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줄 수 있겠니 #01
죽어가는 너에게 손을 건네는 건 언제나 너일 거야
때로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단지 나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뿐인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그들의 기대에 미치도록 나의 모습을 더욱 가꿔나갔다. 하지만 기대와 어긋나게 나의 조그만 결점에도 나를 떠나가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그럴수록 나의 작은 실수를 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결점을 인정해 버린다면 나는 결코 그들에게 이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관계를 지키기 위해 나의 형편없는 모습을 감춰야만 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있어도 그들에게 드러내지 않았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닥쳐도 꾹 참았다. 어느덧 나는 감정을 숨기고 견뎌내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발견했다. 늘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나의 입꼬리는, 견뎌왔던 무게를 감당하기 벅찼는지 이제는 그만하라는 듯 미세한 떨림으로 나를 재촉했다. 안간힘을 다해 유지했던 미소를 내려놓자, 결국 억압해왔던 눈물이 뺨을 적셨다. 지금껏 나의 부정에 억눌려 자치를 감췄던 감정이, 이제야 그 억울함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어쩌다 나의 감정이 내게 의존하지 못하고 이렇게 한없이 작아져 버린 걸까. 외로움과 두려움을 메우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밀어냈던 나의 마음이 가엽게 느껴졌다. 다른 이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순간에도 나의 감정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다른 이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가꿔왔던 모습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꼴과 같았다. 나는 지금껏 자신을 부정했던 대가로 남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길 원했던 것이다.
내 감정이 설자리가 없다는 것은 내가 설자리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 감정을 부인하는 것은 겉으로는 강인하며 건강해 보이는 외면과는 달리, 내면에 가려진 자신의 마음이 병들어 가도록 방치하는 일이었다. 나아가 자신을 거부하게 되면서 자기혐오나 삶의 의지력 상실감 등을 겪기도 했다. 이를 깨닫고 보니 내 감정에 무책임한 사람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도 수용할 줄 모르는 내가 남을 수용하려는 것이 그들에게 이기적인 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경험과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며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한 첫 번째 자기 수용이었다. 나의 용기를 지지하는 순간부터 변화와 발전의 결심이 시작되었고, 자신을 돌보기로 선언한 나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자문했다. “너답지 않게 살아온 것 같아 미안해. 이젠 들어줄게,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처음으로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였고, 내 마음이 전하는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이처럼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은, 스스로에게 건넸던 질문과 같이 '행동'으로부터 시작됐다. 나의 감정에 대면하고 마주하는 용기 덕분에 스스로를 지지할 수 있는 작은 힘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불안과 공포가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면 용기는 결정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나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막막한 상황 속 절망에 빠진 내게 다시 한번 용기를 갖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는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내가 다음날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이었다. 자신의 나약함에 패배해 삶의 의지가 꺾일 때마다 단단하게 바로잡아 줄 새로운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갖춰야 할 태도 중, 가장 먼저 나의 가능성을 믿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는 힘을 과소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책임진다는 마음이 들기도 전에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갈 길을 포기한다. 이는 사는 대로 생각할 뿐이다. 지금껏 자신을 돌보는 일에 무책임하게 살아온 만큼 나에게 있을 긍정적 변화를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대로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진짜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다.
오늘도 고생했던 나를 가장 먼저 보살펴 주길. 무겁던 어깨를 감싸 안고 나의 체온을 그대로 느껴주길. 사랑하는 나에게 사랑으로 보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