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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un 05. 2022

화폐란 무엇인가

5. 금본위제 이후의 화폐

미국이 금태환을 중지한 이후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화폐 시스템이 시작되었다. 사실 달러의 금태환을 중지를 선언한 것이지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는 것을 선언하지는 않았다. 달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주요 물품의 교환 수단으로써의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고, 대체로 무역은 달러에 기초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화폐 주도권을 꽉 쥐고 있었다. 달러가 주도권을 꽉 쥐고 있는 상태에서 금이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자 무엇인가 그 자리를 대체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달러가 그 위치를 대체하게 된 것뿐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화폐를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 시사점을 알 수 있다.


첫째로 달러는 날 때부터 기축통화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기축통화가 될 만한 자질을 갖췄기 때문에 기축통화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달러가 가진 자질이 무엇이었냐 하는 것이다. 일단 화폐 자체가 자산으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양'은 중요하지 않다. 질적인 요소를 잃은 채 양적으로 밀어붙인다면 그만큼 화폐의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가치가 불안정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위협한다. 그러니 기축통화의 자질은 질적인 요소에서 찾아야 한다. 이미 느끼고 있을 수도 있지만 달러가 가지고 있었던 자질은 '신뢰'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달러로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것을 교환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비슷한 맥락이긴 하지만 '달러의 가치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의 모습이 아무리 변해간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기능은 결국 '교환'이다. 화폐는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교환이라는 목적을 달성해줘야 하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불안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 금이 지위를 잃던 시기에 달러는 대부분의 원자재 거래의 표준이었고, 미국이라는 든든한 나라가 뒷배경이었기 때문에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달러를 가지고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미국은 성장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었다. 강대국이었지만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굳이 달러를 더 풀거나 달러 가치를 해치면서 경기를 부양시킬 필요가 없었다. 달러를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있었고 달러는 안정적인 가치를 오랜 시간 유지해왔다. 이 모든 것들이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든 자질이 되었다.


간단히 말해 '교환이라는 본래의 목표를 충실히 달성해줄 거라는 믿음'이 화폐로서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자질이고, 달러는 왕의 자리가 공석이 됐을 때 그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두 번째 시사점은 달러도 태생적인 기축통화는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달러도 기축통화가 되기 위한 자질을 가장 잘 갖췄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달러가 아닌 다른 화폐가 달러보다 화폐로서의 자질을 더 잘 갖추게 된다면 기축통화는 바뀔 수 있다. 물론 화폐가 갖춰야 하는 자질은 화폐 스스로 갖춘다기보다는 실질적으로 화폐가 가진 국가의 영향력과 더 밀접한 관계에 있다. 미국이 건재한 강대국으로 있는 한 미국의 화폐로서 갖는 달러의 위상은 쉽게 흔들 수 없다.


일단 어떤 나라의 화폐가 달러를 위협하기 위해서는 주요 원자재 시장에서 달러 대신 결제수단으로써의 자리를 뺏어야 한다. 그러나 석유와 같은 원자재 시장에서 달러로 이루어지는 거래를 다른 화폐를 사용하도록 바꾸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대가를 거래 당사자들에게 줘야 한다. 항상 뭔가 바꾸려는 입장은 유지하려는 입장보다 더 큰 힘을 주어야 하기 마련이다. 미국보다 더 큰 대가를 그들에게 안겨줄 수 있어야 하는데 가능한 후보는 많지 않다.


또 화폐의 교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폐 발행을 안정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화폐 발행을 안정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양적완화 같이 돈을 푸는 정책을 덜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고, 경기부양책을 덜 사용하려면 애초에 경제가 튼튼해야 한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상승하고 있어서 화폐를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나라가 이점을 갖는다. 미국은 이미 선진국이고 성장률에서 어느 정도 정체기에 도달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나라가 미국보다 장점을 가질 수도 있다. 미국도 이러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통화량에 맞춰서 자국 통화량을 유지하지 않아 환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나라에 '환율조작국'이라는 명칭을 붙여 압박을 가한다. 이러한 압박까지 뚫어내면서 자국 통화량을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국가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가능하냐고 하면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세계는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신뢰도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나 코로나19 기간 동안의 과도한 양적완화로 인해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정도의 충격이 언제 어떻게 또 발생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금이 지위를 잃던 시기에 달러가 좋은 자질을 갖추고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달러가 휘청거리는 시점에 알게 모르게 자신의 자질을 키워 온 화폐가 있다면 달러의 자리를 어느 순간 대체하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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