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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당주 Jun 29. 2015

백야(白夜)의 신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이 찾아온 상테페트르부르크를 찾았습니다. 낮동안 발품을 판 탓에 피곤한데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수가 없어요. 밤이 늦었는데도 창밖이 훤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백야(白夜)'라는 현상입니다. 태양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떨어진 지 오래지만 서쪽 하늘은 여전히 하얗게 빛나지요. 밤이 찾아왔건만 어둠은 발붙일 데가 없달까요. 그래서 푸시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지요.

금빛 하늘이 어두워지지 않고
반시간 겨우 밤을 허락하더니
저녁노을이 아침노을로
어느새 서둘러 바뀐다.

백야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유람선을 타고 네바 강으로 나섭니다. 워낙 어둠이 늦게 찾아오다보니 대부분 밤 12시에 출발해요. 이 시각에 맞춰 강변의 건물들에도 불빛이 들어오지요. 강 위로 칠흑 같은 물결이 출렁이는데도 북방의 하늘에는 어둠이 찾아올 기미가 없습니다. 네바 강변을 따라 늘어선 석조 건물들이 조명을 받아 마치 황금으로 엮은 띠처럼 빛나지요. 그야말로 자연과 인간이 함께 빚어낸 최고의 예술작품이랄까요?

배에서 내려 강변을 따라 궁전 광장으로 향합니다.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에르미타슈 박물관이 있는 곳이지요. 조명을 받은 에르미타슈가 은은한 에메랄드 빛으로 빛납니다. 수많은 예술품을 품은 에르미타슈가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함처럼 보이더군요. 낮에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광장이 새벽이라 조용합니다. 한참을 광장 바닥에 주저 앉아 백야가 드리운 적막을 음미했지요.

이제 넵스키 대로를 따라 걷습니다. 새벽인데도 거리는 백야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해요. 서늘한 밤공기가 무색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넘쳐나지요. 그래서 고골은 상테페테르부르크를 두고 '현실 속에서 잠들고, 꿈속에서 깨어나 거니는' 도시라고 말했답니다. 걷다 보니 운하 저 멀리 피의 사원의 황금색 돔이 반짝입니다. 러시아의 대지에 켜 놓은 촛불이 밤새 하늘을 밝히다 아침을 맞이하네요. 새벽 3시인데 벌써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군요. 그렇다고 잠자리에 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은 낮과 밤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환상 속의 도시니까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어느 멋진 일주일 : 러시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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