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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채목 Jul 28. 2020

수박 한 꺼풀 깎아봤자, 사과보다 크다.

미의 기준

 지하철을 이용해 보면 지하철역과 전동차에 있는 광고들 중 많은 부분이 성형외과 광고다.

 before, after 사진을 보면 놀라울 정도의 변신을 한 대조 사진을 볼 수 있다.

 외모가 중시되고 있는 이 사회 풍토에서 외모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광고를 보면서 ‘나도 한번 해 볼까?’라는 고민을 하는 것이 어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니,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이기에 누가 봐도 이미 미모인 사람들까지도 더 아름다워지고픈 욕구가 꿈틀대기도 할 것이다.

 요즘 “압구정 자매님들”, “청담동 쌍둥이”라는 말이 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인위적인 얼굴의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현실을 반영하는 말이다.

 나는 성형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니다. 재건 성형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미용 성형도 필요한 시술임에 틀림없다. 아직까지는 성형수술을 안 했지만, 언젠가는 나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죽을 때까지 나는 절대로 성형 수술 안 할 겁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는 없다는 게 솔직한 내 입장이다.

 그러나 되도록 칼 안 대고 인공적인 보형물 안 넣고, 살고 싶다는 소망은 갖고 있다.

 내 직업이 배우다 보니, 성형수술을 하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고, “그 얼굴로 무슨 배우를 하냐?”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적지 않았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있다. “수박 한 꺼풀 깎아봤자, 사과보다 큽니다.” 내 얼굴이 커서 배우로서 결격 사유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TV에서 주인공 하려면 얼굴이 작은 사람이 훨씬 예뻐 보이니 얼굴 큰 거보다 작은 게 훨씬 좋다. 그게 현실이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예뻐 보이고 돋보이려면 조연이 주인공을 잘 받쳐줘야 한다. 연기력으로든 외모로든. 조연을 하려면 주인공보다 예뻐서 주인공의 미모를 깎아내리기보다는 주인공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좀 덜 예쁜 게 필요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순전히 나의 생각). 그런 면에서 나는 오히려 성형 수술 안 하는 게 배우로서 내 입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 사극이나 근현대 시대물에서 인공미가 강하게 풍기는 건 고증상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 1950년대 시골 아낙네 역할을 하는데 성형수술 한 티가 많이 나는 배우가 적합할까?

 미의 기준이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가? 성형도 유행에 따라 변하고, 의료 기술의 발전에 따라 또 변하는데, 쇼핑하듯이, 유행하는 옷을 사듯이 코 모양을 몇 년에 한 번씩 바꾸는 사람도 있다는데, 난 왜 측은지심이 생길까? 고 마이클 잭슨이 생각나면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다 싶다. 그 욕구가 욕심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과욕은 화를 부른다.’는 말이 실감 나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외모 때문에 사회생활의 불이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적절한 성형수술은 정신과 치료보다 더 효과적이며 필요한 의료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또 직업상 필요에 의해서도 적절한 시술은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바뀌는 미의 기준에 따라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수술을 받는다면, 그땐 성형수술이 아닌 정신과 치료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각자의 개성이 사라진,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한 얼굴의 마네킹 같은 사람들이 활보하는 거리, 그게 과연 아름다운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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