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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un 05. 2022

화폐란 무엇인가

4. 금본위제와 스테이블코인

테라와 루나에서 벌어진 일을 계기로 스테이블코인은 좋든 싫든 주목받고 있다. 50조에 달하는 자산이 일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경험은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고, 가상화폐를 잘 아는 사람들은 가상화폐의 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문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당연히 사기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시도는 좋았으나 결함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뭐든 좋지만 일단 뭔가를 주장하려면 그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사에서는 대개 스테이블코인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이때 항상 나오는 말은 '테라와 루나라는 한 쌍의 코인을 통해 테라의 가치를 1 USD에 맞춘다'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기술적인 설명이 뒤따라온다. 기술적 설명은 차치하고 일단 저 말에 대해 금융을 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무엇인가와 비슷하다. 바로 금본위제다.


금본위제는 지금처럼 환율이 각국 통화가치에 맞춰 자동으로 변하던 시절 이전에 사용했던 방법이다. 금본위제에서 미국은 금과 달러의 교환 비율을 고정했었다. 모든 국가는 자신들이 가진 금의 크기만큼 달러를 가질 수 있었다. 테라가 1 USD에 고정되듯 1 USD는 35온스의 금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지금 우리는 금본위제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역사의 어느 순간 금본위제는 결함을 드러냈고, 폐기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역사는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자산으로 과거를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금본위제는 왜 폐기되었을까?


금본위제 하에서 1달러는 35온스의 금과 교환되었다. 달러와 금은 서로 고정 비율을 가지고 있었는데, 문제는 실제 가치는 변한다는 점이었다. 달러도 더 늘어나지 않고, 달러의 가치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 구조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세계 경제는 성장하고 있었고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달러를 더 찍어낼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고, 경상수지 균형에 따라 타국의 통화와 달러 사이의 비율은 변했다. 바깥은 다 바뀌고 있는데도 금과 달러 사이의 관계는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입장에서는 금의 유출이 점점 더 심해졌다.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가지고 있는 금을 지출하면서 무마하고 있었던 것인데 금융시장에서 변동성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그 모든 변동성을 억제하려다 보니 금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결국 금의 유출을 막기 위해 미국은 금을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달러와 금의 고정 비율이 깨지면서 지금의 변동 환율제가 시작되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금본위제를 무너뜨린 것은 한 가지, '변동성을 억지로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금융시장에서 자산의 가치는 변한다. 그리고 변하는 모든 것은 불리한 방향으로의 변화도 내포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리스크'라고 부른다. 모든 금융자산은 리스크를 가지고 있고, 금융을 하는 사람들은 리스크를 평가해서 적절히 다루고 수익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리스크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분산될 수는 있어도 사라질 수는 없다'는 점인데,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는 자산을 섞어서 리스크를 분산하고 마치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변한다는 사실이 없어지지 않는 한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금본위제에서 각국의 통화 가치는 변하고 있었다. 돈을 찍어낸 것이 원인이든, 무역을 통한 경상수지 차이가 원인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가치는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금본위제는 그 변동성을 지웠다.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사라졌다면 뭔가 비용을 지불했어야만 한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겪는 리스크를 지우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데 보험료라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나? 금본위제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통화 가치의 변동성을 금을 비용으로 지불하며 지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교환이 이루어지는 한 변동성은 영원히 발생한다. 영원히 그 비용을 지불할 수는 없기에 금태환은 중지되었다.


스테이블코인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동일하다. 가상화폐라는 자산은 가치가 변한다. 그것도 아주 급격하게 변한다. 그런데 테라와 USD의 관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어디선가 변동성이 제거되었다는 말이다. 흔들리는 줄을 누군가 가운데서 꽉 잡고 있는 것인데 분명히 그걸 잡고 있는 사람은 힘이 든다. 변동성을 제거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 테라나 루나가 잘 나가던 시절에는 그들 자신의 가치 상승분으로 충분히 비용을 지불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전 세계를 주름잡고 성장하던 시절에도 자산 변동성 제거에 따른 비용은 결국 감당하지 못했다. 무수히 뿜어져 나오는 변동성을 미국도 감당하지 못했는데 테라나 루나라고 해서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게다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자신들의 가치 상승분에 기인했다면 한 번 상승세가 꺾인 이후에 돌이킬 수 없는 악순환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하락세가 되면 변동성은 더 커져서 지불해야 할 비용은 더 커지는데 자신들의 가치가 하락세이기 때문에 전보다 더 큰 것을 넘겨줘야 한다. 그건 더 큰 하락세를 만들고, 다시 변동성은 커지고, 또 전보다 더 크게 넘겨줘야 한다. 그렇게 루나는 사라진 것이다.


그걸 어떻게 구현하든, 기술적인 면은 기술자들의 일이다. 하지만 금융은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본질적인 성질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기술이 그것을 간편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는 성질들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변동성, 혹은 리스크라고 불리는 것들은 분산할 수 있을지언정 공짜로 제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변동성을 제거한 것처럼 보인다면 비용을 지불하고 있을 것이고, 대개 처음 등장한 금융자산은 자산 가격 상승으로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절대 공짜는 없고,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사라지게 되는 순간 무너지게 될 뿐이다.


그러니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자산의 가치가 변하는 한 리스크는 무한정 뿜어져 나온다. 무한한 비용을 지불할 자신이 없다면 스테이블이라는 말은 금융시장에서 성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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