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다. 국가에서 하는 검진 때문이었다. 마지막 검진은 5년 전이었다. 산부인과를 왜 5년 만에 갔냐면, 여러 차례 진료를 받긴 했지만 나 역시 산부인과 진료는 여전히 피하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삼계탕 속 닭처럼 굴욕자세로 내 생식기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내 젊음을 과신했던 것도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의사는 내 자궁에 근종이 있고, 근종과 별개로 선근증이 있어 아이 둘을 출산한 사람보다 자궁이 크니 당장 미레나 시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적었지만 나는 30대에 접어들어서 20대 때보다 생리주기가 정확해지고 기간도 짧아졌다. 때문에 전보다 상태가 더 좋아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의 진단은 정반대였다. 5년 전에 선근증 기미가 보인다고 의사가 말했던 것도 떠올랐다. 병원을 나서면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심란했고, 울고 싶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결혼도 안 하고, 출산한 적도 없는데! 당장 결혼, 출산 계획이 없지만서도 내 장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삼일 뒤 다른 산부인과를 찾았다. 두 번째 병원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빈혈로 입원했던 곳이었다. 이 병원은 전에 간 병원보다 사람이 많아 대기시간이 길었다. 의사는 근종이 있기는 한데, 생리가 끝나면 떨어져 나갈 수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말하는 첫 번째 병원보다는 믿음직스러웠다.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 두 번째 병원 의사 말을 믿고 싶었던 거 같다. 환자는 긍정적인 얘기를 해주는 의사한테 더 마음이 가는 게 당연한가보다.
부모님은 집 근처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고, 결국 한 번 더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진료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은 두 번째 병원보다 훨씬 대기 시간이 길었다. 심지어 초음파 영상 찍을 때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에서조차 줄을 서야 했다. 게다가 대학병원은 의사가 직접 초음파를 보는 게 아니었다. 초음파는 다른 곳에서 찍고, 의사는 찍은 걸 보면서 진료만 한다.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환자를 보기 위한 분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튼 대학병원 의사 역시 두 번째 병원과 마찬가지로 한 번만 봐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시설은 제일 구린데, 진료비는 제일 비쌌다. 같은 초음파 진료만 하더라도 첫 번째 병원은 4만 원대, 두 번째 병원은 5만 원대, 마지막 대학 병원은 14만 원 정도 들었다. 슬슬 지갑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의료비를 이렇게 많이 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이왕이면 집에서 가깝고 좋은 말을 해준 두 번째 병원에 진료를 다니기로 결정했다.
*. 참고로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보기 좋은 시기는 생리 시작후 5~7일째 되는 날이라고 한다. 자궁이 제일 깨끗한 시기라고. 산부인과서 진료받을 계획이 있다면 이 시기에 맞춰서 가면 좋다. 괜히 시기를 잘못 맞췄다가는 나처럼 이중으로 진료받느라 시간 버리고 돈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