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리에서 나는 이불 냄새
나는 내가 올빼미족인 줄로만 알았다. 젊은 시절엔 잠을 몰아서 잤다. 야근을 한 뒤에도 회식 자리에 개근했다. 진득한 기름 냄새가 찌든 치킨집에서 밤을 새워 벌어지던 토론과 싸움들, 꼬인 혀로 했던 말을 반복 하던 동료들의 이야기에 귀를 세웠다. 시험 전에는 벼락치기를 했다. 자판기 커피 몇 잔이면 밤을 샐 수 있었고, 시험 기간이 길어지면 박카스를 추가하면 됐다. 혼자 있는 새벽이 좋았다. 우정, 연애, 자아 실현 같은 확신 없는 것들을 일기에 썼다. 아침까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애인과 전화로 사랑을 말하고,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며,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 우겼다. 부모가 되니 맘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배운다. 수면 패턴도 마음에 안든다. 아이들 재우느라 이른 밤에 잠들어 남편의 알람으로 깬 아침이면 내가 얼마나 하찮던지. 나의 새벽을 돌려내라고, 백지처럼 초기화 된 삶을 들고 엉엉 울며 보낸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2017년, 세 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집은 풍비박산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양념이 덕지덕지 묻은 그릇과 반쯤 먹은 젖병을 싱크대가 토해내고 있었고, 거실엔 밟는 즉시 기분을 망칠 수 있는 레고 블럭들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밤은 밤대로 전쟁이었다. 서로 재워달라 보채는 아이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겨우 둘 밖에 없는 내 팔만 애꿎게 원망했다. 잠들기를 어려워 하는 첫째와 갓 태어난 막내를 달래려 하는 수 없이 먼저 양 팔에 안았다. 그러면 순둥한 둘째는 내 가랑이 사이에 와서 누웠다. 자주 씻지도 못하는 몸에서 나는 냄새가 수치스러웠지만 그저 울지 않아주는 것에 감사했다. 양 옆의 아이들이 잠에 들면, 딸을 안아들고 오른 팔에 눕혀 재웠다. 둥글넙적한 얼굴에 자리 잡은, 아빠 닮아 오똑하고 예쁜 코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쉼 없이 재잘거린다. 정수리에 코를 박고 따뜻함을 마신다. 그러면 항상 내가 먼저 골아떨어졌다. 아이에게 미안할 새도 없이.
언젠가, 아이들의 수면 패턴에 내 삶을 맞추기로 결심했다. 어른만의 새벽 시간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도 10년 차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젊은 나를 보내주고 나이 든 나를 받아들인다. 10시부터 12시는 성장호르몬이 나오는 시간(성인들도 성장호르몬이 나온다. 이것은 노화를 늦추고 몸의 염증을 줄여준다)이요, 새벽은 깊은 잠이 가능한 수면의 골든 타임일 뿐이다. 노동과 돌봄의 시간은 지나갔고,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다. 하루치 에너지를 탈탈 긁어 쓴 컴컴하고 느긋한 밤에는 잠이 있어 좋다. 게다가 아픈 친구들, 병을 이기지 못한 친구들이 생기면서 수면의 사치를 숙제처럼 받아들인다. 한 켠에 남아있는 젊은 마음이 저항 할 때도 있지만 부족한 체력이 막는다. 워워. 이미 그때는 흘러갔다니까.
잠드는 시간은 나의 가장 소중한 일상이다. 열세 살이 된 첫째는 (가끔 안방으로 넘어와 아빠와 엄마 사이를 탐내지만,) 주로 자기 방에서 만화책을 읽다 잠든다. 이제야 사이 좋게 엄마의 두 팔을 나눠쓸 수 있게 된 어린 두 아이들은 누가 엄마 오른쪽에서 잘지, 왼쪽에서 잘지 늘상 아웅다웅이다. 둘째는 여전히 다른 가족이 모두 잠들고 나서야 내 품에 안겨 조잘거린다. “엄마 나 지우랑 싸웠어.” 팥알 굴러가는 앙증 맞은 소리로 말한다. “그래?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놀아야지.” 내가 잔소리를 한다. “엄마, 지우는 이제 내 가족이야. 사랑한다는 걸 아니까 싸울 수 있는 거야. 다른 친구들이랑은 그렇게 못 해.” 아이의 목소리가 제법 단단하다. 누나의 소음에 선잠이 깬 막내는 제 몫의 한쪽 팔을 잡아 당긴다. “엄마, 내 베개 엄마 써.” 짐짓 양보하는 모양새지만 밤새 내 팔을 베고 자겠다는 선언이다. 아이들 정수리 냄새를 맡는다. 36.5도의 체온, 무향 비누 냄새가 가득하다. 바삭거리는 이불도 같은 온도, 같은 향기다. 아이들은 새벽을 즐기기 위해 잠자리를 몰래 빠져나오려는 젊은 나를 달랜다. 잠에 빠져든다. 오늘도 아이들보다 먼저 잠드는구나. 안녕.
[덧]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독창적인 사후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죽은 이는 천국으로 가는 중간 다리 림보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가장 행복한 기억 하나만 남깁니다. 나머지는 잊히고, 그 기억 하나 가지고 먼 곳으로 떠납니다. 그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은 영상입니다. 림보의 직원들은 죽은이의 기억을 재현하여 무대를 만들고 연기하며 촬영 편집해 상영합니다. 기억의 재현은 주관적인 것이며 상상력에 기반합니다. 가장 행복한 기억 하나라고 했으니, 대부분 미화된 장면이겠죠. 하지만 그게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천국으로 가는 양분이니까요. 충분히 달콤하길 소망합니다.
충분히 달콤한 시간을 상상해보았습니다. 먼 길을 가는 길에 물고 갈 막대사탕 같은 걸로요. 먼저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엄마가 되고 나면 몸과 정신의 상태가 엄마로 리셋된다고 들었는데, 그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돌봄이 나의 자아 실현도, 우정도, 돈벌이도 심지어 일상마저도 다 변화시켰음에도 싫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은 이미 나의 고정값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라는 존재는 더합니다. 아이들이 태어남으로 인해 저는 고작 1/4 정도 자유롭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사소한 단내들이 진동하니까요. 부모가 되기 전 어떤 나를 갖다 바친대도 지금을 쉬이 내어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기억은 타자로 인해 정체화되는 순간들이며, 타자를 실존하게 만드는 주관적 장치입니다. 개인은 타자의 기억 안에서만 현현하는 건지도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젊은 새벽은 스스로를 정의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건, 새벽의 시간이 아니라 나에 대한 탐구일 수도 있겠습니다. 삶을 헤쳐나가느라, “나는 누구인가” 종류의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이다”라는 답에 상응하는 삶을 살기는 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에 대해 쓰고, 삶에 대해 고민하는 글쓰기 수업이 저에게 참 의미있습니다. 이 수업이 저에게 빈 새벽이 되어줍니다.
[과제글]
이글은 [서이제 소설 창작교실: 기억의 재구성: 믿을 만한 이야기] 과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를 보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