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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는 왜 '빨리 보기' 버튼이 없을까?

경험 자체보다 경험의 기억, 기록과 공유가 중요해지고 있는 세상

by 액션핏 박인후

유튜브에는 있지만 넷플릭스에는 없는 것 중에 하나는 '빠르게 재생' 기능이다. 넷플릭스에는 1.2배, 2배 재생 같은 기능이 없다. 원한다면 웹 브라우저 차원에서 할 수 있지만 기본 기능에는 없다.


넷플릭스 같은 기업에겐 '빨리 보기'기능은 뭔가 철학적이면서 그들 자신에게는 그들 자신의 제품 자체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예상하기로는 넷플릭스는 적어도 아직은 의도적으로 해당 기능을 넣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모바일 RPG 게임으로 보면 이 질문은 자동 전투 기능을 넣을까 말까 하는 질문과 비슷하다. 또 다르게 보면 게임 자체보다 게임의 플레이 영상, 혹은 게임 중계방송이 더 유명해지는 딜레마와도 비슷하다.


어떤 창작자도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사람들이 1.5배 재생해서 보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넷플릭도 그것을 원치 않을 것 같다. 반대로 특히 드라마 컨텐츠에서는 유저(시청자)들은 이 기능을 꽤나 원하고 있는 것 같다(인터넷에서 보면 해당 기능에 대한 문의글이 꽤 많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르게 일부러 회차를 길게 만들기도 하는데 여기서 전개상 늘어지는 부분이 많이 나올 수 있고 특히 이런 부분에서 '빨리 보기' 기능이 있으면 유용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컨텐츠를 소비하는 방법 중에 특이하면서 익스트림한 경우를 봤다. 드라마의 1회를 보고 재미있겠다 싶으면 나무위키 같은 데서 나머지 회차의 줄거리를 모두 검색해서 보는 것이다.


재미 삼아 콘텐츠 소비의 깊이에 대해서 몇 가지 단계를 나누어 보았다.


1. 정속 도로 정주행: 1배속으로 모든 컨텐츠를 본다.

2. 빨리 재생, 10초 건너뛰기 기능을 이용해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뛰고 재미있는 부분은 1배속으로 집중해서 본다.

3. 유튜브로 드라마 요약본 보기: 이미 드라마를 본(아마도) 사람의 요약 리뷰 영상을 본다.

4. 나무위키 등으로 드라마의 회차 줄거리를 본다.

5. 줄거리 3줄 요약을 본다(그런 것이 있다면)


위에 얘기가 컨텐츠를 보는 시간, 혹은 속도에 대한 부분이라면 컨텐츠를 보는 질의 문제를 얘기해 보다. 우리 모두는 컴퓨터나 TV로 다른 컨텐츠를 틀어놓고 스마트폰 등으로 딴짓을 한 경험이 모두 있을 것이다. 미디어를 소비하는 우리의 행동 양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던 것들이 전혀 다르게 변할 수 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의 10대, 20대 들에게 영화관에 가서 2시간동안 딴짓을 못하게 하고 영화만 보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 2시간 동안 독서를 시키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조금 더 나가면 압축적 체험은 데카르트 라던가 아니면 영화 매트릭스가 던지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내가 경험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가 그것을 했다고 믿게 만드는 기억, 혹은 기록 자체가 중요한가? 큰 틀에서 우리는 후자 쪽이 가까운 세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뭔가 멋지고 근사한 경험을 할 때 다른 무엇보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그것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고 SNS에 남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영상 콘텐츠들을 빨리 보기로 보고 싶은 욕구도 위에 했던 것과 어쩌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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