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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당주 Jul 23. 2015

헤밍웨이와 쿠바 아바나

문득 뒤를 돌아보니 뭍이 보이지 않았다. 뭍이 보이지 않아서 어떻단 말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난 언제든지 아바나 쪽에서 비치는 밝은 빛을 보고 항구로 돌아갈 수 있거든. 해가 지려면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고, 어쩌면 그때까지는 고기 놈이 올라와 줄지 모르지. 만약 그때까지 올라와 주지 않는다면 달이 떠오를 때까지는 올라와 주겠지. 또 그때까지도 올라오지 않는다면 내일 아침 해가 뜰 때는 올라와 주겠지. …… 저놈 낯짝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내 상대가 어떤 놈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만이라도 보면 좋으련만.

『노인과 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노인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 준 곳은 바로 쿠바(Cuba)의 수도 아바나(Havana)였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 ~ 1961)에게도 아바나는 제2의 고향이자 창작의 모태와도 같은 곳이었지요.


쿠바를 사랑한 미국 작가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의 주인공은 쿠바의 작은 어촌 마을에 사는 산티아고라는 노인입니다. 그는 매일 바다에 나갔지만 84일 동안이나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요. 5살 때부터 그의 배를 따라 나섰던 소년 마놀라는 지금 다른 배를 타고 있지만, 물고기 낚는 법을 알려준 스승이자 야구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인 노인을 정성껏 돌보지요. 85일째 되는 날 먼 바다로 나간 노인은 평생 보지 못한 거대한 청새치를 낚시에 걸고, 이틀 밤낮에 걸쳐 사투를 벌인 끝에 고기를 낚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고기가 너무 커서 배 옆에 묶은 채 돌아오는 길에 피비린내를 맡고 몰려든 상어 떼의 습격을 받아요. 작살 등으로 상어를 물리치려 혈투를 벌이지만, 결국 상어 떼에게 물어뜯긴 고기는 앙상한 뼈만 남게 되요. 청새치의 뼈를 가지고 항구로 돌아온 노인은 집으로 가서 침대에 쓰려져 잠이 듭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새치가 바다 위에서 벌이는 사투를 마치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이 생생하게 묘사해냅니다. 그가 이와 같이 뛰어난 묘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노인과 바다』의 모든 장면이 그 자신의 낚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에요. 플로리다 주의 키웨스트(Key West)에 살며 낚시에 빠져든 헤밍웨이는 1932년 여름 새치낚시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쿠바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쿠바의 매력에 빠진 그는 2주 일정이던 낚시여행을 2개월까지 연장했고, 결국 1939년 아바나에 정착한 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곳에 머물렀어요.

1959년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의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된 후 미국과 등을 지게 된 쿠바지만, 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부자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과 소년이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 결과를 궁금해 하고, 노인이 뉴욕 양키즈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를 영웅시 하는 것은 이런 시대상의 반영인 셈지요. 헤밍웨이가 쿠바를 떠난 지 이미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해 쿠바에는 그 당시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가난으로 고통 받는 쿠바 인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로인해 헤밍웨이가 쿠바에 머물렀던 자취를 아직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는 점은 행운이랄까요.


헤밍웨이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핀카 비히아와 플로리디타

아바나 시내를 벗어난 산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San Francisco de Paula) 언덕 위에는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집필했던 핀카 비히아(Finca Vigia)라는 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쿠바를 방문할 때면 언제나 올드 타운에 있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Ambos Mundos Hotel)에 묵던 그였기에, 처음에는 시내와 항구에서 떨어진 이 집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의 세 번째 아내 마사의 세심한 손길로 손질된 핀카 비히아는 ‘망루 농장’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아바나 시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집으로 탈바꿈됐습니다. 

비록 집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시원하게 뚫린 창문을 통해 헤밍웨이가 수집한 9천여 권의 책, 세계 각지에서 사냥한 동물들의 박제, 집필 시 사용한 책상과 도구 등을 맘껏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아바나 시내를 향해 열린 헤밍웨이의 서재는 작가들에게는 로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아요. 책으로 둘러싸인 방 안의 널찍한 책상 앞에 앉아, 등 뒤로 불어오는 서늘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고요함 속에 글을 써내려가는 헤밍웨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헤밍웨이는 <거대한 푸른 강 The Great Blue River>에서 쿠바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쿠바에 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글을 써 보았던 세상 다른 어떤 곳만큼이나 그곳의 서늘한 이른 아침이 글쓰기에 좋기 때문이라고 말이죠."라고요.

하지만 글을 쓰는 건 태양이 떠오르기 전까지였습니다. 쿠바의 기후는 일 년 내내 덥고 습해서 한낮의 날씨는 결코 글쓰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헤밍웨이는 이른 아침에 글쓰기를 마치고 나면 낮에는 남국의 태양이 이글대는 카리브 해를 향해 그의 낚싯배인 필라(Pilar) 호를 몰고 나갔습니다. 파란 바다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새치를 잡느라 한바탕 씨름하다 보면 글쓰기와 더위로 인해 쌓였던 스트레스가 깨끗이 날아가 버렸지요.

그렇게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낚시를 즐기느라 땀을 흘리고 나서는 친구들과 함께 목을 축이러 올드 타운에 자리한 술집 플로리디타(Floridita)를 찾았습니다. 플로리디타의 단골손님이었던 헤밍웨이는 카운터 왼편 끝자리에 앉아 더블 다이퀴리(Double Daiquiri)를 자주 마셨다는군요. 지금은 그 자리에 헤밍웨이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벽에는 그와 관련된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아바나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들리는 명소가 되어버린 이 술집에 이제 더 이상 헤밍웨이는 술을 마시러 오지 않지만, 그의 별명을 본떠서 ‘파파 도블레(Papa Doble)’라고 불리는 더블 다이퀴리의 맛은 옛날 그대로입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곳은 아바나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코히마르(Cojimar)라는 작은 어촌입니다. 어느 늙은 어부가 거대한 새치와 이틀 밤낮에 걸쳐 벌인 사투에 대해서 들은 헤밍웨이는 1939년 2월 그의 편집자인 맥스웰 퍼킨스(Maxwell Perkins)에게 이렇게 전했어요.

작은 배에 탄 채 나흘 밤낮을 홀로 황새치와 싸운 늙은 어부가 잡은 고기를 배 위로 끌어올릴 수가 없어서 뱃전에 묶어두자 결국 상어들이 그것을 먹어버린 이야기. 이건 쿠바 해안이 전해 준 멋진 이야기라네. 나는 모든 사실을 정확히 알기 위해 카를로스(헤밍웨이의 쿠바 인 항해사)와 함께 그의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보려고 해. 다른 배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작은 배를 타고 긴 시간 싸우면서 그가 했던 모든 일과 그가 한 모든 생각을 알기 위해 말일세. 내가 제대로 해낸다면 이건 훌륭한 이야기 감이야. 책 한 권이 될 이야기 말이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1952년 9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노인과 바다』가 미국 잡지 <라이프(Life)>에 연재되었습니다. 이틀 만에 무려 530만 부가 팔려나가면서 10년 넘게 성공작을 발표하지 못하며 독자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던 헤밍웨이에게 다시 한 번 대중적인 인기를 가져다주었어요. 단행본으로도 초판 1쇄를 5만 부나 찍을 정도로 관심을 끈 이 작품은 헤밍웨이가 1953년에 퓰리처상을,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습니다.

Charles Scribner's Sons, 1952

그런데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노인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바다를 동경합니다. 그리고 그 바다가 품고 있는 생명체인 물고기에게 형제와 같은 유대감을 느끼지요.

노인은 몸뚱이가 뜯겨 성하지 않게 되어 버린 고기를 이제 더 이상 바라보고 싶지가 않았다. 고기가 습격을 받았을 때 마치 자신이 습격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 고기를 공격한 상어를 죽였어,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도 없고, 지금 이 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대양의 푸른 파도를 헤치며 왕자처럼 당당히 살아온 새치지만, 이제는 꼼짝없이 상어에게 온몸을 물어뜯기는 처지입니다. 노인의 눈에는 상어에게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새치의 모습이 마치 영악한 세상 사람들에게 밀려나 초라해져만 가는 늙은 어부 자신처럼 보였겠지요. 어쩌면 산티아고 노인이 헤밍웨이 자신은 아니었을까요?

헤밍웨이는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의 출판으로 성공을 거둔 후 『노인과 바다』가 연재된 1952년까지 거듭된 실패로 인해 상어와 같이 달려드는 비평가들의 혹평에 물어뜯기는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산티아고 노인처럼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집필에 매달린 끝에 『노인과 바다』에서 보여준 뛰어난 서사와 간결한 문체로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세계 문학계의 큰 별이 되었지요.

노벨 문학상 수상 후 인터뷰에서 “이 상을 받은 최초의 입양 쿠바 인이라서 매우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쿠바를 사랑한 헤밍웨이였지만, 사회주의의 물결이 쿠바를 뒤덮기 시작한 1960년에 제2의 고향인 아바나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헤밍웨이는 우울증으로 고통 받다가 1961년 7월 2일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요. 하지만 그가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읽고 아바나를 여행함으로써, 우리는 헤밍웨이를 ‘바다를 사랑한 위대한 작가’로 영원히 기억할 테니까요.


인용 : 『노인과 바다』, 민음사, 2012 / 『쿠바의 헤밍웨이』, 미디어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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