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하자는거냐 말자는거냐?
아이 학교에서 열린 운동회에 갔다.
운동에 소질이 없는 나로서는 어떤 게임에도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태생적으로 뛰어난 나의 목청을 뽐내며 응원이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첫째가 동그란 눈을 굴리며 함께 이인삼각에 출전할 어른을 찾고 있지 않겠나.
저 눈을 배신할 수는 없지.
우리는 팀의 세번째 차례였다.
플라스틱 스폰지에 지름이 20센치 정도 되는 구멍이 2개 뚫린 이인삼각용 운동기구에
한쪽 발을 끼고, 반대쪽 구멍에 발을 끼우고 있는 아이를 도우며 말했다.
"엄마가 하나라고 말하면 구멍에 들어간 발로 걷고, 둘이라고 말하면 반대쪽 발로 걷는거야."
우리를 응원하던 한 분은 더 쉬운 계획을 세워줬다.
"준후야 하나에 왼발 둘에 오른발을 움직여. 은조는 반대로 움직이고요."
좋은 계획이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나와 아이는 왼쪽과 오른쪽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자. 앞에 있던 친구와 그 아빠가 돌아오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자. 준후야 긴장 하자. 하나."
하는 나의 목소리와 함께 아이가 마구 달려대기 시작했다.
아이와 묶어져 있는 내 발은 상관이 없다는 듯이 달렸다.
열 살 짜리에 비해 월등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나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나의 묵직한 발은 장애물이라고도 생각하지도 않는지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활짝 웃으면서.
나도 마구 뛰는 것 밖에 별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마구 뛰었다.
우리는 마구 뛰어 꼴찌를 했다.
우리의 달리기는 그렇게 끝났다.
며칠 후 아이에게 물어봤다.
"준후야. 그때 이인삼각 하던 날. 왜 그렇게 혼자 뛰어 갔어?"
"그거야 당연하지 이기려고!"
"이기려면 발을 맞춰야지!"
"엄마도 나처럼 빠를 줄 알았지!"
"그런데 우리는 그날 꼴찌를 했는데?"
"그랬어? 아닌데. 이겼는데!"
"그런데 그날 가장 잘한 사람은 00누나를 들고 뛴 00아빠였어!"
룰파괴자.
흠, 이 아이와 어떻게 사이좋게 함께 살지 콧구멍이 벌름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