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를 위한 미래 배우기
Earth in Mind/ 생태적 문맹에서 벗어나기
데이비드 W. 오어 지음/ 이한음 옮김
작은 지구를 위한 마음은 생태학과 교육에 관한 책이다. 기후와 환경에 대한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웅변조로 쓰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현재 우리의 교육과 지향하는 교육을 비교해서 보여주면서, 교육의 목적이 뒤바뀐 현실을 지적한다.
저자는 현재의 교육이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그저 지구를 더 효과적으로 파괴하는 자로 만들 수 있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교육이 그런 사람들을 키우는데 집중해 왔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현재 교육을 명석하지만 생태학적으로 문맹인 사람들을 만드는(p.24) 교육이라고 평가한다.
"교육의 위험은 무엇일까?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특히 중요한 것이 셋 있다. 정규 교육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에 앞서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를 걱정하게 만들 것이며, 학생들을 도덕적으로 메마른 편협한 기술자로 만들 것이며, 생물 세계에 대한 경이감을 죽일 것이다."(p.53)
그러나 저자는 학교를 비난하기는 쉽지만, 이건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학교는 가정, 공동체, 로컬, 사회문화로부터 시작된 파괴의 증거일 뿐이다. 그는 ‘의협심과 숭고한 목적을 지닌 정신과 삶의 가치를 높이 사는 좋은 사회를 먼저 만들지 않은 채 좋은 학교를 만든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p.71-72)라고 정확히 지적한다.
그래서,
기후위기의 시대.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그는 교육을 통해 세계를 거주하기에 알맞고 인간적인 곳으로 만드는 싸움에 기꺼이 참여할 도덕적 용기를 지닌 사람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p.33) 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태 설계 지성(ecological design intelligence)(p.21)이 필요하다.
생태 설계 지성은 인간의 목적과 자연의 제약을 헤아릴 줄 알고, 우아하고 경제적으로 그 일을 해내는 능력이다. 생태 설계 지성은 기술 같은 것들만이 아니라, 지구에 맞추어 생각과 철학의 형태와 규모를 조절하는 일과도 관련이 있다. 본질적으로 생태 설계 지성은 세계에 대한 윤리관과 그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동기로 삼는다. …. 생태 설계 지성의 가장 확실한 징표는 집단적 성취 사례들이다. 건강하고, 오래 견디고, 원상 복원되고, 공정하고, 번영하는 공동체들 말이다.(p.21-22)
이런 변화는 교육 자체를 새로 설계하는 일이자(p.22), ‘행성을 지배하라는 명령에 복종한 이전 세대들이 보여준 것에 맞먹는 열의와 독창성을 지녀’야 하는 일이다. (1992, p.21, 야로슬라프 펠리칸)
이를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제안되는 첫 번째 원칙은 바로 사랑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물학 교수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생명사랑/ 인간이 잠재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다른 생명체와의 연대성(p.81)]다. 바이오 필리아는 이 책 20장(p. 193-224)에 잘 나와있다. 20장의 제목은 [사랑하지 않으면 잃는다- 바이오필리아 혁명의 도래]다.
저자는 바이오필리아를 소개하기 앞서 생명공포증/ 자연혐오라고 해석되는 biophobia에 대해서 소개한다. 인간의 직접적인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 자연에 대해 느끼는 불편감에서 시작해서, 인간이 관리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의 감정을 말한다.(p.195) 이런 입장 반대편에 있는 것이 바로 바이오필리아다.
그는 다시 묻는다.
“과학의 절차적 요구사항과 굴드가 종과 환경을 구하는데 필요하다고 믿은 과정인 대상과의 정서적 유대와 대상을 사랑하라는 요구사항을 조화시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p.78)
자연과학의 절차적 객관성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화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저자는 과학근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열정, 감정, 훌륭한 과학과의 관계가 오해되어왔다고 말한다. 감정은 지성과 연관되어야 하고, 사랑은 교육 및 지식과 진지하게 연관 지어 논의되어야 한다. 처음 과학을 대할 때의 마음 바로 그것과 지성은 떨어질 수 없다.
비슷한 측면에서 지적행동과 사유는 도덕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지능은 이른바 더 높은 선(善)의 이름으로 생명, 공동체, 예의를 침해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적 행동은 중용, 충실, 정의, 연민, 정직과 조화를 이룬다. 그야말로 전체적인 사물을 보는 힘을 말한다. (p.88)
저자는 ‘과학 근본주의는 과학 자체와 더 넓게는 과학이 번성할 수 있게 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생태적 조건들에 역설적으로 비회의적인, 다시 말해 비과학적인 협소한 관점이다.’(p.80)고 강도 높게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은 1994년에 처음 쓰이고 2004년에 개정된 데이비드 W. 오어의 책이다. 데이비드 W. 오어는 미국의 정치학 및 환경학 교수이며, 오바마 정부 행정부에서 100일 기후행동계획(Climate Action Project)을 짜는 일을 했다고 한다. 플라스틱 사용량, 패스트패션의 증가, 화석연료의 사용은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증가했다. 기후위기의 현실화도 2000년도 이후에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 책도 다른 환경책처럼 단전에서 올라오는 깊은 진정성이 느껴지는 책이다. 먼저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는 사람이 갖는 두려움이자 웅변이다. 2021년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을까? 마음을 열고 들여다보면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갤럽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94%가 “지구온난화는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리고 생각하고, 71%는 “나 개인의 행동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왜 아이들에게 바이오필리아를 가르쳐야 하는지, 왜 더 이상 우리가 지구의 미래를 할인해서 사용하면 안 되는지는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인용된 예일대 경제학과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의 생각을 적는 것으로 이 책의 서평을 마무리할까 한다.
‘생산적인 경제활동이 없는 사막 지구라는 황량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과장하고 그 혜택을 경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p.128) 노드하우스의 해결책은? ‘현재의 고수익 자본에 집중하여 투자하고 그 투자의 결실을 이용하여 미래의 기후변화를 늦추는 것이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미래 비용을 할인하는 법과 불확실성을 허용하는 법’과 관련이 있다.(p.128-131)
이러나 이런 눈 가리고 아웅 식, 냉난방이 잘되는 방에서 고안한 추상적인 모델들에 상정된 합리성(p.135)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바로 보는 법이 없다. 그리고, 바로 노드하우스의 이 생각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환경에 대한 관점이 아닐까
아래 동영상을 순서대로 보면, 더 이상 지구의 위기가 우화가 아님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