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기전에 누군가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알폰소 쿠아소의 영화 그래비티에서 조지클루니는 죽기 직전 산드라 블럭에게 마지막으로 질문을 한다. '사실 너 내 파란눈에 반했었지?' 조지 클루니는 산드라 블럭을 살리기 위해 자신과 연결과 안전끈을 스스로 끊고 우주 밖으로 멀어지면서 산드라 블럭과 잠깐의 통신만의 허용된 상황이었다. 아마도 조지 클루니 역시 산드라 블럭에게 이성적 관심이 있었을 것이고 죽기 전 그 짧은 순간, 여자에게 자기를 좋아했었는지를 묻는다. 그 중요하고 마지막 한번뿐인 순간에 말이다
그래비티보다 훨씬 이전 영화이기 하지만 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레터는 조지 클루니가 죽기 직전에 물었던 질문의 여자 버전이다. 조지 클루니가 그 질문을 애써 쿨한척, 그리고 죽음을 앞둔 핑계 삼아 불쑥 한다면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그 질문을 사실상 가슴에 묻어만 두는데 영화는 그걸 질문의 과정과 결과를 애틋하고 섬세하게 영화 전체에 걸쳐서 보여준다.
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성(혹은 동성)을 만나게 되고 어쩌다 로맨틱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자만추의 결과다. 아니면 우리는 로맨틱한 기대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이성을(혹은 동성을) 만난다. 이건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 예를 들어 소개팅..?)라고 한다. 인만추의 경우 특히 성인이라면 만남 이후 바로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바로 알수 있고 이런 저런 경로로 상대가 나를 어떻게 느꼈는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자의 경우 소개팅직후 여성에게 보낸 애프터 신청은 호감의 표시지만 상대가 몇시간 동안 카톡 메시지를 '읽씹'으로 했다면 상대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잠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성인이라면 직장이나 모임에서 자엽스럽게 만난 이성끼리라 누군가의 표현이나 물음으로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러브레터는 과거 한 순간 어쩌면 쉽게도 알수 있었던 상대가 나에게 가지는 연애감정 유무 여부를 길고 복잡하고 아슬아슬한 경로를 통해 알아가는 영화다. 결과적으로 여주인공 후지이 이즈키는 중학교 시절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이성적 호감을 가졌지만 상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묘한 썸에서, 결국 상대가 나에게 가졌던 마음을 1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나는 그때 너를 좋아 했었어, 너도 혹시 나를 좋아했었니?
이 짧은 물음과 그 뒤의 답변의 과정을 길고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영화는 몇가지 조건을 만들었거나 아니면 시대적인 배경으로 갖추게 되었다. 첫 번쨰, 주인공들의 나이가 어려야 한다. 결혼적령기의 성인이라면 상대를 우연히 만났던 인위적인 만남을 통해 만났건 상대에 대한 나의 이성적 감정이 뭔지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기, 혹은 이전의 나이라면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성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뭔지, 혹은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기 쉽다(이와이 슌지의 첫번째 영화 '쏘아올린 불꽃, 위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에 막 이성에 눈을 뜬 초등학생들의 이런 마음상태가 잘 표현되어 있다) 두번째, 상대의 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통신장비, 예를 들어 스마트폰 같은 건 없어야 한다. 영화 러브레터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두 시기(이츠키의 중학생 시기, 와타나베의 성인시기)모두 스마트폰은 커녕 휴대폰도 없다. 상대의 얼굴을 직접보거나, 전화를 쓰거나, 대부분 종이 편지로 상대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러브레터는 자기마음도 알듯말듯한 소녀와 소년의,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이 없어서 상대와 쉽게 연결될 수 없었던 시대의 애틋한 로맨스다.
여주인공 이츠키는 자신과 편지를 주고 받는 어쩌면 자신의 도플개어와 같은 와타나베를 통해 자신의 추억속에 있던 남자 주인공 이츠키를 추억하고 자신이 이츠키를 좋아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 이츠키는 몇년전 죽어버려서 이제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에게 그떄 자기를 좋아했었는지를 물을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여주인공 이츠키는 그때의 남자 주인공 이츠키가 자신을 좋아했었을거란 단서를 뒤늦게 발견하고 쑥쓰럽게 웃는다. 가족이나 연인, 친한 지인이 갑작스런 죽음을 당할 때 우리는 먼저 충격과 슬픔의 과정을 겪고 다음 단계로 죽음의 명확한 원인과 이유를 알려고 한다. 죽음의 원인을 안다고 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건 아니지만 우리는 때로는 집요하게 그 죽음의 원인을 파헤친다. 마찬가지로 한때 짝사랑하던 사람도 자기를 혹시 좋아했었는지 우리 대부분은 궁금할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 짝사랑 상대가 나에게 남긴 달콤한 단서는 얼마나 달달할까? 여주인공 이츠키의 쑥스러운 웃음은 평생의 만족으로 남을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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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5번도 넘게 본 영화인데 나이가 들어서 볼수록 감동이 커지는 영화다. 물리적 시간과 생물학적 생의 주기가 지날수록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겠지.
몇 번 볼떄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층적인 영화의 구조와 알듯말듯한 은유, 세련된 편집, 아귀가 맞는 기승전결 등 여러모로 완성도가 높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