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는 그림을 참 잘 그려

다른 아이와 비교하게 돼

by 은조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치지 않기로 결심하고 내 삶은 한결 평화롭다. 종종 들려오는 사교육의 썰물에도 귀 쫑긋하지 않는다. ‘내가 더 나은 교육을 하고 있다’고 믿으니까. 그렇다. 나는 불안이 없는 엄마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불안을 극복하려는 엄마다.


공동육아는 부모의 교육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 터전은 일 년에 4번의 부모교육이 열리고, 부부 중 한 명은 필참이다. 작년에 들었던 교육 중에 인상 깊은 한 구절. “공동육아 하는 부모들 만만치 않아요. 아이들 참 힘들어요.” 그래. 나는 내 방식대로 극성을 부린다.


그냥 동네에 맞춰서 다니면 되는 초등학교를 이리저리 인터넷 검색에, 대여섯번도 넘게 학교설명회에 가고, 그도 모자라 두 달에 한번 있는 열린 학교 행사에 가서 아이들이 지내는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나랑 다른 선택을 한 부모들의 이야기와 만족과 불평을 모두 들으며 나의 방법으로 소화 시켜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 저들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 그렇지만 내 선택이 맞을거야.’라며 불안을 소거시킨다.


우리 둘째 온후는 아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펜을 들고 꽁냥거리는 일 조차 잘 없다. 준후에게 쏟아낸 칭찬이 온후를 소심하게 만들었나 괜한 걱정을 하고, 준후가 그림그리는 걸 부끄러워하고 엄마에게 의지 할까 걱정하며 아이 옆에서는 강아지 한 마리도 조심스레 그리던 큰 아이 양육 때를 기억하며 온후에게 미안해하기도 한다. 이제 슬슬 색종이를 접고, 색연필을 꽉 쥔 앙증맞은 손으로 눈을 그려 놓는 걸 보고는 나의 유난스러운 ‘죄책감’을 내려놓는다.


어제 호두가 이리저리 핸드폰을 만지다 나를 부른다. 유난히 큰 소리로. “이거 봐 진짜 잘 그렸지? 세계어린이미술대회(가칭) 금상 받았대. 주희 딸이야.” 정말 잘 그렸다. 나뭇잎과 풀잎을 모두 초록과 연두로 적절하게 칠해서 생동감이 난다. 나무기둥도 빛을 받는 쪽은 노란색으로 나머지는 밝은 갈색으로 밑둥은 좀 더 어두운 색으로 칠했다. 나란히 있는 다람쥐의 말린 꼬리도 힘이 있고 즐겁다. 정말 여섯 살 아이의 솜씨치곤 너무 멋지다. 사실 서른여덟먹은 나보다 낫다.


그 때, 내 속이 움찔 움찔 거린다. 잘하고 있다는 믿음에 금이 가는 소리다. 가는 실금들이 모여서 만들 변화들이 두려워 얼른 땜질을 시작한다. ‘영재인가봐. 원래 재능을 타고 났겠지.’ ‘학원 다니면 다 잘해. 우리 애들도 학원 다녔으면 스케치북 위에서 날아다녔을 거야.’부터 ‘학원 선생님이 조금 손봐주긴 했겠지. 애가 어떻게 저렇게 해’까지. 그래도 불안이 삭여지지 않는다.


“우리 집에 한번 와보라고 해. 애들이 만들어 놓은 옷장에 털실로 만든 거미줄도 보고, 로봇청소기로 RC카 놀이 한다고 베개랑 전집이랑 의자를 쌓아 만든 터널도 구경해보라고 해. 그럼 우리 애들한테 과외해 달라고 할걸?” 비루한 자존심을 내세워본다.


오늘도 나의 불안의 허들을 넘는 일은 마무리됐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근거도 희박한 자기 위안으로. 그러고 보면 우리 사는 건 다 비슷비슷 한가보다. 다 비슷하게 이런 저런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을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애쓰며 단단하고 든든한 부모가 되는 건가 싶다.



지난밤, 추운 겨울에 맥주 한잔 해보겠다며 어깨를 하늘 높이 치켜든 자세로 잔뜩 움추린 채 종종종 걸어가며 옆을 함께 걷던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이 키우면 철든다잖아. 나 좀 철 든 거 같아.” 철이 좀 들었나. 휘청이나 휘청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 보니 ‘철’인냥 ‘묵직’해지는 것 같은 으쓱함이 조금 든다. 내 선택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할 것만 같은 불안을 매일 매일 경험하며, 불안을 어렵게 떨쳐낸 직후 “정말 맞나?”하며 뒤돌아보게 되는 불안한 아이 키우기. 모두에게 존경을 표한다.


옷방 헹거_우리아이들은 좀 잘 어지럽히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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