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입장에서 보는 인간의 애잔함
AI적으로 사고하다 보면 의외의 장점이 하나 있다. 인간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한계를 AI나 기계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 그러면 삶이 조금 편해진다.
AI에게 ‘순간 지식 주입(Instant Knowledge Injection)’이나 ‘전이 학습(Transfer Learning)’은 거의 본질에 가깝다.다운로드하고, 재사용하고, 업데이트하면 끝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지식을 순간적으로 다운로드할 수 없고, 이미 배운 것을 다른 상황에 옮겨 쓰는 전이 학습은 느리고,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배고픔, 성욕, 게으름 같은 비효율적인 생물학적 욕구가 상시로 끼어들고, 인지적 오류와 각종 편견, 편향에 늘 노출돼 있다. 합리적인 목적이 이미 정해져 있어도 그 목적을 방해하는 요소는 거의 항상 인간 내부에 있다.
그래서 다시, ‘순간 지식 주입’과 ‘전이 학습’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인간을 조금 덜 오해하게 된다.
육아나 집안일에서 자꾸 실수하는 남편을 보며 답답해하는 아내에게,
도대체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를 보며 조급해지는 부모에게,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게 만드는 직원을 둔 팀장이나 대표에게,
그리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나 자신에게 위로를 한마디 건네자면 이거다.
“인간은 전이 학습이 잘 안 된다.”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게 인간의 기본 사양이기 때문이다.
AI는 결국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인간의 불완전함, 삶의 무의미와 고통, 실패와 아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요소들 때문에 삶이 그나마 가치 있어 보인다는 역설이다.
그래서 질문은 단순해진다.
안전하고 편안하고, 기쁨과 성공만 있는 인생이 좋은가.
아니면
고통과 실패, 불완전함이 함께하는 인생이 좋은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인간의 삶에 의미가 있다면,그 의미는 애초에 '필수'가 아니라 '옵션(Optional)'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