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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당주 Oct 29. 2015

악마의 속삭임

당신은 악마가 있다고 믿는가? 불경에는 악마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예를 들어 '상응부경전' 4권 중 '악마상응'이라 불리는 것은 악마 이야기를 다룬 스물 다섯 가지 경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첫째 경인 고업(苦業)'이라는 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그것은 붓다가 정각을 성취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아직도 네란자라 강 기슭의 어떤 보리수 밑에서 명상에 잠겨 있던 때의 일이다. 그때 붓다는 마음 속으로 먼저 자기가 고행을 포기했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마라(악마)는 붓다의 심중을 눈치채고 게를 가지고 도전해 왔다.



"고행을 떠나지 않아야만이 사람의 마음은 청정해짐을. 그대는 이것을 버린 주제에 청정한 양 자처함은 우습구나."

붓다는 그것이 악마의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도 또한 게를 가지고 대답했다.

"불사 위해 고행을 닦은 나머지 전혀 이익 없음을 깨달았노라. 육지에 놓인 삿대와 같아 오직 무익한 줄을 마땅히 알라."

그러자 악마는 "세존은 나를 알고 있다. 내 정체를 간파하고 있다."고 외치면서 허둥지둥 그림자를 감추었다.


대체 경전 편집자들은 이런 데에 왜 이런 이야기를 적어 넣었던 것일까? 생각컨데 고행의 포기는 붓다로서도 매우 곤란하고 중대한 행위였음에 틀림없다. 정각 직후에 그가 아직도 그것에 대해 얼마쯤 불안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런 내심의 불안이 악마 이야기의 형식으로 여기에 표현되었다고 추측하는 것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일면을 문학적으로 나타낸 것이 악마 이야기인 것이며, 악마는 이런 불안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악마 이야기를 통해서 보면 붓다도 때로는 식욕의 유혹을 받기도 했고, 어떤 때는 수면의 유혹과도 싸워야 했던 모양이다(출처 : 아함경 by 마쓰타니 후미오).


불경 속 이야기가  고루해 보인다면, 영화를 한 번 살펴보자.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Devel's Advocate / 1997)에서 능력있는 변호사 케빈 로맥스(키아누 리브스)를 악마 존 밀튼(알 파치노)이 돈과 성공으로 유혹한다. 결국 악마의 달콤한 제안에 넘어가 아내마저 잃은 케빈은 마지막 순간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영화의 마지막이다. 마지막 순간 영화는 케빈이 악마의 유혹에 빠졌던 가장 처음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악마가 이번에는 명예욕을 가지고 케빈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케빈은 다시 악마의 시험에 들게 된다. 아마 악마는 명예욕을 가지고도 실패하면 또 다른 무기를 들고 케빈을 유혹할 것이며, 그런 유혹은 케빈이 악마에게 굴복할 때까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는 실재하는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라이벌이자 천사의 싸움 상대인 악마의 존재를 말한다면 난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불안과 같은 심리상태를 악마라고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렇다고 말하겠다. 그럼 악마의 모습은 어떨까? 영화에서 보듯이 추악하고 무섭고 악취가 풍기고 누가 봐도 한 눈에 악마라고 딱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일까? 아니다. 악마는 너무나 아름답고 달콤하며 유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악마는 우리의 약점을 가장 적절하게 파고들 수 있는 모습으로 천변만화한다. 어떻게 우리 마음 속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 들 수 있냐고? 악마가 바로 우리 마음의 약하고, 어둡고, 두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마는 이기적이고, 나태하며, 탐욕스럽다. 하지만 너무나 달콤하다. 악마는 일신의 안락과 영달과 화려함을 취하라고 속삭인다. 즉, 옳은 길(正道)이 아니라 사욕(私欲)의 길을 가라고 부추긴다. 


영화 '일곱가지 유혹'에서 엘리자베스 헐리가 연기한 악마가 도리어 진짜랑 비슷하지 않을까?

불경을 보면 악마에게는 여덟 군대가 있다고 한다. 바로 욕망, 혐오, 기갈, 갈애, 나태, 공포, 의혹, 위선이다. 인간 내면에 잠재된 온갖 어두운 부분이 바로 악마란 존재인 셈이다. 그리고 악마의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수십년 동안 몸에 배어 온 잘못된 습관이다. 잘못된 습관을 악마라고 알아보기는 너무 어렵다. 수십년 동안 아무렇지 않게 해온 행동이 악마의 한 모습이라니, 그걸 인정하기가 어찌 쉽겠는가? 하지만 악마는 올바른 길로 향하는 우리의 눈을 가리고, 계속 잘못된 습관을 따르도록 유혹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위에서 언급한 불경에 나와 있다. 


악마는 "세존은 나를 알고 있다. 내 정체를 간파하고 있다."고 외치면서 허둥지둥 그림자를 감추었다고 한다.


바로 이거다. 내 마음 속에 스물스물 기어 올라와서 귓가에 속삭이는 녀석이 바로 악마임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악마를 물리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악마는 허둥지둥 그림자를 감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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