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서 화가 나서 나에게 화를 내는 거야?

고마운 질문

by 은조



어떻게 해야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어머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재클린 로즈, [숭배와 혐오]




방금까지 호되게 혼난 너는 단기 기억 상실이라도 겪은 듯 싱그럽게 웃으며 나에게 물었어.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나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너의 질문은 나를 생각케 했어. 도대체 나는 ‘어디서’ 화가 난걸까. 화가 났어. 일단 집이 엉망 진창이잖아. 이게 다 내가 그런거야? 치우고 나면 그 뒷자리부터 어지럽히며 지나다니는 삼남매. 제자리에 있지를 못하는 물건들, 그리고 물건을 찾을 때는 항상 엄마를 부르지? 집의 물건들의 위치를 기억하고 정리하는 게 나의 일이니? 싱크대에 버리듯 던져진 그릇들이 다 내가 먹은 거냐고. 나도 그런 일을 하라고 태어난 사람은 아니야. 그런데 왜 집안일은 끝이라는 게 없지?


너는 나에게 물었지.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거야?” 네가 집에 친구 몇 명을 초대해도 되냐고 묻는 말에 기쁜 마음으로 그러라고 했어. 몇몇이 떠나고 우리집 삼남매까지 여섯 명의 어린이들이 남았지. 자고 간다고 해서 이불도 깔아줬잖아. 여자방 남자방으로 나눠서 사감 선생처럼 불이 꺼졌는지 몇 번이나 잔소리를 하기도 했어. 금요일 밤이니까. 성별도 나이도 다양한 너희가 2층 침대에 어울려 걸터 앉아 수다 떠는 모습이 참 예쁘더라. 하지만 잘 시간 되면 자야지. 너희 몇시에 잤니? 그래. 어휴. 2시. 내가 다른 부모들한테 면이 없다. 혹시 너희 모여 앉아서 스마트 폰한 건 아니지? 성별 나눠놨는데 도대체 새벽에는 왜 같이 있었니? 잠은 따로 잔거니? 00이는 왜 이렇게 새벽까지 소리를 지르니? 층간 소음 없어서 이사온 이 집, 벽 간 소음이 말도 못해. 새벽이면 옆집 티비 소리도 들리는 거 알아 몰라. 배려가 없니. 배려가.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거야?” 파란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방에 앉아 마음에 드는 플리를 찾아 켜고 일기를 써. 그리고 스마트 폰에 적인 일정을 다이어리에 옮겨 적으며 하루를 예상하고, 짧게나마 책을 읽지. 그러다 마음에 시동이 걸리면 짧은 글을 쓰기 시작해. 만약에 성공한다면 말이야. 늦게 일어난다면 꽝이고, 아빠의 출근 준비도 도와야 하고, 너희 중 한명이라도 일찍 일어나면 불가능해. 아침 일찍부터 사야할 것들이 있어서 스마트 폰을 만진다면 완전히 실패지. 어제는 플리를 켜고 일기를 쓰고 있는데, 막내가 방문을 열더라. “엄마, 나 재워줘.” 방에 가서 오른 팔에 삼도를 눕혔어. 삼도는 내 왼쪽으로 떼굴 굴러 가더라. 나는 오른쪽으로 기대 자는 게 편한데, 삼도는 왼편에서 자는 걸 좋아해. 우린 이런 게 잘 안 맞아. 삼도를 눕혀 놓고 폰을 잡았어. 아침을 날렸어. 삼도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의미없는 쇼핑몰을 드나들며 장바구니에 140만원 어치 물건을 넣었어. 물론 사지는 않을 거야.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거야?” 00이는 일찍 일어났나보더라. 아침에도 큰 소리로 거실을 오고 가고, 소리를 지르더라고. 막 삼도가 잠들었을 때, 00이가 안방 문을 두드리며 나를 크게 불렀어. 화장실 휴지는 어디있냬. “일도한테 물어보렴.” 일도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대. “그냥 주방에 있는 휴지 가져다가 쓰렴.” 또 다시 계단을 오르내리는 쿵쾅 소리. “밥 줘. 나 배고파.” 화를 꾹 참고 말했지. “00아. 조금 기다려 줄래? 그리고 소리를 좀 줄여줘.” 화를 꾹 참는 목소리는 화를 버럭 내는 목소리만큼 티가 나는 법이잖아. 00이가 눈치를 보더라. 배달앱을 켰어. 이른 시간이라 배달업체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어. 아침밥은 뭘 해줘야 하나? 어제 간식 먹은 설거지도 못하고 잤는데 언제 하나. 거실 카페트에는 과자부스러기와 말라비틀어진 소스 같은 것이 떨어져 있겠지. 방방마다 어지렵혀져 있는 놀잇감들은 언제 치우지. 종일이겠네. 내 하루는 그렇게 잡아 먹혔네. 그런 하루들로 만들어질 내 인생은 뭔가 헛헛한데. 삶이 좀 불공평한 거 아닌가?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거야?” 샤워를 하며 화를 눌러보았어. 따뜻한 옷을 겹쳐 입고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 상판까지 주방세재로 싹싹 닦았어. 끈적한 바닥은 밀대로 밀고, 좀 이따 마른 바닥에 남은 먼지며 찌꺼기를 청소기로 빨아들였어. 거실 창문을 열고 아이들 짐을 탁탁털어 소파 한쪽에 쌓아놓고, 소파 쿠션도 제자리에 갖다 놓고, 한쪽으로 밀려 구겨져 있는 카페트도 원상 복구 하고, 과자가루, 쓰레기, 또 쓰레기, 쓰레기… 왜 이 집의 모든 구석은 한번에 정리된 적이 없을까. 버릴 건지 보관할 건지 구분이 어려운 잡동사니들을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몰아 넣고 엄하게 말해. “일주일 이내로 안찾아가면 그대로 버릴거야.” 그러나 소용 없어. 며칠 뒤 너희 중 누군가 갑자기 “엄마 그때 내가 킨더조이에서 뽑은 연두색 말 있잖아. 그거 도대체 어딨어?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하면서 울거나 화를 버럭낸다면? 나는 어떡해야 좋을까.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거야?” 너를 불렀어. 마구 불렀어. 목소리가 커졌어. 너는 내가 화내지 않으면 도대체 말을 듣지를 않지. 부드럽고 다정하고 조그만 목소리는 못 듣지. 무릎에 눕혀 귀를 팔 때마다 분노를 숨기고 유머인 척 말하지. “이제 엄마 말 좀 들리니?”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너에게 말했어. “일도야. 현대마트 가서 아침 거리 좀 사와.” 겨울 아침 심부름에 눈이 둥그래진 너를 보며 깊은 빡침을 느꼈어. 마치 네가 이 모든 결론을 미리 만들어 놓고, 나를 함정에라도 빠뜨린 것처럼. 외출복을 입고 온 너는 양말을 신고 있지 않더라. “양말 신고 와.” 양말을 신으러 가는 네게 나는 말했어. “양말 신기 전에 화장실 앞에 산처럼 쌓인 옷무덤을 세탁실에 갖다 놔.” 옷무덤을 정리하려는 네게 나는 또 말했어. “당장 이리 와.” 내복을 입었는지 확인하려고. 맙소사! 밤새 내복도 안입고 잔 거야? 감기라도 걸리면? 오! 머리도 안말리고 잤니? 양치질은 했니? 양치질을 하기 전에 머리를 빗고 세수도 해. 너는 수없이 내 앞을 왔다 갔다 했지. “오! 정말 양말은 언제 신을거야? 너에게 양말을 신으라고 열 다섯 번은 더 말한 것 같아.”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날 것 같았지. “오… 아직 양치질도….”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거야?” 넌 “서랍에 내복이 없기 때문에 입고 잘 수 없었다”고 했어. 너에겐 5벌의 내복이 있고 모두 검정색이야. 올해 갑자기 몸이 커져서 네 개를 샀어. 두 개는 유니클로 울트라 웜 히트텍 160사이즈, 나머지 두 개는 마른파이브 유아용 히트터치 키즈 블랙 85(XXL)이지. 하나는 탑텐 온에어 모달 150사이즈 작년 모델이야. 너의 서랍에 내복이 없는 이유는 두 개 중 하나일거야. 네가 세탁실에 갖다놓지 않은 거지. 맞아. 아까 그 옷 무덤. 또 다른 하나는 네 내복이 다른 아이 서랍에 들어갔기 때문이겠지. 네 아빠가 범인이야. 확실해.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옷을 입으려는데, 내 속옷 서랍에서는 네 내복 상의가 양말 서랍에서는 네 양말 세 개가 들어 있었거든. 내가 그랬을 리가 없잖아.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거야?” 나는 너희 내복을 넣을 때 틀리지 않아. 한 번 잘못 넣으면 영원히 못찾기도 하니까 늘 신경쓰거든. 이도에게는 유니클로 140사이즈 블랙이 네 개 있고, 너에게 물려받은 온에어가 두 개 있어. 삼도에게는 유니클로 한 개, 온에어 세 개, 히트터치 한 개가 있지만 모두 알록달록해서 헷갈릴 리 없지. 양말도 마찬가지야. 너는 리투에서 산 M사이즈 블랙 양말을 좋아하지. 작년까지는 알록달록한 양말을 좋아하더니, 올해부터 영 손이 안가는 것 같아 검정 양말로 모두 바꿔놓았어. 이도와 삼도 양말은 구분하기 어려워. 비슷한 브랜드에서 함께 산 양말이 헷갈리거든. 하지만 다 기억할 수 있어. 너희 아빠는 어쩜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니. 아빠가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다는 것에 화가 나. 그리고 더 화가 나는 건 내가 이 모든 것을 줄줄 꿴다는 점이지.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거야?” 말도 안되는 가정이지만, 사람의 뇌의 용량이 모두 같다면 나는 너희의 사소한 정보를 머리에 넣느라 다른 것들을 엄청나게 포기 해야 해. 내가 이 집을 챗바퀴처럼 돌고 있을 때, 네 아빠는 좋은 직장에서 존경 받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 그런데,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기회를 번번히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난 직업도 없는데 시간은 더 없어. 밤엔 너희를 재우느라 일찍 자는데, 아침도 방해받지. 종일 살림할 것들이 가득해. 그럼에도 집은 늘 난장판이야. 너희는 옷에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그냥 툭 털어버리면 끝이잖아. 거기가 카펫이듯, 마루바닥이든 상관없이 말이야. 아.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나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너는 유유히 친구와 함께 아침 식사 재료를 사러 갔지. 사실 너무 부끄러웠어. 너는 내가 너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눈치 챈거야? 발가벗겨진 솔직한 마음이 얼마나 민망하던지. 그래. 나는 너에게 화가 난 게 아냐. 나를 화 나게 하는 건 너희나, 네 친구나, 다른 아이들이나, 남편이나, 시가나, 우리 엄마나 아빠도 아니야. 모두들 억울하게 소환될 뿐이지.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거야?” 심장에서 시작된 화는 머리 근처를 거쳐 명치에 딱 걸린듯 멈춰있어. 속이 답답하고 구역질이 났어. 나는 뭐에 화가 난 걸까. 가만히 명치를 쓰다듬어 봐.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거니.”




재클린 로즈는 [숭배와 혐오]에서 “어떻게 해야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어머니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나조차 사랑하지 않는 나. 남편의 사랑, 자식의 사랑, 부모의 넓고 끝없는 사랑이 아니면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인색한 마음에 화가 난다. 높게 쌓인 설거지 거리, 발에 밟히는 과자 부스러기들, 알 수 없는 은어와 비속어가 잔뜩 들어간 사춘기 입구의 너희들의 대화 같은 것들. 흔해 빠진 일상이지만 쉬이 극복되지 않는 것들에 나의 화를 뒤집어 씌운다. 가장 만만하고 쉽고 절대 나를 미워하지 않을 것 같은 까만 눈의 너에게 뒤집어 씌운다. 네가 잘못한 일, 네가 잘못하지 않은 일은 뒤범벅이 되어 너를 뒤덮고 그대로 굳는다. 그래서 너의 질문이 너무나 고맙다. 심부름에서 돌아온 너를 꼭 안으려고 할 때, 네가 폭 안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밀어내 주어 고맙다. “엄마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나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라고 물어봐 주어서 고맙다.



애써도 잡히지 않는 내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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