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울 일곱살
첫째인 준후에게는 늘 시행착오가 많았다. 아이가 조그만 잘못을 해서 훈육을 할 때도 육아서를 뒤지며 방법을 배우고, 반성을 하고, 가끔은 자아성찰까지 마쳐야 끝이 나곤 했다. 어떨 때는 마냥 편한 제지 없는 친구 같은 부모였다가 다음날이면 사감선생의 탈을 쓴 엄청나게 무섭고 안되는 것 많은 권위적인 부모가 되었다. 지금은 나도 아이도 왔다갔다가 자유롭고 이상하지 않게 되었지만 큰 아이가 어릴 땐, 가면을 갈아쓸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런 나에게도 지켜야만하는 소신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적기교육’이었다.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교육이든 놀이든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아이의 일곱살이 가을로 접어들면서 한 방에서 같이 노는 아이들 중 일부가 한글을 떼내기 시작했다. 또 아이 한글교육을 거드는 것은 처음이라 혼자서도 잘하겠거니 하는 믿음과 달리 자꾸 교구며 책이 눈에 들어왔다.
준후는 ‘우유’라는 글자를 제외하고는 자기 이름밖에 못썼다. 자기 이름은 글자로 아는 것이 아니고 이미지를 기억했다가 그리는 방식으로 기억했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다시 글자를 써달라고 하는 일이 왕왕 일어났다. ‘우유’를 봄에 쓰기 시작해서 가을까지 ‘우유’를 쓴다는 자신감 하나로 다른 아이들이 속속 한글을 깨쳐가는 과정을 버텼기 때문에 재밌는 일이 몇 개 있다.
성미산 어린이집은 아이들 생일마다 전체 아이들이 생일카드를 적어서 선물하는데, 준후의 생일카드는 우유팩을 하나 그리고 우유라고 쓰거나 한두번은 “우유”라는 글씨로 도배가 된 작품이었다. 친구 하나가 집에 가서 제 엄마에게 “준후는 우유를 진짜 좋아하나봐.” 해서 알았다. 자기의 보물 같은 글씨 ‘우유’를 선물처럼 눌러썼을 아이의 소중한 마음에 엄마미소가 지어진다. 한번은 종이에 우유를 몇 개 적고는 꼼꼼하게 잘라서 뒤에 테이프까지 붙여서 선생님들의 가슴에 하나씩 붙여줬단다. 엄마 보다 몇 살 위인 미혼 여선생님 몇 분이서 준후의 정성에 깜짝 놀랐다나 깔깔 웃었다나.
그렇게 준후의 7세 한글 공부는 ‘우유 자존감’으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아이의 귀여운 듯 불안한 상황은 엄마들 티타임의 좋은 쿠키다. 쓴 커피를 술술 넘어가게 하는 화두다. 아이들의 한글공부가 화두가 되면 나는 귀를 세웠다. 미리 해주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혹시나 아이가 한글에 대한 열정이 꽃필 때 제공할 양질의 정보를 미리 알아둘 필요는 있겠다 싶었다. 교재 하나를 추천 받고, 아이가 교재를 하고싶다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가 슬금슬금 한글에 대한 목마름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도 구몬하고 싶다. 장난감(사은품)이 갖고 싶어.” 라든가 혼자 책을 가지고 소파 한구석에 앉아서 열독을 시작한다든가, 친구들에게 자꾸 글자를 물어본다든가 하는 일상에 숨어있으면 표시가 잘 안나는 사인이었다. 나도 아이의 신호를 꽤나 오래 무시했다.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교재를 구해서 가져온 날 아이는 신이 나서 한자리에 한시간 이상 앉아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도형의 조합을 쳐다봤다. 준후는 글자를 아래에서 위로 쓴다는 것,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는 것에 대한 습관조차 없었으므로 글자가 360 빙빙 도는 듯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ㅏ’와 ‘ㅗ’를 구분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ㅏ’를 배우다가 책을 90도돌려 놓고 ‘ㅜ’라면서 괴로워한 적도 있다. 이건 꽤 훈련이 필요한 일인지 여전히 헷갈려한다.
어른의 인지로 아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어렵다. 준후의 이런 착각을 보면서 아이들을 기다려줘야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내가 내 기준으로 아이를 윽박질렀다면, 아이는 자신의 인지의 속도를 미워하거나 불편해했을 거다. (준후는 꽤나 속편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준후는 딱 일주일을 그렇게 공부했다.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한글공부를 안 했다며 다시 거실로 나와 한시간을 공부하고 잔 적도 있다. 열두시가 다 되도록. 터전에서 돌아와 글씨공부부터 하자며 책상에 앉아 밥 지어야하는 엄마를 붙들고 공부하기도 하고, 다음날이면 다 잊을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다.
닷새째, 책의 진도에 맞추어 모음공부가 다 끝났다. 모음공부 제일 뒤에는 연습문제가 있었다. 오른편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왼편에는 아주 단순한 조합의 글자가 써있었다. 오리, 여우, 이런 것들. 나는 아이가 일주일 가까이 공부했으니 읽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그림을 가렸다. 아이는 그림을 보여달라며 원성이다. 실랑이 끝에 그림을 보여줬다. 오리는 성공했다. 여우 차례. 아이는 말한다. “느….윽…대?” 빵 터졌다. 웃지않으려고 낑낑대며 다음 연습문제로 넘어갔다. 매끈한 보라색 열매인 가지가 그려져 있었다. 준후 말싸미 “오…..이…. 인가?”. 지나가던 온후가 거든다. “보라색이니까 가지 같은데?”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하하하하 웃고 말았다.
준후의 친구 중에 병호라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 이름자는 익숙한지 ‘오’자만 나오면 ‘병’이라고 읽는다.
모음공부를 닷세 하고 그것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고서는 꼴랑 자음은 이틀하고 관심이 없다. 다음날 “준후야 한글공부 할까?”하기 무색하게, 새로 사준 무지개색이 한번에 나오는 색연필을 들고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놀이를 하느라 바쁘다. 모음을 알자 마자 글자 조합의 자유를 얻은 거다. 가끔은 ‘ㅎ’이 두개인 요상한 글자를 그려 놓고 읽으라고 윽박지르고, 스무자가 넘는 글자를 조합해 놓고는 스스로는 한글자도 못 읽는다. 아라비아의 요상한 마법주문을 읽는 것처럼 큰 소리로 낭독해 주고 나면 그 속에서 ‘우쭈쭈’니 ‘쿠키’니 ‘오리’니 하는 단어의 조합을 찾아내 자기 걸로 만든다. 훨씬 짧긴 하지만 ‘우유’를 배웠을 때처럼 그 단어를 소중하게 연습하면서. 그래서 요즘 제일 꽃힌 단어는 ‘우유 쿠키’다. 쿠키를 ‘키쿠’라고 썼다가 실망하고, 동생에게 우유 쿠키 네 글자를 적어 선물하며 의기양양하다.
내 눈에 콩깍지라고 내일 모레 학교 갈 녀석의 저런 한글연습이 대견하고 멋져서 진심으로 칭찬이 나온다. 우유 쿠키 네글자를 쓰고, 옆에 그림 하나 그려놓으면 이런 걸작이 없다 싶다. 정말 매번 깜짝 놀란다. 특별한 칭찬이 필요 없을 정도다. 나와 호두는 늘상 아이들의 작품에 깜짝 놀라니까. 모든 아이들의 그림에 개성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지만, 왠지 우리 아이의 그림과 글자가 특별하게 보인다. 준후의 성장과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적기 교육의 장점은 뭘까. 교육이란 걸 아이 키우면서 처음 경험해 본 나에게 묻는 질문이다. 아이가 한글을 알기 전까지는 그냥 안 하면 되었다. 발도르프-공동육아를 거친 나로서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주변에 학습이 늦어서 마음이 급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므로 자극 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주변에 아이들이 쑥쑥 성장하고, 비교해서 내 아이가 늦다는 자각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이를 기다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별한 인정도 필요 없고, 조바심을 견뎌야하는 인내도 필요 없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쉬운 일이 없다.
막상 아이가 공부를 하려고 하면 도와줄 것도 크게 없다. 아이는 자기 스스로를 돕는다. 아이가 도와달라는 것만, 어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만 눈치를 채서 알려주면 된다. 그리고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아이의 천진만만함(말도 안되는 자신감)과 귀여움(잦은 실수)을 즐기면 되는 거다. 아이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애를 쓰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이득인가.
주변 환경이 너무나 완벽한 모국어 학습이기 때문에 이렇게 여유만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말과 글은 공기처럼 흔하니까. 그러나 정말 맨땅에 헤딩해야하는, 호기심도, 욕구도, 의지도 없는 공부를 하게 되면 그때는 어떤 돌봄이 필요하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 그때도 아이의 성장을 이렇게 옆에서 지켜보며 신비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