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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슬기 Sep 08. 2022

바다에서 만난 신비한 돌멩이

거북이 요정이 육지로 올라와 바닷속 여행을 제안할 것 같았다.




괴생명체가 인간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를 일이다.




 2003년 10살의 내가 여름휴가를 맞이해 가족들과 함께 바다로 향한다. 휴가를 보내기 앞서 다양한 휴양지 가운데 어느 곳을 가게 될지는 어른들의 사정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 바람은 늘 바다였다. 해변을 거닐고 해안선을 바라보며 곧잘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곤 했던 나에게 바다는 무한의 가능성이자 상상력의 도화선이었다.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였던 넓은 바다는 내 최적의 놀이터였다. 갯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누구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괴생명체가 깊은 바닷속에서 촉수를 내밀고 날 위협하거나, 거북이 요정이 육지로 올라와 바닷속 여행을 제안할 것 같았다. 그렇게 미지의 사건을 기다리는 기대감이 나를 설레게 했다.



 바다낚시에 열렬했던 아빠와 형, 펜션에서 보내는 달콤한 낮잠에 열렬했던 엄마, 조개껍질 따위를 줍는 일에 열렬했던 내가 각자의 시간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파도에 밀려 해변가로 올라온 조개껍데기를 골라냈다. 반짝거리는 잠쟁이 껍데기 사이에서 넓게 뻗은 가리비 껍데기와 뾰족한 고둥 껍데기를 발견하면 횡재였다. 그러다 모래바닥에 늘어진 불가사리를 만나면 나뭇가지로 찔러 생사를 확인해 보기도 했다. 움찔거리는 불가사리에 안도감을 내뱉고는 다시금 모래바닥을 기웃거렸다.







 한참 고개를 숙이고 모래바닥을 주시했던 내게 영롱한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분명 돌멩이로 보이는데 일반적인 돌멩이와는 사뭇 달랐다. 빛을 머금고 있는 돌멩이의 자태는 가공된 유리알처럼 매끄러웠으며 눈을 떼기 힘들 만큼 고운 맵시를 갖추고 있었다. "이건, 보물인가?" 태어나 처음 마주했던 신비한 돌멩이를 보고 어렸던 내가 들뜬 마음과 함께 제멋대로 상상해 버린다. "해적들이 잃어버렸나!" 혹은 "마법사의 돌?" 그 신비한 돌멩이는 내게 더욱 진기하고 별난 돌멩이를 줍겠다는 사명감을 주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거대한 열정을 심어주었다. 여름휴가 내내 돌멩이를 줍는 나의 집중력은 끼니를 거를 만큼 대단했다.



 신비한 돌멩이의 정체를 깨닫게 된 건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한참을 잊고 살다가 대학생의 내가 전주의 작은 소품 가게에서 바로 그 돌멩이와 재회한 것이다. 돌멩이는 액세서리 또는 장식품 따위로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었다. 잊고 있던 퍼즐이 맞춰지듯 그날의 여름휴가를 떠올렸다. "이 돌멩이는 뭔가요?" 내심 기대를 품고 점원에게 물었다. "아 그거, 씨글라스요." 점원은 말을 이었다. "바다 유리라고도 하는데, 액세서리를 만들거나 공예품으로 흔히 쓰여요." 나는 10년이 지나서야 신비한 돌멩이를 일컫는 이름을 알았다. 휴대폰을 꺼내 씨글라스를 검색했다.








 씨글라스는 바다에 버려진 유리가 오랫동안 풍화과정을 거치며 탄생한다. 바다의 밑바닥에서 긴 여정을 보낸 유리조각일수록 더욱 반질반질하고 매끈하다. 비교적 짧은 여정을 보냈던 유리 조각은 깨질 당시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씨글라스의 모양은 단 하나도 동일한 법이 없다. 저마다의 다양한 풍화 과정을 맞이하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10살의 내가 발견한 씨글라스는 보석처럼 빛났고 매끄러웠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견디고 나에게 발견된 것이다. 인간의 창조물이 바다를 만나 아름다운 보석으로 돌아왔다.



 씨글라스의 탄생 과정을 알았던 그날의 나는 그 돌멩이의 무게를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신비한 돌멩이를 만나 어린 내가 느꼈던 흥분과 열정은 낭만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낭만을 선물했던 바다는 그날도 지금도 깨진 유리 조각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터였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파도에 부서지고 바위에 부딪히며 부드럽게 다듬어진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은 바닷속 생물에게 부딪히고 먹히며 그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거나 목숨을 앗아간다. 그날의 내가 발견했던 신비한 돌멩이가 얼마나 많은 생명에게 위협이 되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어릴 적 내가 상상했던 바다의 괴생명체는 내 눈앞에 드러나지도, 나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바다에게 인간이란 괴생명체와 같은 악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이 모나지 않고 누구와도 원만하게 어울린다.'라는 '둥글둥글하다.'의 어원은 씨글라스의 탄생 과정과도 흡사하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때론 세상 앞에 부서지며 이를 통해 더욱 단단해지는 우리는 둥글둥글한 어른이 되어간다. 그 과정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세상을 부정하는 자신을 겪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도 여러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 우리는 누군가에겐 상냥한 사람이 되는가 하면 또 누군가에겐 고약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각기 다른 부딪힘의 과정이 그 사람의 모양새를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바다는 인간이 주는 해로움을 아름다운 돌멩이와 함께 가르침으로 보답했다. 어렸던 나는 바다의 속 사정도 모른 체 이기적인 낭만에 빠져들기 바빴고 어른의 나는 바다에게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해준 것이 없는 인간에게 관대한 바다는 넓었으며 어수룩했다. 그래서 가여웠다. 바다는 씨글라스를 통해 우리에게 다양한 의도를 보이지만 진정 바다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다시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이 메시지를 결코 무시한다면 언젠가 우리의 소중한 바다를 잃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또는 어릴 적 상상했던 괴생명체가 인간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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