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공기가 목구멍을 훅 덮쳤다.
여름의 광선
건조한 공기가 목구멍을 훅 덮쳤다.
아직은 에어컨을 켤 정도는 아니야. 주디는 말했고, 제이는 동의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째 라디오는 올해의 더위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제이는 녹고 있었다. 원하는 대로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손은 머리가 시킨 곳보다 가까운 데서 멈췄다. 짧은 산책에도 의자를 찾아 몸을 중력에 맡겼다. 시선은 몸보다 더 무거웠다. 지면 아래로 더 깊이 툭. 정신을 지하 깊숙한 곳에 박아 넣으면, 그나마 시원해졌다. 하염 없는 멍함만이 제정신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늘이 간절한 칠월 첫째주였다.
실속 없는 독서실에서의 하룻밤을 보낸 후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제이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는 얼마전 새롭게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빈약한 가로수가 만든 작은 그늘, 인도의 한쪽 귀퉁이에 앉았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산산히 부서지는 서리 같은 초여름 볕을 바라보았다. 바닥에서 튕겨 오르는 백만 개의 빛조각을 찬양하기 위해 그는 한 쪽으로 목이 꺾어진 자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쉴새 없이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는 제이의 시선을 방해하지 못했다. 차가 일으킨 먼지에 반사된 태양은 더욱 강렬했고 끈질겼다. 제이는 여름의 광선에 매혹되었다고 생각했다.
스마트워치가 짧게 흔들렸다. “어디야?” 그는 곧장 답을 보낼 수 없었다. 그는 주디가 지난 겨울 생일 선물로 준 이 시계가 싫었다. 이 시계는 선물하는 사람의 의도를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 같았다. ‘언제 어디서든 나의 메시지를 놓치지 마.’ 시계는 제이가 주디의 말을 무시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짧게 소매 끝을 잡아끄는 억지 같은 불쾌한 느낌. 시계는 늘 제이의 자유 의지와 반대방향을 가리켰다. ‘아 귀찮아.’ 태양과의 유희는 완전히 망가졌고 시공간의 공백은 와장창 깨졌다. 태양은 다시 정수리에 꽂히는 사나운 바늘이 되어 그의 모든 에너지를 뺏아갔다.
제이는 사랑이 여름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뜨겁고 축축하고 미끈한 달군 밀랍같은 사랑은 유연했기에 연인 사이의 틈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메워버렸다. 주디는 사랑했기 때문에 경계 없이 제이에게 갔다. 모든 일에 능숙하고 자신감 넘치는 주디는 제이의 불규칙한 삶을 수정하고자 했다. 제이 역시 주디를 사랑했다. 그래서 온기가 식은 밤에야 정신이 눈을 뜨는 지난 습관을 정리하고 주디 방식의 바름에 적응하기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주디의 속도는 제이에게 멀미를 일으켰다. 집중력은 흐트러졌고 늘 약간의 현기증을 달고 살았다. 제이의 손목에 매달린 것은 주디였다. 주디와 제이는 맞지 않은 퍼즐 같았다. 그들 사이의 틈은 넓었고 울퉁불퉁하고 난해했다. 제이는 그 틈이 자신을 숨 쉬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사랑은 끈끈한 밀랍이 아닌, 수명이 다한 거미줄을 닮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놀고 있어?” 다시 한 번 주디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이는 주디가 자신의 잔인함을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주디 역시 제이를 보호해 줄 유일한 지붕이 자신임을 알고 있을까. 화가 났다. 마른 볕 하나가 옮겨 붙은듯 뱃속이 뜨거워졌다. 제이는 이 메시지가 꾸지람이라고 느꼈다. '너의 외박은 정당하지 않아.' 제이의 수 많은 부족을 핀잔 하기 위한 위선. 제이의 시선에서 주디는 제이보다 높은 자리에 서서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자신을 내려다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제이는 알았다. 주디가 제이의 마음을 안다면 펄쩍 뛰었을 것을. 주디는 분명 ‘그냥 너의 안녕를 물어본 것일 뿐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주디의 변명은 제이를 더욱 분노하게 할 것이다. 자기 마음을 숨기고 뱉은 뼈 있는 말이 품은 위선에 제이는 타오를 것이다. 제이의 전두엽은 ‘우리는 이제 서로 미워하는 사이야’라고 야속한 전자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왔다.
제이는 다시 한 번 주디의 메시지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다음 메시지가 도착하면 이 길에서 펑펑 울 계획이었다. 그리고 주디에게 보낼 저주가 가득 담긴 장문의 메시지를 상상했다. “우리 사랑은 끝났어.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게 언제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그러면 열기가 가라앉고 서늘해 질 것이다. 구름이 작열하는 뙈약볕을 가려 그늘을 만들고 소나기를 뿌려주길. 그래서 이 여름이 한풀 꺾여 누그러지길 간절히 소망했다. 힘 빠진 태양과는 한 번 싸워볼 수 있지 않을까. 태양이 사라지면 찬양하며 응시할 것도 사라질텐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이는 이 충성어린 사랑을 버릴 수 있을까. 사랑을 버리고 난 후에는 자기만의 욕구에 충실하게 될까.
시계는 울리지 않았다. 울리지 않는 시계처럼 무기력해진 제이는 다시 바닥에 떨어진 태양의 조각들을 눈으로 모았다. 다이아몬드 같은 태양볕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태양과의 놀이는 불가항력이었다. 그 때, 까맣고 건조한 공기가 훅 제이의 목구멍을 때렸다. 사레들려 폐부에서 올라오는 사나운 기침을 연거푸 뱉었다.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제이는 눈물을 흘렸고, 등줄기는 축축히 젖었다. 제이는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한 쪽 손으로 가로수를 붙들고, 반대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무리 뱉어내려고 토악질을 해도 딱 그 자리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목으로 넣었다. 구역질만 올라왔을 뿐 목에 걸린 무엇은 빠질 줄을 몰랐다.
제이는 급하게 차에 올랐다. 제이는 상대도 없이 화가 났다. 계속되는 기침에 소변까지 찔끔 샜다. 집에 가야 했다. 시동을 켜자마자 기어를 D에 놓고 엑셀을 밟았다. 핸드브레이크가 풀리며 부드럽게 차가 앞으로 나갔다. 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자신이 갈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제이는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은 쉴 곳이 못됐다. 주디가 없을 때조차 그랬다. 제이는 더 세게 엑셀을 밟았다.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평화로운 공간이 나타날 것처럼. 하지만 목에 걸린 것은 여전히 제이를 괴롭혔고, 팬티에서 희미하게 소변의 냄새가 올라왔다. 제이는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제이는 자기가 이 싸움에서 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시계에서 벗어나려면 시계를 벗어야 한다는 것을 제이는 모르지 않았다. 진짜 볕을 만나려면 그늘에서 볕을 구경하는 일을 멈추고 거리로 나가야했다. 밀랍같은 사랑을 걷어내고 싶다면 무엇이든 해야했다. 하지만 제이는 이 모든 것을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속박이 주는 괴로움과 자유가 주는 두려움 중 무엇이 더 고통스러운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제이는 안전한 차를 타고 익숙한 집으로 달렸다.
주디가 아직은 에어켠을 켜기에는 이르다고 했기 때문에 제이는 창문을 내린 채 과속을 했다. 그는 자신이 고작 휴대폰 손전등에 의지해 길을 찾는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