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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Jan 31. 2023

환대의 아침





아침에 눈이 떠지면 눈곱만 떼고 소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앉는다.

그곳에 놓인 지름 40센티미터의 초록색 철제 테이블 앞에 앉아 일기를 쓴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잡이로 적으라는 “아티스트 웨이”를 알고부터 흉내 내고 있는 일과다.

일기에는 수많은 생각과 다짐 혹은 미움과 고마움이 들어있는데,

그러니까 참혹할 만큼 솔직하고 부끄러운 감상들이 들어있는데,

가족 중 아무도 내 노트를 들여다볼 생각을 안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장은 무방비 생태로 펼쳐져 있는 때가 많다.


최근에는 몇 시에 자든 일곱 시에 눈이 떠졌다.

알람도 안 맞추고 잔 지 오래다.

아침의 일상이 사라지니 하루 종일 마음이 조급하다.

일기를 쓰고 있는 중에 아이들이 잠에서 깰 때가 많다. 그러면 아이들을 침대로 다시 내몬다.

일곱 시 삼십 분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커피 한잔과 따뜻한 토스트 한쪽 내주고 마주 앉아 대화 나누는 일상이 가끔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대화가 고스란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침의 고요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소중한 것을 자꾸 놓치는 것 같다.

“환대” 말이다.

가족들의 밤의 안녕을 묻고, 새날에도 함께함을 감사하는 마음의 전달.

다가오는 아이를 무릎에 품어주고, 출근하는 남편의 든든한 속 같은 것들.

눈 뜨자마자 엄마 품에서 거부당한 아이들의 하루가 기쁠 리 없다.

남편도 아침식사와 함께 눈치를 한 사발 마시고 이른 출근을 재촉해야겠지.



환대에도 총량이 있을까?


아이들을 등교, 등원시키는 길에 종종 아파트 현관을 청소해 주시는 어른을 만난다.

그 어른은 항상 우리 아이들을 보고 미소 지으신다.

날 궂은날에는 “장갑은 어딨니?” 하고 걱정해주시고

볕 좋은 날에는 “좋은 하루 되렴”하고 응원도 해주신다.

그 진심 어린 인사를 받은 날, 우리는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웃고 있다.

뒤처지는 아이를 보고 웃고, 앞서 가는 아이 뒤통수를 보며 깔깔 웃는다.

아이들은 빨리 뛰는 나를 보고도 웃고, 뒤쳐지는 나를 응원하면서도 웃는다.

맞은편 어른들을 보고 웃고, 눈 마주친 모든 이들을 향해 웃는다.


환대의 아침이다.




오늘은 다섯 시 알람을 맞췄다.

넉넉한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더불어 얻는다. 풍요로운 아침의 인사를.


다섯 시 십분, 막내가 문을 빼꼼 열고 나온다.

“무서웠어 깼어.”

“엄마 무릎 옆에 누워.”

아이가 눈을 가마룩하게 다시 감는다.

“엄마 좋아”

“엄마가 왜 좋아?”

반쯤 잠든 아이가 고민하는 게 느껴진다.

“사랑해서.”

“합격! 얼른 자자.”

방에서 솜이불 하나 꺼내와 함께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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