 책은 재미있는 것, 독서는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책이 재미있다는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독서가 습관으로 형성되기 쉽다. 그래서 독서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일수록 책의 선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책도 좋지만 내가 재미있어하고 유익하게 느낄 수 있는 주제의 책을 선정하는 방법을 더 추천한다.
독서 꽝 아빠였던 남편도 독서의 세계로 첫발을 디딜 때 두 번째 책 선택을 잘못해 자칫하면 지금처럼 진짜 독서의 세계로 들어오지 못할 뻔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독서 꽝 아빠 이야기에서 더 자세히 하려고 한다.
‘딩동’
“택배입니다~!”
드디어 왔다. 한 달에 한 번 온라인 서점을 통해 읽고 싶은 책을 한꺼번에 주문한다. 주로 책의 비율은 중고 반, 새것 반이다. 중고 책도 새 책처럼 상태가 좋은 것들이 많다. 가격이 저렴한 중고 책과 중고가 없는 신간일 경우는 새 책으로 산다.
이렇게 택배가 오면 ‘먼저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은 책’으로 구분된 책장에 하나둘씩 정리를 한다. 예전에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스크랩해두거나 메모를 해두었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읽어야 할 책인데도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읽고 싶은 책들은 미리 사두는 습관이 있습니다.’는
혜민 스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뒤 도서 구매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읽고 싶은 책을 미리 사 정리해두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독서량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꼭 읽어야 하는 책 중에서 놓치게 되는 책도 줄어들었다. 그만큼 환경의 노출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사람에게 환경의 영향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가 독서습관을 가지길 바라는 부모가 집에 책장을 들이고 책을 꾸준히 사주는 것, 책을 접할 수 있는 도서관, 서점으로 자주 가는 이유. 바로 환경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독서의 관심을 유발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환경 관리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어있다.’라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유명한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생각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행동의 변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과 행동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요소가 주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으로 꼽아놓은 책장 속 책들이 나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조금 더 앞당겼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다.
요즘은 궁금한 것이나 필요한 정보는 스마트폰의 검색 기능으로 간편하게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서 찾고 싶은 키워드를 검색하면 검색과 관련된 웬만한 정보는 거의 알 수 있다.
그러나 정보에는 등급이 있는데
먼저 책상에 앉아서 온라인 검색으로 찾는 정보
도서관 혹은 서점에서 책을 통해 찾는 정보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부딪쳐서 얻는 정보
이렇게 3가지로 정보의 등급이 있다고 한다.
명로진의 ‘내 책 쓰는 글쓰기’라는 책에서는
우리가 검색하고 주변에서 알게 되는 정보의 등급 검토와
검색이라는 편리성에 점점 멀어져 가는 독서와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일하는 분야의 최신 뉴스나 동향을 파악하기엔
인터넷 검색이 유용할지도 모르겠지만 책이 가진 정보와는 성격이 다르다.
성과를 내야 하는 일, 해결해야 하는 문제, 마음의 고민, 현실적 생활 고민 등이 있다면 일이든 일상적인 것이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물어보거나 검색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한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내가 빼놓지 않고 하는 중요한 방법 한 가지를 추천하고 싶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이와 관련된 문장을 1차 검색한다.
그리고 연상되는 단어들을 키워드로 2차 검색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검색어를 입력하는 곳이 스마트폰이나 PC가 아니라
집 근처 도서관 또는 서점의 도서 검색대라는 점이다.
매번 검색어를 입력하고 엔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주르륵 화면 가득 쏟아지는 도서 리스트들을 보면
'이 문제도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이 과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긍정과 희망의 에너지가 샘솟기 시작하는 것 같다.
책을 통해 얻은 정보로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경험!
책을 통해 얻은 정보로
일의 결과가 달라지는 경험!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마음의 자세가 달라지는 경험!
도서관 검색대와 서점 검색대 두 곳을 활용해
도움을 받는 경험은 꾸준히 책을 ‘찾는’ 습관을
잡아주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첫 번째. 책이 재미있다는 경험.
두 번째. 책이 있는 환경 구축.
세 번째.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문제 해결 경험.
이 3가지가 내가 독서를 매우 사랑하게 된 중요한 계기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 자신의 삶을 한 단계 한 단계 내딛고 있는 채현이에게 책이 재미있다는 경험과 책이 있는 환경 관리를 통해 인생에서 강력한 힘이 되어 줄 ‘독서’ 습관을 선물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